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허승규의 직격인터뷰]

번잡하지 않고, 요란하지 않은 한 편의 동화-시 같은 그림으로 마음 산책 하고,

멀리 여행 가지 못하지만 잠시나마 행복하고 싶다면, 『꽃길을 걷자』

5.8일부터 이수동 작가와 노화랑에서.

▲ 시인의 마을(이수동 작가)

■ 작가님 그림은 TV 드라마, 기업체 캘린더, 영화제 포스터 등 여러 매체에 사용되고, 전시마다 솔드아웃되는 등 인기가 많으시던데 인기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 아마도 그림의 내용이 보는 사람들의 자신들 이야기 같아서가 아닐까요? 주제가 사랑, 행복, 설레임 같은 것이니 이미 이룬 사람은 “추억”일 것이고, 아직인 사람들은 “희망”일 것이고.

사실 우리 모두는 얼마간 아픕니다. 몸이 아니라 정신이 아플 때도 있어요. 이런 자신들의 이야기를 고운 체로 걸러서 재구성하거나 윤색하는 출판물이나 그림, 공간들에 사람들은 공감하는 것 같습니다.

제 그림은 한번쯤은 상상해 보거나 이미 본 듯한 풍경이나 상황을 그림의 내용에 맞게 재구성하는 형식입니다. 어린 시절 동화를 읽었을 때의 여러 기억들이 어른이 되어도 상상 속에 남아있어서 비슷한 이야기를 들으면 자신의 기억으로 재구성되는 것처럼 제 그림도 그렇습니다.

■ 금번 “꽃길을 걷다” 전시 기획의 의미와 변화는 무엇인가요?

⇒ 요즘 여러 일들로 어렵고 팍팍한 세상인데, 그림으로나마 꽃길을 걸어보는 즐거움을 가져보라는 것과 수고한 일상들에게 이제는 꽃길을 걸어보라고 응원하는 것이지요. 팍팍한 일상에 대한 선물로 사랑, 행복, 설레임 같은 것을 권하고 싶어요.

그리고 1년 만에 전시회를 여는 것이라 1년 만에 특별한 변화는 있을 수 없고, 다만 그림의 밀도가 더해져 ‘수고스런 그림’이 된 것 정도 일 겁니다.

단락단락마다 기억에 남는 단어처럼, 일상이라는 시간에 쫓기는 여행자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하는 오아시스처럼 그런 전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 어서오세요(이수동 작가)

■ 작가님 그림은 멋이 있는데 무게가 없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분들에게 작가님의 그림을 권하고 싶은가요?

⇒ 그림이 쉽다, 달콤하다 혹은 일러스트 같다는 말을 가끔 듣습니다. 하지만 요시모토 나라, 데이비드 호크니 그림도 어찌보면 단순한 그림들인데 왜 인기가 있을까요? 오랜 동안 관찰하고, 깊게 생각하여 단순하게 그린 그림들은 감정의 잔상이 오래가게 됩니다. 사람들은 그런 단순한 그림들을 통해 일상의 복잡하고 날카로운 관계나 경험, 지식을 단순하게 정리해보는 것 같습니다. 복잡한 세상에서 돋보이는 방법은 “심플”입니다.

그리고 예술이라고 해서 다 어려울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전체를 다 만족시키는 예술은 없다고 보고 감상자도 작가도 각자 자신만의 방법과 역량으로 어렵게 혹은 쉽게 해석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각자 일에 최선을 다하고 난 후, 쉴 때 제 그림이 그분들의 곁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심장의 무게가 있는 그런 분들께 권하고 싶습니다.

■ 작가님 화풍은 어떻게 변해왔는지? 변화하게 된 계기나 이유는 무엇인가요?

⇒ 초기엔 인물화를 많이 그렸습니다. 하지만 인물화가 대중에 어필하긴 쉽지 않았어요. 기억될만한 사건(?)도 하나 있었는데, 인물화를 구매하신 콜렉터가 그 그림을 집에 걸어 놓자 아이가 운다고 해서 교환을 부탁한 일이 있었습니다. ‘뭉크’스타일의 인물화였거든요..(웃음).

그때의 복잡한 심경 변화가 오늘의 소재로 이어졌습니다. 아이도 감동 못 시키는 건 예술이 아닐 수도 있다라는 생각을 했지요. 그후 인물 크기는 줄어들고, 그 자리를 자연이 메우면서 점차 오늘 같은 그림으로 정착이 되었지요.

