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쉐린가이드 빕구르망 평양냉면 투어에서 만난 면옥들. 1차 진피평양면옥, 봉피양, 능라도

[미디어파인=성현석의 푸드 에세이]1931년 평양에서는 외식업 노동자들의 파업이 일어났다. 다름 아닌 평양냉면집 배달부들이 임금 하락을 이유로 집단행동에 나선 것이다. 당시 조선일보는 2월 9일자는 ‘평양면옥상조합이 냉면 하락을 이유로 임금을 25% 인하한데 분개한 평양시내 24개처 면옥노동자 279명이 일제히 파업을 단행하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는 여러 가지를 의미한다. 일제 치하지만 노동자 권리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뚜렷했다는 것, 그리고 1930년대 이미 평양에는 적어도 24개 이상의 평양냉면 면옥이 영업을 했다는 점이다. 특히 24개 점포에 279명의 면옥노동자란 숫자는 1개 점포에 10명 이상의 배달부가 있었다는 소리다.

파업에 참여한 면옥은 적어도 중대형급 이상 규모인 것으로 짐작된다. 따라서 소규모 영세 면옥까지 합치면 평양시내에는 수백 개 평양냉면집이 영업을 했던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평양은 한마디로 냉면 천국이었던 셈이다. 지금은 서울이 냉면천국이 돼가고 있다. 1920년대 청계천변 중심으로 40여개 면옥이 성황을 이뤘던 것처럼.

평양냉면 집이 속도감 있게 늘어나고 있다. 신규 브랜드가 폭발적으로 늘었고 능라도와 같은 기존 브랜드도 점포를 확대하고 있다. 아이러니 하게도 평양을 떠난 평양냉면이 한반도 남쪽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평양냉면의 약진은 세계적인 미식 가이드 ‘미쉐린가이드’를 통해 알 수 있다.

서울 평양냉면집 속도감 있게 늘어...미쉐린가이드 빕구르망 7개

▲ 미쉐린가이드 빕구르망 평양냉면 투어에서 만난 면옥들. 2차 필동연옥, 우래옥, 남포면옥

미쉐린가이드 28번째 도시 서울에서 ‘2019 빕 구르망’ 61개 업체 중 7개가 평양냉면이다. 요리유형만도 42개로 세분화되는 데 평양냉면이 1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미쉐린가이드’ 시각에서 봤을 때 ‘핫한’ 한식으로 비춰진 것이다. 2017년에는 36개 중 3개, 2018년 48개 중 6개로 업체 수가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이같은 추세에 따른 트렌드를 읽고 시장상황을 배우기 위해 미식가들과 평양냉면 투어를 기획한 것이다.

지난 2월부터 매달 3~4개의 평양냉면 집을 순회하며 맛을 비교하고 장점을 공부했다. 미쉐린가이드는 훌륭한 외식 교과서로 활용할 수 있는 유익함이 있다. 수많은 외식업체 중 찾아가서 맛을 봐야하는 곳에 대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서울에 있는 내로라하는 평양냉면 면옥을 두루 다닌 결론은 ‘평양냉면은 결코 쉬운 음식이 아니다’란 것이다.

알면 알수록,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오묘함과 디테일, 매력이 담겨 있는 한식이란 결론을 내렸다. 특히 한식 세계화에 있어서 최전방 ‘전위부대’ 역할을 수행할 잠재력을 발견한 것이 이번 평양냉면 투어의 큰 수확이다.

2월에는 강남권에서 호령하고 있는 진미평양냉면, 봉피양, 능라도를 방문했다. 3월에는 강북권 강자인 필동면옥, 우래옥, 남포면옥, 4월에는 공교롭게도 강남, 강북도 아닌 중립지대인 한강 한가운데 떠 있는 섬 여의도의 정인면옥과 미쉐린가이드 빕구르망에 근접한 것으로 회자되고 있는 을밀대를 다녀왔다. 세 차례에 걸친 투어 정리는 언제나 필자가 운영하고 있는 서경도락 본점에서 했다.

그러니 반나절 만에 적어도 3~4끼 평양냉면을 맛보는 극한의 포만감을 누렸다. 평양냉면 투어에서 하루에 서 너개 면옥씩 몰아서 다니는 일은 ‘맛’을 평가하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커피나 와인 테이스팅에서 여러 종류를 놓고 하는 것과 같은 의미다. 다만 평양냉면을 한 곳에 모아 놓고 하기 어려우니 가급적 빠른 시간에 면옥 서너 곳을 순회하는 것이다. 그러면 각 면옥의 ‘맛’이 수평적 잣대 위에 놓이게 되고 비교가 쉽게 된다.

하루 서너 곳씩 다니는 ‘평냉투어’로 맛 수평적 평가

▲ 미쉐린가이드 빕구르망 평양냉면 투어에서 만난 면옥들. 정인면옥, 을밀대와 서경도락은 빕구르망은 아니지만 유력 후보군으로 평냉 마니아들한테 가장 많이 오르내리고 있다.

