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단의 땅_용산 미군기지 안 일본군 감옥_위수감옥 잔존 건축물

[미디어파인 칼럼=최철호의 한양도성 옛길] 바람이 차갑다. 가을의 끝인 듯 은행나무에 매달린 노란 은행잎이 휘날린다. 숭례문 성벽을 따라 오르니 억새가 흔들거리며 손짓을 한다. 목멱산 백범광장에서 잠두봉과 한강이 한눈에 보인다. 도성 안과 밖의 모습은 언제나 흥미롭다. 숭례문 밖 남지가 있었고, 한양도성 옛길에 남묘가 있었다. 목멱산 성곽에서 바라 본 한강은 동에서 서로 말없이 흘러간다.

100여 년 전 한강 나루터는 어느새 다리가 놓여져 붐빈다. 저 멀리 한남대교에서 반포대교,동작대교와 한강대교 그리고 원효대교는 언제 만들어졌을까? 대교의 남단과 북단을 오가는 차들이 매일매일 분주하다. 빌딩과 빌딩 숲, 주택과 주택이 빽빽한 목멱산 아래 풍경은 서울의 한 중심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철길이 보이고, 찻길이 보이고, 천과 강이 있는 뱃길까지 보인다. 여기는 서울의 중심, 정중앙 용산이다. 왜 용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어 졌을까? 빌딩 숲 사이에 한강까지 펼쳐진 나무 숲은 어디일까? 목멱산 아래 야트막한 산이 보인다.

목멱산 아래 한강 사이에 산(山)을 거닌다

▲ 미군기지 안 가장 높은 언덕_둔지산에서 바라 본 목멱산 N타워

서울 한복판에 이름도 생경한 산이 있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산이다. 서울 시민이 살아보지 못한 산이 서울에 있다니 궁금하다. 아니 서울이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서울에 있으면서도 서울이 아닌 금단의 땅이 있다. 주소가 따로 없다. 과거만 있다. 그곳을 향해 걸어간다. 미래를 꿈꾸며 그 길을 찾아 나선다. 목멱산 자락에서 한강으로 가기 전 가장 낮지만 가장 멀리 보이는 산이다. 목멱산을 등지고 한강이 보이는 이곳, 저 멀리 남태령 너머 관악산까지 보이는 언덕이다. 누가 살고 있었을까? 70m 산의 이름은 무엇일까?

▲ 미군기지 안 가장 높은 언덕_둔지산에서 바라 본 바깥 세상_오른쪽 이슬람사원

115년 동안 쉽게 다가설 수 없는 산이었다. 더욱 궁금하다. 역사 속으로 잠시 시간여행을 떠나 보자. 한양도성은 백악산을 주산으로 좌청룡 낙타산과 우백호 인왕산 그리고 남주작 목멱산이 성곽으로 18.627km 이어져 있다. 도성 밖 목멱산 자락에서 한강을 건너기 전 천혜의 요새가 여의도 크기의 군기지로 있었다. 아니 아직도 사용되고 있다. 1904년 러일전쟁 이후 일제는 이 일대를 조선주차군 사령부의 주둔지로 사용하였다. 목멱산과 한강 사이에 낮은 구릉지대인 용산 일대 약 300만 평을 강제 수용하였다. 이곳을 위수지역으로 선포하며 병참기지로 사용한다. 강화도에서 한강진까지 수운의 최적지다. 제물포에서 용산역까지 그리고 이곳 주둔지까지 화물열차가 들어온 곳이다. 경인선과 경부선 그리고 경원선까지 이곳에 들어 올 수 있게 하였다. 이 언덕에 사령부가 있었고, 총독부 관저도 있었던 곳이다. 이 산의 이름은 둔지산(屯芝山)이다.

서울 한복판 금단의 땅, 둔지산(屯芝山)을 만나다

▲ 금단의 땅_미군기지 안 일본군 감옥_위수감옥 통벽

둔지산 일대는 일제강점기를 지나 해방 후 미군기지가 되어 지금껏 가기 힘든 금단의 땅이 되었다. 작년부터 개방된 이곳을 운좋게 찾아 숨겨진 역사와 문화를 따라 걸어 본다. 14번 게이트인 사우스 게이트를 통해 버스로 들어간다. 걸어가고 싶지만 아직 걸어서 혼자 갈 수 없다. 9km 코스로 이어지는 버스 투어는 미군기지 내 110여 년 전 역사와 문화가 숨쉬는 공간이다. 차창밖으로 보이는 건물들은 모두 영어로 표기 되어 있다. 이곳은 어디인가? 미군기지 안의 크고 작은 건물,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있는 이곳은 마치 미국의 작은 도시를 연상케 한다. 아스팔트 길을 따라 더 깊숙이 들어가니 시간이 멈춘 듯 숨이 멈춘다. SP벙커(일본군 작전센터)에서 121병원(총독관저 터) 그리고 위수감옥이라 불리는 일본군 감옥에서 차도 멈춘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목멱산 아래 위수감옥은 인왕산 자락 경성감옥이라 불린 서대문 형무소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적벽돌 형식으로 지어졌다. 언제 지어졌을까? 감옥의 용도는 무엇일까? 위수감옥 둘레 높은 벽 사이에 시구문도 있다. 110여 년 전 이 감옥에 수감 되었던 사람들이 궁금하다. 일본군이었을까, 독립군이었을까? 혹시 살아 나왔을까...