▲ 아름다운 날들(이수동 작가)

■ 노화랑과는 인연이 많으시던데, 어떤 인연이신가요?

⇒ 30대에 맺은 인연으로 평생을 살고 있습니다. 1992년에 무명인 저를 발탁해서 꾸준히 밀어 준 화랑입니다. 그러니까 벌써 27년째 긴 인연을 이어오는 중입니다. 체질적으로도 여기저기 옮겨 다는 것을 싫어하기도 하지만, 좋은 갤러리를 만났는데 굳이 다른 갤러리로 눈돌릴 필요도 없었지요. 30대 초반에 만나서 앞자리가 6으로 바뀐 오늘까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서로 인연을 만들어 오고 있습니다.

좋은 인연이란 시작이 좋은 인연이 아니라 끝이 좋은 인연이라고 합니다. 인연의 시작은 나와 상관없이 시작되었더라도 인연의 끝은 온전히 나에게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 특별히 기억에 남는 컬렉터나 팬이 있으신가요?

⇒ 실은 좀 많은 편입니다. 몇으로 줄이라면 다른 분들이 서운해 하실텐데..(웃음)

제 그림을 60여점을 소장하고 있는 분은 ‘수동교인’이라고까지 합니다.

그리고 생후 이틀만에 컬렉터가 된 최연소도 있지요. 지금은 6세가 되었지만.

또, 제 친구이자 달에서 전시를 해도 가서 사주는 후원자 같은 컬렉터도 있습니다.

아, 또, 상경한 첫 해인 2004년부터 시작해서 집, 회사, 매장을 제 그림으로 도배한 분도 있습니다.

컬렉터, 관람객 모든 분들이 제 작품을 완성시켜주는 가장 큰 기억의 조각입니다. 감사할 따름이죠.

■ 창의력을 얻는 방법 혹은 성장에 도움되는 규칙 같은 것을 가지고 계신가요?

⇒ 작가라는 직업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갈고 닦아야 빛나는 직업입니다. 최소한 일반인들도 직업으로 일하는 시간인 8시간 이상은 매일 일해야, 그리고 더 해야 인정 받지 싶습니다. 당연히 정년도 없으니 좋기도 하지만 죽을 때까지 일해야 한다는 숙명도 있지요..(웃음) 지겨운 말 일 테지만 꾸준히 노력하는 게 작가가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조건이 아닐까 합니다.

또 하나는 메모입니다. 저는 메모광 입니다. 좋은 단어, 좋은 풍경, 좋은 상상이 떠오르면 바로 수첩을 꺼냅니다. 꿈꾼 것도 메모를 할 정도지요. 그림이 가끔 막히면 그 메모들을 모아 놓은 스크랩북을 꺼내서 천천히 이야기를 풀어나가기도 합니다.

▲ 초대(이수동 작가)

■ 3권의 그림 에세이를 출간하셨는데, 제목들이 인상적입니다. 2010년 토닥토닥 그림편지, 2013년 오늘, 수고했어요, 2016년 다시 사랑한다면.. 올해도 출간하셔야 할 주기인 듯 한데요. 향후 출간 계획은 있으신가요?

⇒ 에세이라기 보단 그림 설명을 좀 시적으로 표현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 그림을 소장한 분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책자에 실은 것이 운 좋게 널리 알려진 경우지요. 순서적으론 올해가 4권을 낼 시기지만 당분간은 글에서 해방되고 싶습니다..(웃음)

그 동안 출간했던 상황을 복기해보면, 제가 뭔가를 이루려고 아등바등, 안달복달 해서 되는 게 아니더라구요, 끊임없이 노력하는 건 기본이고, 좋은 인연, 시기 등 모든 게 다 갖춰져야 이뤄지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제 자신을 갈고 닦고 노력하면 출간이라는 좋은 기회가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말씀, 부탁드립니다.

⇒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아이가 자라서 어느 날부터 화가라 불러주고 있습니다. 60이 된 지금도 참 신기합니다. 내가 잘하는 일로 나도 좋고, 가족도 좋고, 남들도 좋아해주고 박수까지 쳐주니 말입니다. 이런 행복을 계속 누리려면 게으름 피지 말고 하던 대로 계속 정진해야겠지요?

이 글을 읽으신 분들은 꼭 지켜봐주시면서 응원도 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마중(이수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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