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성동 계곡에서 바라 본 도성 안 서울 야경

[미디어파인 칼럼=최철호의 한양도성 옛길] 통인시장 정자 앞은 언제나 북적거린다. 시장을 가는 사람과 인왕산을 오르는 사람이 만나는 광장이다. 잠시 쉬어가는 정자에서 세종대왕도 만날 수 있다. 이곳 어딘가에서 600여 년 전 충녕대군이 태어났다. 궁담길 밖 이곳이 세종마을이다. 눈에 익은 마을버스도 오간다. 서울시청 광장에서 경복궁역을 지나 10분이면 수성동 계곡이다. 경복궁에서 걸어서 10분에 계곡을 만날 수 있다. 인왕산 정상도 오를 수 있는 곳이다. 청바지를 입은 사람, 넥타이를 메고 걷는 사람, 모자를 눌러 쓴 외국인까지 옥인동 마을버스 종점에는 사람이 붐빈다. 빌딩과 빌딩 숲에서 고개를 내밀고 바라보니 산이 보인다. 가을 산이다. 산에 들꽃이 피고,단풍이 드니 수성동 계곡도 제법 쌀쌀하다.

통인동 유래를 찾아 거닐다

▲ 수성동 계곡 기린을 닮은 통돌 다리 2개_기린교

통인동은 통골과 인왕동에서 온 마을 이름이다. 인왕산 아래 첫 계곡이 수성동 계곡이다. 물줄기는 세차지만 비가 오지 않으면 건천이라 물이 마른다. 비가 내리면 꼭 가야 할 산이다. 비가 오는 여름이면 인왕산 정상 바위와 바위 틈에서 빗물이 쏴~하고 내린다. 빗물이 모여 인왕산 아래 계곡물이 콸콸 흐르고, 옥구슬처럼 맑은 소리로 물이 흐르는 옥류동천이다. 옥인동 역시 옥류동과 인왕산이 합쳐진 이름이니 인왕산 남쪽은 예나 지금이나 장동팔경 중 하나이다.

▲ 인왕산 수성동 계곡 가는 길_윤동주 하숙집 터

통인동에서 인왕산 치마바위가 보이는 옥인동 오르는 길은 완만한 기울기로 걷기에 좋다. 걸을수록 맑은 공기가 코끝을 상쾌하게 한다. 윤동주 하숙집터를 지나자 계곡 물소리가 발아래에서 들리는 듯하다. 가까이 귀를 대어보니 아스팔트 아래가 복개되어 물이 흐른다. 복개 전 이 도로는 계곡이다. 계곡의 시작점을 찾아 고개를 드니 인왕산 정상과 곡성이 한눈에 들어온다. 80여 년 전 청년 윤동주도 이 계곡을 거슬러 올라갔을까? 시를 쓰고 고향을 그리며 걸었을 것이다. 수성동 계곡에 다다르니 300여 년 전 겸재 정선의 그림들이 한눈에 펼쳐지는 듯 하다.

장동팔경첩의 장동은 어디일까

▲ 인왕산 수성동 계곡물과 치마바위

가을이 깊어가는 시월,가을산인 인왕산이 옷을 갈아입는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서산은 들꽃과 억새가 뒤엉켜 가을을 재촉한다. 수성동 계곡 초입에 서니 인왕산 치마바위가 석양에 물들고 있다. 너럭바위가 있는 이곳은 겸재 정선의 그림터다. 백악산 계곡과 인왕산 남쪽을 눈으로 보고, 발로 걸으며 붓과 먹으로 그림을 그렸다. 이곳이 그 옛날 세도가가 살았던 장동이다. 통의동과 효자동,백운동과 옥인동 일대가 경복궁의 서쪽으로 장동이다. 서촌이라 익숙한 이곳에서 바라보니 누상동과 옥인동이 경계다. 도성 안에 계곡이 흐르고 별장터가 있었던 승경지다. 바위에 오르니 목멱산도 한 눈에 들어온다.

비 내리는 여름, 비가 그친 후 개인 하늘과 바위 그리고 나무가 그림이 되었다. 단풍이 드는 가을,눈 내리는 겨울 그리고 진달래 피는 봄 계절마다 절기마다 별천지다. 이 모든 풍경을 눈에 담고,붓으로 먹으로 그림에 담았다. 하얀 구름을 머금은 백운동, 자문밖 자하계곡에 물안개 피어오르는 자하동, 물소리 아름다운 수성동, 반쯤 핀 모란같은 백악산의 대은암과 취미대, 백세청풍 바위가 있는 청풍계, 인왕산 기슭의 필운대, 백악산의 청송당과 독락정이 장동팔경첩에 그려져 있다. 하나같이 보물이고 국보급이다. 겸재 정선은 유란동에서 태어나 백악산과 인왕산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렸다. 목멱산과 한강을 오가며 수천점의 그림을 그려 선물을 하였다. 삼천리 금수강산을 순례하고,길을 걸으며 붓으로 먹으로 표현을 하였다.

