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성현석의 푸드 에세이] 외식시장에서 평양냉면이 초강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메밀이라는 웰빙 요소와 고기육수를 앞세운 맛의 조합이 원초적 미각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멸치 육수에 밀면으로 만든 국수가 반 끼라면 고기 육수에 메밀면은 한 끼 식사로 충분하다는 이유도 있다.

최근엔 마니아층 연령대가 낮아지면서 속도감 있게 저변이 확대되고 있다. 무엇보다 지난해 남북정상회담 때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양 옥류관 냉면을 공수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대접하면서 벌어진 에피소드로 인해 폭발적으로 인기가 높아졌다.

김 위원장은 “어렵사리 평양에서부터 평양냉면을 가져 왔습니다...멀리 온 평양냉면...아 멀다고 하면 안되갔구나”라는 한 마디로 평양냉면 업계를 발칵 뒤집어 놨다. 평양냉면은 물론 함흥냉면, 막국수, 칡냉면 등 유사 면장사가 때 아닌 호황을 누렸다.

여름철이면 유명 평양냉면집은 점심시간이 채 되기도 전에 문전성시를 이룬다. 을지면옥, 평양면옥(장충동) 같은 원도심에 있는 노포에는 장년층 마니아들이 순번을 정해 일찌감치 자리를 맡는 진풍경도 보인다. 예약을 아예 안 받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평양냉면에 열광할까. 평양냉면과 관련해 외식업 현장에서 보고 터득한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모있는 신박한 잡학사전) 몇 가지를 정리해 본다.

질 좋은 한우로 뺀 육향 강한 농후한 육수 선호

▲ 평양냉면 애호가들은 소고기 육향이 강한 육수를 선호했다. 사진은 육향이 강한 서경도락(좌)과 우래옥 평양냉면.

평양냉면 강자들은 고객을 유인하는 한두 가지 강력한 ‘원투펀치’가 있다. 육수 베이스와 메밀 함량에 따른 면 식감이 일반적으로 가장 큰 ‘한방’이다. 사이드로는 제육, 편육, 만두를 손꼽을 수 있다. 불고기는 사이드가 아니라 메인급으로 선주후면의 필수 전제조건이다. 면식을 좀 한다는 사람들에게 물어본 결과 육수는 일반적으로 ‘농후한 육향’에 대해 선호도가 높았다.

평양냉면이란 음식은 구성이 단출하다. 면, 육수, 고명을 한 대접에 담으면 된다. 물론 면, 육수, 고명 등 각 재료의 맛을 극대화 시키는 상당한 내공과 노하우가 필요하다. 때문에 메뉴로 도입하려면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하고 맛 밸런스도 잘 유지해야 한다.

원래 평양냉면은 주로 동치미국물에 메밀면을 말아 먹었다. <동국세시기>(1849)나 <규곤요람>(1896) 등에는 동치미에 메밀면을 말아 돼지고기 고명을 얹어 먹었다고 쓰여 있다. 소고기 육수를 만들어 동치미와 섞거나 단독으로 사용한 것은 1950년대 이후로 보인다.

평양식 냉면은 전쟁 통에 남한으로 내려오면서 소고기 육수와 손잡고 소비자 입맛을 사로잡았다. 육수 속에 녹아 있는 육향(肉香)은 인간의 원초적 식욕 본능이다. 육수의 감칠맛과 고소함은 혀의 미뢰(味蕾)를 사로잡아 맛의 포로로 만든다. 후각으로 스미는 육향은 뇌의 기억창고를 여는 열쇠다.

인류의 기억 속에 육향은 육식과 포만이라는 행복한 추억이다. 그렇기 때문에 평양냉면 육수에 한번 취하면 헤어나기가 쉽지 않다. 다만 육향의 기억창고 열쇠가 정확히 자물쇠에 맞아야 가능한 일이다. 호불호가 극명한 음식이란 의미다.

인간의 뇌는 달고 기름진 음식을 찾도록 만들어졌다. 고열량, 고지방 음식이 일반적으로 중독성이 강하다. 간장으로 간을 한 고기육수는 이 두 가지를 모두 만족시킨다. 그래서 평양냉면에 한번 빠지면 중독이 되는 것이다. 오죽하면 ‘평뽕’(마약 같은 맛이란 의미)이라 하지 않는가!

