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성현석의 푸드 에세이] 미쉐린가이드가 사랑한 한국인의 소울 푸드, 평양냉면 집 중 빕구르망으로 선정된 곳을 찾는 여정의 마지막 시간이다. 강북권 사대문 밖에 위치한 정인면옥과 빕구르망을 받진 못했지만 가장 근접해 있는 을밀대, 그리고 3회에 걸친 평양냉면 투어를 정리하는 의미에서 ‘해단식’(?)을 서경도락에서 가졌다.

이번 평냉 투어는 지난 18일 여의도 정인면옥에서 오전 11시 일찌감치 시작했다. 이 곳은 사무실 밀집지역이라 직장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한 여름 냉면 성수기 때는 11시 30분만 되도 줄을 길게 늘어서야 한다. 더운 날 땡볕이 싫은 직장인들이 너도나도 5분씩 일찍 나오면서 점심시간이 상당히 앞당겨 졌다.

미쉐린가이드 평가원은 정인면옥에 대해 “우수한 품질의 식재료와 변함없는 맛에 대한 고집이 냉면 한 그릇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북한 출신 부모님의 존함에서 한 자씩 따온 식당 이름도 전통을 계승하고자 하는 그의 의지의 반영이다. 2014년, 서울 여의도로 이전 오픈한 이곳은 현재 광명시에 있는 정인면옥과는 별개로 운영되고 있다. 직장인들이 많은 여의도에 위치한 까닭에 점심시간에는 어느 정도 대기 시간을 감안해야 한다. 아롱사태 수육, 암퇘지 편육과 접시 만두는 반 접시만도 주문이 가능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미쉐린가이드 빕구르망 평양냉면 7곳 투어

▲ 3회에 걸쳐 미쉐린가이드 빕구르망에 선정된 평양냉면집 7곳에 대한 투어를 마쳤다 중간에 흥미로운 면옥집도 들렀고 서경도락에서 늘 마무리를 했다.

정인면옥은 드물게 순면을 파는 면옥이다. 현재는 봉피양, 서경도락과 정인면옥이 순면을 팔고 있다. 전통의 강자 우래옥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순면 판매를 중단한 상태다. 그래서 정인면옥 순면이 전 보다 더 반가웠다. 일종의 동지애라고나 할까. 서경도락은 오픈 때부터 지금까지 메밀 100%만 팔았다.

이날 평냉 투어도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익명의 음식평론가와 비교미각 고수인 모바일게임업체 대표가 동행했다. 이들은 암행으로 음식점 평가를 다니기 때문에 이름을 밝힐 수 없다. 여의도 순복음교회 앞에 위치한 정인면옥은 상당수 주5일만 영업하는 여의도 식당과는 달리 주6일 문을 연다. 토요일은 쉬고 일요일에 문을 여는데, 이유는 바로 우리나라 최대 신도를 자랑하는 여의도 순복음교회 때문이다. 브레이크 타임이 끝나고 문을 열자마자 오후 5시면 자리가 꽉 찬다고 한다.

물냉면과 순면, 아롱사태수육을 시켰다. 암퇘지수육을 시켜야 하는데 먼저 도착한 음식평론가가 주문을 잘못 넣었다. 이번 투어의 목적인 물냉면과 돼지수육에 집중해야 하는데 자신의 입맛에 따라 무의적으로 주문을 낸 것이다. 퍽퍽한 아롱사태를 욱여넣고 있자니 물냉면과 순면이 나왔다. 스테인리스 냉면그릇에 맑은 육수, 어디서 많이 봄직한 모습이다. 파와 고춧가루만 살짝 치면 영락없이 의정부계열 냉면을 닮았다.

약간의 면스플레인(냉면은 반드시 어떻게 먹어야 한다고 설명하는 것)을 하자면 평양냉면이 나오면 숟가락을 뽑아 들고 육수를 먼저 맛봐야 한다. 그릇 채 들고 들이 마시는 것 보다 숟가락으로 뜨거운 국물 흡입하듯 공기와 함께 후룩 흡입해야 육향을 느낄 수 있다.