인왕제색도, 겸재 정선의 인생작

▲ 인왕산 수성동 계곡의 가을

인왕산의 비 오는 모습을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끼며 겸재 정선은 그림을 그렸다. 비 개인 후 인왕산의 여름 풍경을 담아 붓과 먹으로 선을 그린다. 삶을 마감하는 50년 지기 친구에게 인생작을 바친다. 76세 나이에 혼신의 힘을 다하여 81세 친구 사천 이병연에게 선물하려 뛰어가 전한다. 땀인지 눈물인지 하염없이 가슴에 흐른다.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는 산이다. 죽음을 탄생으로 표현하였다.미래를 과거로 들어가 그림으로 표현했다. 옥구슬처럼 흐르는 물소리,비 내리면 콸콸 쏟아지는 계곡물은 오늘도 흐른다. 너럭바위와 너럭바위에 연결된 통돌 2개가 물소리와 어둠이 내리는 소리에 고요하게 버티고 있다. 기린교는 언제부터 이곳에 있었을까?

기린을 닮은 상서로운 기린교

▲ 인왕산 수성동계곡 위 정자_안평대군 비해당

안평대군의 옛 집터인 비해당에 있었던 통돌이다. 대군의 집터는 도성 밖에 무계원이요, 도성 안은 비해당이니 이곳에 사람들이 많이 오갔다. 도성 안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통돌 2개다. 3.7m 길이에 35cm 가로와 두께가 2개이니 70cm 통돌이다. 600여 년 전 과학기술로 만든 도성 안 돌다리이니 대단함을 너머 경이롭다. 이름도 기린(麒麟)이다. 수컷과 암컷을 상징하는 상서로운 동물을 표현하였다. 털 달린 360가지 짐승 중 우두머리격이다. 어질고 태평성대를 기리는 성인(聖人)의 상징물이다. 길인(吉人)이다. 대군의 옷에 그려진 기린의 모습에서 이름이 왔을까? 아버지 세종과 약속을 지킨 안평대군의 비해당에 가는 길에 통돌 다리 2개가 나란히 있다. 기나긴 세월속에 슬픔과 기쁨을 담아낸 통돌 다리가 기린교(麒麟橋)다.

경복궁에서 걸어서 10여 분 거리에 산이 있다. 인왕산 아래 첫 계곡이 있는 수성동 계곡은 겸재 정선을 만나는 시간여행 코스다. 수성동 계곡에 펼쳐진 너럭바위을 보며 우리나라 유일하게 보존된 통돌도 만날 수 있다. 옥구슬처럼 흐르는 계곡물, 청계천의 발원지 도롱뇽과 가재,버들치가 사는 고향 같은 마을이다. 공간 속에 숨어 있는 아름다운 시간이 머무는 곳이다. 1급수를 만날 수 있는 자연생태 보호지역이 서울 한복판에 있다. 한양도성 성곽길 속 가장 아름다운 경치가 펼쳐진다. 가을이 되면 더욱 멋있게 변하는 산이 인왕산이다. 해가 지면 낮과 밤의 경계를 눈으로 볼 수 있는 그림같은 곳이다. 도성 안 서울의 야경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멀리 볼 수 있다.

▲ 인왕산 수성동 계곡과 기린교_한양도성 시간여행

바쁜 일상속에서, 빌딩과 빌딩 숲 서울에서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있다. 한양도성 안과 밖, 인왕산과 백악산을 보며 역사와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우리 곁에 있다.서울은 살아 있는 역사 박물관이다. 서울은 지붕없는 문화 전시관이다. 서울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천이 이어져 강이 흐르는 거대한 도시이다. 길 위에서 꿈을 심듯, 수성동 계곡 안 기린교에서 활기차고 늠름한 기린아를 만날 수 있다. 이곳이 바로 서울, 한양도성 옛길이다.

▲ 최철호 성곽길 역사문화연구소 소장 - (저서)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최철호 소장]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
‘한양도성에 얽힌 인문학’ 강연 전문가
한국생산성본부 지도교수
지리산관광아카데미 지도교수
남서울예술실용전문학교 외래교수

저서 :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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