달고 기름진 음식 ‘평뽕’ 선호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

▲ 제육, 만두 등 선주후면을 유혹하는 사이드 메뉴도 평양냉면 면옥의 중요한 셀링 포인트다.

제육도 평양냉면 구매 결정에 매우 높게 관여한다. 제육과 수육은 평양냉면 집의 수준을 나타내는 가늠자다. 냉면 육수를 빼내는 원재료이기 때문이다. 평양냉면 집에서는 일반적으로 돼지고기는 제육, 소고기는 수육을 지칭한다. 육수를 빼고 난 고기를 썰어 내오면 냉면이 나오기 전 ‘선주후면’(先酒後麵)하기 제격이다.

불고기는 평양냉면 집에서 선주후면 콘셉트를 구현하기 좋은 최적의 메뉴다. 우래옥, 봉피양, 서경도락 등 역사와 손맛이 있는 면옥집은 맛있는 불고기 레시피를 가지고 있다. 만두는 평양냉면 집에서 제육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찾는다. 이유는 아무래도 메밀과 만두피 밀가루가 겹치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 대신 빈대떡, 지짐 등이 잘 나간다. 주머니 가벼운 술꾼들에겐 수육 대용으로 인기가 높다.

경쟁력 있는 평양냉면 집이 되기 위한 특징적인 조건이 몇 가지 있다. 먼저 진한 육향을 가진 농향형 육수가 대중적 입맛을 더 끌어 당겼다. 육수 색깔은 희멀건 색보다 노리끼리하고 진한 쪽이 선호됐다. 전통적인 평양냉면의 특징인 밍밍하고 슴슴한 육수보다 혀에 착 감기면서 달라붙는 기름진 맛을 원했다.

면은 메밀함량이 70~80% 정도가 식감이 우수했다는 평이다. 순 메밀면의 경우 향은 좋지만 배합면 보다 식감이 덜하다는 지적이 있다. 20~30%는 밀가루나 전분 등을 잘 배합해 만드는데, 여기에도 면가(麵家)마다 노하우가 있다. 이렇게 배합을 해서 압착면을 빼내면 표면이 매끈할뿐더러 끈기도 적당하다. 한 젓가락 ‘호로록’ 말아 올리면 육수가 적당히 묻어 올라온다. 육수가 어느 정도 따라와야 입안에 넣고 씹을 때 맛이 제대로 구현된다.

메밀 80% 첨가된 매끈한 면 선호…냉소다 맛엔 거부감

▲ 메밀 80%에 밀가루와 전분을 적절히 섞어 최상의 면 레시피를 뽑아낸 서경도락 평양냉면. 냉소다를 일체 사용하지 않아 메밀향을 온전히 맛 볼 수 있다.

소비자들의 안목지수가 높아졌다. 음식 재료뿐만 아니라 레시피까지 읊을 수 있는 고수들이 즐비하다. 특히 평양냉면은 마니아층이 두텁게 형성된 음식이다. 유명한 냉면 맛집 정보는 인터넷에 차고 넘친다. 그런데 정작 마니아들도 잘 모르는 맛의 비밀이 몇 가지 있다. 오랫동안 면장으로 근무하던 이들만이 집어 낼 수 있는 맛이다.

첫 번째가 냉소다에 맛의 비밀이 있다. 냉소다는 면을 차지게 하는 첨가제다. 면 탄성을 높이고 식감을 탱글하게 만들기 위해 집어넣는다. 문제는 냉소다가 들어간 면에서는 삶은 계란 특유의 매캐한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 손님들은 삶은 계란 고명을 빼달라고도 한다. 냉소다가 밀가루와 반응하면서 나는 냄새 때문에 삶은 계란만 애꿎게 천덕꾸러기가 된 셈이다.

둘째로는 제면(製麵)에 대한 정보다. 메밀을 완전 거피한 유백색 면이 대세라는 것도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아직도 거무튀튀한 면색에 껍질가루가 점점이 박혀 있는 면(점박이면)을 찾는 이들이 있다. 점박이면은 과거 도정기술이 뒤떨어졌을 시절 메밀껍질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해서 만들어진 면이다.

