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호의 시시콜콜 경제] 아마존 밀림. 벌거벗은 사내들이 엉성한 화살을 들고 사냥에 나선다. 사냥감을 잡기 위해 사자처럼 조용한 발걸음으로 숲 속을 누비고 있다. 5년전쯤 어느 방송에서 방영한 ‘아마존의 눈물’이라는 프로그램의 한 장면이다. ‘조에족’은 원시 상태 그대로다. 맨몸으로 사냥을 하고 나무의 마찰을 이용해 불을 지핀다. 문명의 이기는 거울과 칼 뿐이다. 뽀뚜루라는 작은 막대기를 턱에 꽂아 넣었던 것이 충격적인 장면으로 기억된다.

인상 깊었던 것은 그들의 소득과 분배 방식이었다. 그들의 소득은 마을 사내들이 사냥한 숲 속의 동물과 집 주변에 심어놓은 우리나라 고구마 같은 먹거리가 거의 전부였다. 잡은 사냥감을 분배할 때는 사냥에 참가한 사람뿐아니라 노인들, 어린아이들, 부녀자, 아픈 사람 몫까지 온 마을 사람에게 공평하게 나눈다.

원숭이 한 마리를 잡아 온 동네가 나누는 과정은 참 재미있다. 가구당 두 세근 정도를 눈어림으로 배분하는데 몇 시간이 훌쩍 넘는다. 각 집으로 갈 고기 근수에 온 동네 사람이 고민하고, 양이 적다고 생각되는 집에 조금 더 보태주는 재분배 과정이 답답할 정도로 느리게 진행된다. 우리가 보기에는 포만감이 느껴지지 않을 적은 양의 고기를 온 식구가 둘러 앉아 먹는 장면에서 가슴이 따뜻해져 온 기억이 새롭다.

선하고 맑은 눈망울에는 오늘의 먹거리에 만족하는 행복함이 깃들여지고, 내일의 밥상을 오늘 걱정하지 않는 초현실적인 안온함이 있다. 그래도 삶의 두께는 비슷한지 지지고 볶고 산다. 지구상에서 사라졌다고 생각한 원시시대의 공동생산, 공동분배의 이상적인 모습이 아마존 밀림 어디에선가 문명 이전의 모습으로 오롯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제 꿈꾸던 가상이 오늘 실현되는, 어지럼증이 도질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는 문명을 사는 혹은 누리는 우리는 조에족의 반만큼이라도 행복한가. 원숭이 한 마리를 온 마을 사람들이 공평하게 나누는 조에족의 공정식탁, 엄청난 생산 증가를 이뤄 온 우리의 밥상은 그에 비해 행복한가.

 

15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명목 국민총소득(GNI) 규모는 1953년 483억원에서 지난해 1441조원으로 2만9833배 커졌다. 또 1인당 GNI는 1953년 67달러에서 2013년 2만6205달러로 394배 증가했다. 규모만 보면 포만감이 가득하다. 5천년 동안 이어져온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났다는 증표이기도 하고 아버지 세대의 고단한 헌신이 읽혀지는 눈물의 성적표이기도 하다. 60년간 떨어진 돈의 값어치를 감안하더라도 오늘 먹을 양식이 원숭이 한 마리에서 몇 십 마리로 늘어난 현실이 된 것이다.

그러나 같은 발표에서 또 다른 통계가 있다. GNI 대비 가계소득 비중은 1998년 72.8%에서 2013년 61.2%로 꾸준히 하락했다. 이에 비해 기업 소득 비중은 1998년 13.9%에서 2013년 25.7%로 빠르게 증가한다. 가계와 기업 이외의 13% 정도의 소득은 정부 몫이다. 정부 몫은 거의 변동이 없는데 비해 우리 사회의 전체 소득 가운데 기업이 가져가는 부분이 큰 폭으로 늘었다.

