[유성호 문화지평 대표의 문화‧관광이야기] 역사를 바라보는 눈은 다양하다. 그것을 사관(史觀)이라고 한다. 문화지평이란 역사문화 답사단체를 이끌다 보니 다양한 역사문화해설사를 만난다. 같은 공간, 같은 사건이라도 그들의 해석이 제각각이다. 그것은 해설사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의 다면성(多面性) 때문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지난 8월4일부터 10월24일까지 열리는 ‘황금문명 엘도라도 - 신비의 보물을 찾아서’ 역시 문화재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이 존재한다는 것을 체감한 시간이었다.

유물 소유국인 콜롬비아 황금박물관(Museo del Oro)은 이름 그대로 ‘황금’을 중심으로 보여준다. 고대 무이스카 사람들은 자연에서 금을 채굴해 정교하게 가공하고 이에 샤머니즘적 상징을 불어 넣었다. 그리고는 이를 신에게 봉헌함으로써 다시 자연 속의 금으로 되돌리려 했다. 황금박물관은 이러한 금의 순환을 보여주는 ‘금속 가공’, ‘콜롬비아 원시사회(선스페인기) 사람들과 금’, ‘우주론과 상징’, ‘봉헌’ 등 4개 상설전시실로 구성돼 있다.

황금박물관으로부터 322점의 유물을 빌려와 전시하는 국립중앙박물관은 무이스카 원주민의 삶과 가치관을 보여주는 데 방점을 찍었다. ‘부활한 엘도라도’, ‘자연과의 동화’, ‘샤먼으로의 변신’, ‘신과의 만남’이란 네 가지 주제에서 알 수 있다시피 무이스카 원주민과 자연의 혼연일체를 보여주고 있다.

스페인 정복자들에겐 욕망이라는 이름의 ‘황금’

엘도라도 황금에는 콜롬비아 원주민의 피가 서려 있다. 20대 청년기인 1980년대 만났던 굼베이 댄스 밴드(Goombay Dance Band)의 ‘엘도라도’란 레게풍 팝송이 있다. 가볍고 중독성 있는 리듬 때문에 오랫동안 웅얼거렸던 기억이 있다. 정작 가사가 품고 있는 비극적 내용은 전혀 알지 못하고 말이다.

‘그들은 오백년 전에 왔어요. 그들은 멕시코의 황금을 훔치고 사람들을 한 사람 한 사람씩 죽이면서 총(무력)으로만 다루었어요. 용감한 남자들은 쇠사슬에 묶이고 젊은 아낙네들은 모두 노예로 팔렸지요. 어린 아이들은 밤새 울었어요. 그들은 과연 빛을 다시 볼 수 있을까요?’

그러면서 노래는 ‘엘도라도 황금의 꿈은 모두를 고통과 피의 바다에 빠지게 했다’는 슬픈 전설을 상기시켰다. 1494년 토르데시야스조약(Treaty of Tordesillas)에 따라 대서양 한 가운데를 경도 방향으로 갈랐고 오늘날 브라질을 제외한 남아메리카 전역이 스페인 몫이 됐다. 대항해시대 신대륙은 곧 식민지 확장과 노예 확보 그리고 재물 약탈의 장이었다. 이번 국립중앙박물관에 아름답게 선보인 엘도라도의 황금에서 핏빛이 느껴지는 것은 이 같은 역사적 이유다.

재미난 사실은 이 시대 카리브해에는 해적이 창궐했다. 남아메리카서 약탈한 황금이 쿠바 아바나 항에 모이면 플로리다와 쿠바 사이 흐르는 멕시코 만류를 이용해 스페인으로 갔기 때문에 해적들의 좋은 먹잇감이 됐다. 특히 엄청난 남아메리카의 금과 은을 스페인이 독점하자 이에 배가 아팠던 영국과 프랑스는 사략선(privateer) 제도를 이용해 스페인 보물선을 합법적으로(?) 노략질하는 등 엘도라도 황금을 둘러싼 열강의 추악함도 난무했다.

그러나 엘도라도 황금은 ‘보물’이 아니다. 그것은 약탈자와 후대의 탐욕적 시각이다. 콜롬비아 원주민들에겐 단지 신에게 바치기 위한 봉헌물일 뿐이다. 콜롬비아를 단 한번도 떠나 본 적이 없다는 ‘무이스카 뗏목’의 정교함을 사진으로 나마 접했다. 또 이번 관람에서 다른 유물들을 봤을 때 그들이 신을 위해 얼마나 큰 정성을 다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또 하나는 정교하되 크지 않은 소박함이다. 소박함은 결국 자연으로의 회귀를 갈망하는 무소유 정신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황금유물 뒤에 감춰진 비하인드 스토리

이번 유물전 때문에 벌어진 몇 가지 에피소드가 있었다고 한다. 하나는 유물 운반에 대한 것이다. 황금의 물성이 연해서 변형가능성 때문에 수하물 적재를 피했다고 한다. 대신 핸드캐리어를 이용했는데 한 나라 대표 문화재답게 귀한 대접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또 황금박물관 측은 유물을 대여하는 대신 우리 문화재도 300여점 빌려달라는 제안을 해왔다. 황금박물관의 경비체계가 미심쩍어 머뭇거리던 우리 측 관계자들은 지하수장고에나 있을 법한 육중한 철문이 전시실에 설치돼 있는 것을 보고 대여를 결심했다고 한다. 황금박물관은 정부가 아니라 중앙은행이 운영하고 있다. 은행 금고 덧문을 떠올리면 황금박물관의 보안이 쉽게 상상될 것이다. 모든 게 박물관 현장 해설이 아니면 들을 수 없는 내용이다.

오세은 학예연구사의 밀도 있는 해설로 수요일 저녁 삶이 금빛 찬란했다. 굼베이 댄스 밴드가 노래한다. ‘엘도라도 황금의 꿈은 오직 당신의 마음속에서만 실현 될지 모릅니다. 손을 내밀어 보세요. 그러면 당신은 자유로워 질거에요’

▲ 유성호 문화지평 대표

[유성호 문화지평 대표]
문화 향유공동체 ‘문화지평’ 대표
문화체육관광부 문화관광축제 현장 평가위원
지자체 근현대문화유산‧미래유산 보존 자문위원
한국약선요리협회 전문위원
대중음식평론가(‘유성호의 식사 하실래요’ 연재 중)
前 뉴시스 의학전문기자, 월간경제지 편집장
前 외식경영신문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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