정인면옥, 면과 육수 밸런스 좋은 웰 메이드 냉면

▲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위치한 정인면옥 평양냉면

정인면옥 육수에서는 익숙지 않은 향이 올라왔다. 정확히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소고기, 돼지고기 쪽이 아닌 채수 쪽에서 안고 있는 향으로 생각된다. 입안에 들어 온 육수가 코팅하듯 기름칠을 했다. 입술 끝에 기름기가 흠뻑 남을 정도로 육수에 유분이 많다. 육수에는 채소 단맛이 뒤에 따라왔다.

메밀 75% 배합면은 냉소다 맛이 전혀 없고 담백하다. 면 표면의 거칠기가 육수를 묻혀 올리기 적당했다. 면발을 젓가락으로 끌어 올리면서 흡입하는 소위 면치기로 면을 입안에 몰아넣고 씹으니 고소한 메밀향이 번져 왔다. 이날은 다른 날과 달리 면과 육수의 밸런스가 좋았다.

일행이 모두 엄지를 세웠다. 특히 비교미각 미식가는 “처음 먹어보지만 익숙한 맛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는 대중적인 맛을 잘 잡았다는 의미다. 그리고는 장난스럽게 고춧가루를 살짝 뿌렸다. 영락없이 파 없는 필동면옥 냉면과 같았다.

정인면옥을 끝으로 미쉐린가이드가 사랑한 ‘빕구르망’ 평양냉면 집 7곳을 모두 돌았다. 7곳 모두 개성이 뚜렷했다. 다른 집을 베끼기 보다는 고유의 정체성을 잘 지켜서 나름대로 면옥 명가를 이뤘다. 미쉐린가이드 평가원이 절대적이고 전능하지 않고 맛이란 것이 주관적인 요소가 많이 관여하기 때문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공적인 인정과 명예라는 차원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래서 많은 식당들이 미쉐린가이드에 촉각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필자 역시 늘 매장에 미쉐린 평가원들이 올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음식의 질과 위생 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을밀대, 쫄면 식감 익숙한 젊은 층 입맛 저격 성공

▲ 서울 마포구 염리동에 위치한 을밀대 평양냉면

정인면옥에서 안정되고 발전된 맛을 본 일행은 을밀대로 향했다. 을밀대가 위치한 마포구 염리동 일대는 재개발로 인해 지형이 많이 바뀌었다. 마포서 한양도성까지 소금을 지고 날랐던 소금길이 사라지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올망졸망하던 골목길 대신 직선 차로들이 메웠다. 도시의 표정이 콘크리트처럼 굳어졌다.

이런 저런 감상을 하는 사이 을밀대 인근에 도착했다. 오래전 골목에 자리를 잡은 을밀대는 따로 주차장을 마련하지 못했다. 그래서 인근 빌딩 주차장을 빌려 쓰고 있다. 비교미각 미식가는 을밀대의 주차장 정보를 꿰고 있었다. 자칭 ‘숨 쉬는 내비게이션’이란 말이 허언이 아니었다. 인근 한 빌딩 앞에는 을밀대 주차확인을 받으면 1시간까지 무료, 추가는 10분당 500원 씩을 받았다.

12시8분, 점심시간과 맞닥뜨린 결과는 당연히 ‘대기’로 이어졌다. 십 수 명이 줄을 늘어트리고 서 있다. 을밀대는 인근 건물을 사들여 별관을 늘렸지만 본격적인 냉면 철인 여름이 다가오면 중과부적이다. 그래서 대기하는 손님들을 위해 골목에는 여름에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오도록 별도의 기발한 시설을 해 놨다.

13분 만에 메인 홀로 입장을 했다. 을밀대는 1970년에 김언주 씨가 창업을 했다. 그래서인지 내부 리모델링을 했지만 세월의 흔적을 곳곳에 남아 있었다. 김 씨는 해방 이듬해 평안도에서 월남한 실향민이다. 대구에 살다가 1960년대 말 서울로 이사를 한 후 생계형 창업을 한 것이 지금의 을밀대다.