외환위기 이후 큰 기업들은 하청업체 쥐어짜기, 임금인상 최소화, 비정규직 채용, 쥐꼬리 배당 등으로 그들의 몫만 키워 온 것이다. 그 결과 작년말 외부 감사 대상인 기업 2만 3천여개의 사내 유보금은 1100조원 가량 됐다. 매년 100조원씩의 유보금이 빠르게 적립된 것이다. 작년말 가계부채 1020조원과 엇비슷한 규모다. 우리 경제가 창출한 부가가치를 소득으로 분배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기업에만 유리하게 분배되고 있는 것이다. 그에 따라 저축을 해야 할 가계는 빚을 내고, 투자를 해야 할 기업은 저축을 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때 낙수효과라는 용어가 대박났다. 대기업들의 수출이 잘 되고 돈을 벌어야 투자가 늘고 임금이 올라가 가계소득이 증가한다는 논리였다. 국민들은 고환율을 용인하는 정부 정책 아래 높은 물가를 감당해야 했지만 허리띠를 졸라맨 결과는 천문학적인 가계부채 증가로 귀결됐다. 낙수효과는 커녕 가계는 남 좋은 일만 시키고 진짜 맹물만 들이켰다. 사냥한 원숭이를 배분하면서 기업들이 다리 한 짝을 미리 떼어놓고 나머지를 가지고 분배를 시작한 것이다.

다리 한 짝을 떼어놓고 배분받은 가계소득은 지난 3분기에 가구당 월평균 438만원이라고 한국은행이 밝혔다. 발표에 어리둥절한 사람들은 그 소득이 우리 집과는 동떨어진 것이라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말은 앞뒤를 잘 들어야 한다. 가구당 평균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보도에 의하면 올해들어 지난 9월까지 대기업, 금융권 등에서 수십억원이 넘는 임금을 받은 등기임원들이 늘비하다. 이런 고액 급여자, 평범한 급여자, 비정규직, 개인사업자, 아르바이트생 등의 수입까지 합쳐서 나눠놓은 평균인 것이다.

김낙년 동국대 교수가 최근 흥미로운 자료를 발표했다. 한국의 개인소득 분포에 대한 논문인데 2010년 개인 소득자 3,122만명을 대상으로 소득을 분석한 것이다. 그동안 통계청의 1만가구 남짓한 표본조사나 과세 대상자에 대한 국세청의 소득 발표에서 한걸음 나아가 급여자, 아르바이트, 일용직, 농업소득, 개인사업자 등을 망라해 소득을 분석해 발표했다.

이 논문에서 연간 개인소득 평균은 1인당 2046만원으로 밝혔다. 점유율을 보면 상위 10%(10분위)는 전체소득의 48.05%를 가져갔다. 그 가운데 상위 1%가 12.97%를 차지한다. 다음으로 상위 11~20%(9분위)에 속한 그룹이 전체 소득의 20.24%를 가져가서 상위 20%가 우리 가계소득 전체의 68.29%를 차지했다. 승자 독식 또는 건식의 시대인 것이다.

반면 하위소득 50%(1~5분위)가 전체 소득의 5.25%를 차지해 쥐꼬리에 꼬리 부문을 얻었(?)다. 이 중에서도 연소득이 1천만원 미만자가 48.4%(1509만5402명) 이다.

문명세계 대한민국 빈곤층의 식탁에는 잡은 원숭이의 다리 빼고, 몸통 빼고, 내장 빼고, 골 빼고, 꼬리뼈만 동그마니 올라온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6천달러인데도 말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밥 굶지 않고 산 지가 얼마인데도 없는 사람들끼리 아직 이렇게 인사한다. ‘밥은 먹고 다니냐’고.

조에족은 몇 십 단위의 숫자도 제대로 세지 못하지만 분배는 공평하게 한다. 수치에는 어둡지만 염치는 아는 것이다. 문명인 우리 사회는 고도화된 미적분과 공학적인 계산들이 난무한다. 학원까지 가서 배운다. 그러나 인구 절반이 전체 소득의 5%를 가지고 가난한 밥상을 차려야 한다는 단순한 산수는 모르는 것 같다. 그래서 학원 보내봐야 돈만 든다고 하나보다.

미국에서 일어난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는 분노의 시위는 사냥한 원숭이를 좀 더 공평하게 배분해 달라는 문명세계 빈곤층의 절규다. 우리나라는 상위 10%가 약 50%의 소득을 점유하지만 미국은 거의 60%에 이른다. 우리나라 보다 소득 불균형이 더 심한 것이다. 인류 역사를 보면 부가 한쪽으로 과하게 치우칠 때 시위,폭동,내란이 끊임없이 발생해왔다. 로마와 북송의 번영하던 제국도 상위 10%가 제국 전체 부의 60% 정도를 차지, 안으로 부터 무너지면서 제국 멸망의 길을 앞당겼다. 가진 자의 탐욕은 역사의 교훈도 잊게 만드는 마약 같은 것인가 보다.

조에족과 우리의 밥상 가운데 누구의 식탁이 더 문명인지, 누구의 식탁이 더 야만인지, 이쯤되면 헷갈린다. 아시는 분 연락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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