전반적으로 ‘미쉐린가이드’의 평가는 공정했다. 빅 데이터와 일반적인 입맛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면옥집을 정확하게 골라 빕구르망에 올렸다. 빕그루망은 ‘합리적인 가격으로 훌륭한 음식과 맛을 선사하는 친근한 분위기의 레스토랑’을 의미한다.

아직까지 미쉐린 스타를 받은 평양냉면 집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미쉐린 원스타는 요리가 훌륭한 집에 부여한다. 풍문에 따르면 한 업체에서 스타를 받기 위해 음식평론가를 통해 문의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만큼 미쉐린 스타에 대한 선망과 자부심은 대단한 것이다. 평양냉면이 지금과 같은 추세로 국민들 입맛을 끌어당긴다면 미쉐린 원스타 탄생도 기대가 가능하다 싶다.

젊은 층과 외국인들 사이에서 평양냉면 마니아층이 점차 두터워지고 있는 것도 주시해야할 부분이다. 이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라는 강력한 ‘매체’를 통해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확대 재생산한다. 세대와 국경이 없는 경험에 대한 공유는 평양냉면을 하나의 문화상품으로 개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였다.

평양냉면 투어만 해도 하나의 상품이다. 젊은 평양냉면 마니아들 중심으로 ‘도장 깨기’란 표현으로 개별 투어를 진행한다. 또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카카오톡 오픈채팅 등 SNS 동호회 회원들끼리 ‘벙개모임’을 통해 평양냉면집을 순례하기도 한다. 이는 이미 평양냉면이 하나의 음식문화 상품이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확장하면 외국인을 대상으로 관광 상품화 할 수 도 있다.

필자가 운영하는 ‘서경도락’ 본점은 도산대로 대로변에 위치하고 있어 외국인들의 방문이 특히 많다. 외국인들은 아직까지는 평양냉면보다 불고기, 돼지갈비 등 고기 때문에 많이 찾지만 서서히 냉면 맛을 익혀가고 있다. 이들 대화 내용 속에는 제주 흑돼지와 같은 스토리텔링 요소가 많은 것에 집중한다. 평양냉면도 스토리를 만들면 충분히 ‘바이럴 마케팅’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평양냉면 투어 음식문화 관광 상품 개발 가능성

진미평양냉면, 봉피양, 능라도, 필동면옥, 우래옥, 남포면옥, 정인면옥 등 미쉐린가이드 빕구르망 평양냉면 집에는 오랫동안 덧쌓여 온 노포(老鋪) 이야기가 있다. 능라도, 정인면옥은 업력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평양 이야기, 광명에서 이전한 스토리 등이 많이들 회자된다. 마포 을밀대 역시 평양냉면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는 곳인데, 최근에는 일산점에 대한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일산이건 마포건 어디든 브랜드를 살리는 표준 맛을 잘 지키면 된다고 생각한다.

서경도락은 4월말 메밀 80%, 밀가루와 전분 20%가 섞인 면을 신상으로 출시했다. 그동안 순면만 고집하다가 좀 더 대중적인 입맛으로 다가가기 위해서다. 무엇보다 미세린가이드 빕구르망이 추구하는 ‘대중성’에 충실하기 위함이다. 단단히 준비했던 만큼 반응은 매우 좋다. 서경도락은 강남‧북에 각각 한 곳씩 있기 때문에 접근도도 좋다. 때문에 올 여름, 승부수를 한번 띄어볼만 하다.

해마다 평양냉면 투어를 진행하는데 이번에는 미식가, 음식평론가, SNS 전문가와 함께 다녔다. 입맛은 조금씩 다르지만 맛을 추출해 내는 결론은 비슷하다. 이들과 토론을 하면서 다니는 평양냉면 투어는 훌륭한 외식 교과서다. 미쉐린이 사랑하는 서울의 맛이 어떤 것인지 충분히 알 수 있던 시간이었다.

이상으로 3회에 걸친 평양냉면 투어를 종합해서 정리했다. 올 10월 미쉐린가이드 스타 발표 일주일 전에 나오는 빕구르망에는 또 어떤 평양냉면 면옥이 포함될지 자못 궁금하다. 서경도락도 빕구르망에 선정되고 싶은 속내를 감추진 않겠다. 그러기 위해선 지금보다 더 노력해야 한다는 점도 알고 있다. 그래도 현실은 꿈꾸는 자의 몫이기에 오늘도 평양냉면 한 사발을 들이키며 그 꿈을 키우고 있다.

▲ 성현석 서경도락·장수가 대표

[성현석 대표]
- 평양냉면·불고기 전문점 <서경도락> 대표
- 삼겹살·부대찌개 전문점 <장수가> 대표
- 푸드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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