볶은 메밀을 첨가해 색을 내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메밀면의 순도를 떨어트리고 맛에도 영향을 미친다. 진정한 평양냉면은 이제 ‘유백색 면’이 대세다. 게다가 자가제면 시대다. 대형업소에서는 자가제분까지 한다. 평양냉면의 진화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메밀함량이 높은데도 불구하고 노란색을 띠면 밀가루와 혼합한 면이다. 메밀+밀가루에 냉소다를 넣어 제면하면 중국집 면처럼 노란색으로 변한다. 또 메밀 함량이 높은 데 옥류관처럼 면 색깔이 거무튀튀하거나 칡냉면색이 나면 전분을 섞은 면이다. 전분과 냉소다가 반응하면 색이 검게 변한다. 냉소다와 반응하 이들 면에서는 모두 삶은 계란의 비릿한 냄새가 올라온다.

요즘은 완벽한 도정으로 매끈한 유백색으로 제분이 가능하다. 메밀 순면은 일본 쥬와리 소바면과 향, 색, 면의 끊김이 유사하다. 최근에는 평양냉면 소구력이 육수보다 면에서 결정된다.

육수는 정성과 비례…제면 보다 쉬워

▲ 평양냉면 육수가 맛있는지 없는지를 나타내는 척도는 손님이 떠난 뒤 빈 그릇을 보면 알 수 있다.

셋째는 육수다. 현업에서 실전을 치러본 결과 육수는 면에 비해 어렵지 않다. 질 좋은 고기와 재료로 매일 만들면 맛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육수의 질은 전문가가 아닌 이상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육수는 정성이다. 끓이는 내내 곁에 지켜 서서 부유하는 기름과 찌꺼기를 쉴 새 없이 걷어내야 깔끔한 육수를 얻을 수 있다.

자칫 이 작업을 소홀하면 떠오른 기름이 육수에 녹아들어가 맛을 해친다. 평양냉면은 ‘쩡’하면서 깔끔하고 담백한 것이 진정한 육수 맛이다. 비록 고기 국물이지만 먹고 나도 입술에 번지르르 남지 않아야 한다. 만약 입술에 미끌미끌한 기름기가 느껴진다면 육수 내는데 정성이 부족했다고 보면 된다.

필자는 평양냉면이 국민 외식 메뉴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고 본다. 그동안 ‘행주 빤 물맛’이란 구박을 견디며 꾸준히 국민 혀를 꼬드기는 데 성공했다. 맛보기를 주저하던 국민들을 냉면가게 앞에 줄을 세우는 데는 김 위원장의 입담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평양냉면은 또 ‘한식세계화’에 최적화된 우리 음식이다. 평양냉면은 이제 한국인의 소울 푸드를 넘어서서 세계인의 입맛에 자신 있게 다가설 수 있는 ‘한식 세계화’의 첨병이다. 필자가 운영하고 있는 평양냉면과 평양식불고기 전문점 ‘서경도락’은 도산대로라는 위치 때문에 외국인 손님이 많은 곳이다.

평양냉면, 한식세계화에 최적화된 음식

▲ ‘통일음식’의 대명사, 한식세계화에 최적화된 음식 평양냉면. 사진은 지난해 남북정상회담 때 옥류관에서 공수한 정통 평양식 냉면. [사진제공=청와대공동사진기자단]

그들이 주문할 때 보면 평양냉면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높은 것을 접할 수 있다. 물론 아직까지는 고기를 주문하는 외국인이 많지만 점차 평양냉면에 대한 기호가 높아질 것으로 사료된다. 이는 현장에서 체감하는 멀지 않은 미래다. 필자는 평양냉면을 꼭 외국인들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만들고 싶다. 일테면 ‘통일음식’의 대명사로 말이다.

지금은 북한의 비핵화가 북미, 남북 간 교착상태라서 진전이 없다. 하지만 언젠가는 남북화해 모드가 지금보다 훨씬 진전할 것이다. 이때 우리가 ‘통일’을 준비하며 세계에 내보일 대표음식으로 ‘평양냉면’만한 것이 없다. 평양냉면은 수많은 스토리를 담고 있다. 옛 히스토리도 재미나지만 앞으로 전개될 한식세계화 첨병으로써의 이야깃거리도 기대된다. ‘서경도락’이 그 중심에 서고 싶은 것이 솔직한 필자의 심정이다.

▲ 성현석 서경도락·장수가 대표

[성현석 대표]
- 평양냉면·불고기 전문점 <서경도락> 대표
- 삼겹살·부대찌개 전문점 <장수가> 대표
- 푸드 에세이스트
-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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