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화탁지의 음양오행 성격론] ‘꼰대’의 사전적 의미는 ‘늙은이’이다. 그러면 ‘늙은이’의 사전적 의미는 무엇일까? ‘나이가 많아 중년이 지난 사람’이다. 꼰대의 조건이 성립하려면 일단 나이가 많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젊은 꼰대들이 상당히 많아지는 추세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주위에서 흔히 쓰는 꼰대의 의미는 ‘자기 주장만 옳고 타인은 틀리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사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꼰대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본인 위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생긴대로’ 살고 ‘꼴리는 대로’ 사는 것이 가장 편하다.

인간이 모여 만든 사회란 곳은 나이성별을 불문한 꼰대들이 모여 사는 세상이다. 안그런척 하고 살지만 사람들은 자기만의 세계관에 의지하여 살아간다. 조금 더 고집스러운 사람과 덜 고집스러운 사람이 존재할 뿐.

인간이 모여 사는 사회에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다. 역사와 철학 그리고 문학이 대표적인 인문학이다. 수많은 시간 동안 벌어진 사건이 역사라면, 사상은 철학이 되고 사상이나 감정을 언어로 기록한 것은 문학이 된다. 인문학의 특징은 정답이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조금 더와 덜’의 문제이지 인간 자체가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교육의 목적은 각각의 우주에 갖힌 수많은 꼰대들에게 타인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우수한 인재를 길러내는 것은 그 다음 목표가 되어야 한다. 유유상종이라고 비슷한 생각과 기운을 가진 사람들은 서로를 끌어당긴다. 바른 생각과 좋은 기운을 가진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을 주위에 포섭한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꼰대의 특징은 융화가 힘들다는 것인데 하나의 목적이 형성되면 뭉치기도 한다.

최근 영화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좀비’라는 것이 있다. ‘살아있는 시체’를 일컫는다. 단어 자체가 모순이다. 시체란 말은 이미 죽은 몸을 의미하는 것인데 살아있는 시체라니. 여기서의 살아있음은 진정한 의미의 살아있음은 아니다. 육체만 살아있어서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타인의 피를 빼앗는, 욕구충족만이 유일한 생존 목표이다.

사회가 각박해지면서 점점 좀비의 행동양상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꼰대는 단체행동이 힘들지만 좀비는 단체로 움직인다. 꼰대의 사고를 가지면서 집단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사회 곳곳에 자주 등장하는데, 이들의 움직임이 마치 좀비 영화의 한 장면과 흡사해 소름이 끼친다. 그들의 목표는 오직 자신들의 생존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집단행동을 통해 본인들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는 것은 정당한 것이다. 그러나 그 단체에 소속된 사람들만의 이권만을 주장하면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좀비의 집단행동과 다를 것이 없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주장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더 많은 이들의 안전과 행복을 위한 것이어야 진정한 민주적 집단행동인 것이다.

교육이 제대로 서지 못하는 나라의 특징은 꼰대의 연령층이 낮아진다는 것이다. 봄에 성장하고 여름에 변화발전해야 가을에 제대로 된 수확을 거둘수 있는 것이다. 교육은 바로 봄의 시절에 해당된다. 나무는 곧게 위로 뻗거나 넝쿨처럼 주변의 다른 존재를 감고 올라간다. 성장의 기운인 것이다. 그러다 여름이 되면 무성하게 가지와 잎을 확장시킨다. 주위를 둘러보지 않고 위로만 자라는 나무는 결국 자기의 주장만 옳다고 보는 꼰대와 다를 바가 없다.

기본적으로 오픈마인드가 되어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틀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그래야 안전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열린 사고와 긍정의 마인드를 갖게 하는 것은 결국 교육의 몫이다. 어떤 지도자가 뽑히느냐가 그 나라 국민의 수준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그 수준을 만드는 것이 교육의 힘이라는 사실도 알아야겠다.

▲ 오경아 비엘티 아케아 대표

[오경아 대표]
건국대 철학과 졸업
전 수능영어강사(번역가)
현 비엘티 아케아 대표
현 교환일기 대표
현 세렌 사주명리 연구소 학술부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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