물냉면과 녹두전을 시켰다. 을밀대 면은 다른 곳과 사뭇 다르다. 마치 쫄면 같은 굵기에 식감 역시 생소하다. 거피를 하지 않은 메밀을 쓴 듯 면발에 거무튀튀한 점들이 박혀있다. 일명 ‘점박이면’이라고 하는데, 일부러 껍질을 넣고 갈기도 한다.

이유는 점박이면이 진짜 메밀면이라고 알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계란 썩는 냄새와 유사한 냉소다 맛이 냉면 맛인 줄 착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메밀껍질과 냉소다 사용은 평양냉면 마니아라면 잘 판단해야 한다. 이들은 메밀 본연의 맛을 해치기 때문이다.

을밀대 면은 젊은 층 고객이 늘면서 전분 함량을 조금씩 높여갔다. 그래서 굵기도 식감도 쫄면에 가까워졌다는 평가다. 평양냉면을 입문하는 젊은 층에 인기가 있는 이유도 쫄면 식감에 있다. 젊은 층은 쫄면 식문화에 익숙해있기 때문이다. 육수는 소뼈와 양지로 우려낸다. 냉면 웃기로 양지를 얹어 준다.

밸런스가 잘 잡힌 정인면옥에서 맛을 본 직후 을밀대는, 과거 을밀대 단독으로 왔을 때와는 맛의 차이가 크게 느껴졌다. 미쉐린가이드가 전통의 을밀대를 아직 품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럼에도 다음에 평양냉면 집을 추가한다면 가장 먼저 찾지 않을까 싶다.

서경도락, 메밀 80% 배합면 출시...전문가 반응 좋아

▲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서경도락 평양냉면

2019 상반기 평냉투어를 모두 마치고 서경도락에서 총평회를 가졌다. 3회에 걸쳐 미쉐린가이드가 빕구르망 평양냉면 면옥 7곳과 을밀대를 돌면서 맛을 봤다. 소개는 안 했지만 중간 중간 평양냉면 후발주자 면옥도 들러 봤다. 개별적으로 맛 봤을 때와 하루에 몇 곳을 방문해 맛을 보면 차이가 확연히 느껴진다. 이번 평냉투어 역시 확연함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순위를 매기기는 어렵지만 고개가 자연스레 끄덕여 지는 집과 갸웃거리게 하는 집으로 나뉜다. 필자도 외식업에 종사하다 보니 전통을 고수하면서 상황에 맞게 맛의 변화를 추구하는 모습이 자연스레 그려진다. 필자의 미각이 절대적이지 않다. 같이 동행했던 이들의 미각 역시 그러하다. 그럼에도 보편적으로 추구해야 할 맛의 기준은 분명히 있다. 그것을 확인하는 시간을 가진 것이 이번 평냉투어 수확이다.

필자가 경영하는 서경도락은 그동안 메밀 100% 순면을 평양냉면이란 이름으로 판매했다. 가성비와 희소성 때문에 마니아층이 두텁게 형성됐다. 그러나 고객들은 사실상 밀가루나 전분을 약간 섞는 배합면을 좀 더 선호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메밀 80%에 밀가루와 전분을 약간씩 섞은 배합면을 출시했다. 평양냉면 전문가와 마니아들 테스트를 거쳤는데 자화자찬 같지만 매우 좋은 평가가 나왔다.

필자는 평양냉면만큼은 누구한테 뒤지지 않고 맛을 이끌어 가는 선구자가 되고 싶은 욕심이 있다. 음식에 대한 욕심은 자족적인 것이 아니라 모든 고객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고의 평양냉면을 위한 필자의 순례는 끝이 없을 것이다. 최고의 맛을 보여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

▲ 성현석 서경도락·장수가 대표

[성현석 대표]
- 평양냉면·불고기 전문점 <서경도락> 대표
- 삼겹살·부대찌개 전문점 <장수가> 대표
- 푸드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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