▲ 미군기지 안 가장 아름다운 개천_목멱산에서 흘러 온 600여 년 전 만초천과 홍예교

둔지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이곳은 민족의 수난을 상징하는 아픔의 공간이다. 아무도 쉽게 들어갈 수 없는 멈춰버린 시간이다. 누구도 즐겁게 볼 수 없는 다크 투어 공간이다. 하지만 함께 가 보아야 한다. 누구나 쉽게 걸어가 시간여행을 해야 한다. 젊은 학생들이 생태적인 공간으로, 젊은 청년들이 역사적인 공간으로 탈바꿈 해야 한다. 둔지산 정상에 서서 보니, 목멱산이 병풍처럼 눈앞에 펼쳐져 있다. 목멱산 N타워가 보이고, 해방촌의 힘찬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태원의 활기찬 모습과 후암동의 역사적인 배경, 남영동의 아픈 기억, 효창동의 문화적인 모습들이 만초천(蔓草川) 따라 용문동을 지나 한강까지 흐르는 듯하다.

목멱산에서 흘러 온 옥류동천 같은 만초천(蔓草川) 지류

▲ 미군기지 안 가장 아름다운 개천_목멱산에서 흘러 온 만초천

미군기지 안에 목멱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만초천이 600여 년 전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목멱산에서 둔지산을 거쳐 흐르는 개천은 인왕산 무악재에서 발원한 만초천 주류와 만난다. 청파동 배다리 아래 흐르는 물은 한강로 전자상가를 거쳐 원효대교 밑으로 흘러 한강과 만난다. 7.7km 기나긴 만초천은 보이지 않은 채 복개된 도로 밑으로 개천물이 흘러가고 있다. 미군기지 안의 만초천은 복개가 되지 않은 자연상태의 실개천이다. 즐비한 느티나무와 나무 사이로 맑고 깨끗한 물이 옥구슬 구르듯 소리없이 흐른다. 서울 곳곳의 개천의 물들이 이처럼 맑았을 것이다. 만초천을 바라보고 있으면 도심속에 물소리와 새소리 그리고 바람 소리만 들을 수 있어 이곳이 서울임을 잊어 버린다. 110여 년 넘게 외국군의 허락 없이 들어올 수도 만초천을 볼 수도 없었던 잃어버린 땅이었다. 해방공간에서도 해방되지 않은 주소 없는 유일한 땅이 바로 이곳이다. 그래서 목멱산 아래 첫 동네 해방촌이 더 더욱 가깝게 보이고 애착이 가는 공간이다.

▲ 미군기지 안 가장 높은 언덕_둔지산 자락에서 기우제를 지낸 남방토룡단_남단 터

만초천을 따라 물소리를 들으며 느티나무 가로수 길을 걸어가 본다. 언덕을 따라 약간 오르니 남단이 있었던 제단의 돌이 몇 개 보인다. 남단은 남방토룡단이다. 600여 년 전 농경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농사를 위해 기우제를 기냈던 신성한 공간이다. 인왕산 아래 사직단에서 시작한 기우제는 백악산 정상과 숭례문을 거쳐 목멱산 정상에서도 지냈다. 비가 내리지 않으면 한강에 가장 가까운 곳 바로 둔지산에 올랐다. 남단이 있는 이곳에서 12번째 기우제를 지냈다. 왕이 직접 한강을 향해 용이 노니는 산에서 마지막 정성을 다해 회초리를 맞는 심정으로 제를 지냈던 곳이다. 기우제를 지내면 꼭 비가 내린다. 아마도 비가 내릴때까지 지내는 진심이 통했을 것이다.

남단(南壇)을 지나 이태원 가는 길 위에서...

▲ 미군기지 주요시설 중 한미연합사령부 앞에서

도성 밖으로 나와 숭례문을 거쳐 한양도성 옛길인 이태원에서 행차가 잠시 멈추었다. 숭례문에서 동작나루까지 옛길은 바로 이태원이 새로운 출발지였다. 지금은 동작대교까지 직진이 안 된다. 용산고 정문 앞에 이태원 표지석과 미군기지로 높은 담만 서 있다. 마치 성벽처럼 높이 쌓인 담은 남단과 이태원을 갈라놓았다. 누가 성벽을 쌓았을까? 누구의 땅인가... 외국군의 허락없이 들어갈 수 없는 금단의 땅 약 73만 평이다. 여의도 크기보다 약간 작은 규모다.

목멱산에서 한강을 가는 길에 수많은 길이 있고, 수많은 담이 있다. 성벽같이 높은 담을 자유롭게 오가고 싶다. 한양도성 따라 4대문과 4소문이 있듯이, 미군기지 높은 담에 소통의 문으로 통하고 싶다. 한양도성 성곽길을 오가듯, 미군기지 철옹성을 편한 마음으로 걷고 싶다. 목멱산에서 흘러 한강을 향해 가는 만초천의 맑은 물처럼 용산 곳곳을 걸어가고 싶다.

▲ 미군기지 주요시설 중 한미연합사령부 앞에서

한남대교에서 원효대교까지 남단에서 북단을 직진 해 걸어가듯, 동작대교도 남단에서 북단을 곧바로 직진하여 목멱산 정상까지 걸어가는 날을 그려본다. 자유롭게 흐르는 만초천 물처럼, 천변에 아름답게 물든 느티나무처럼 삶의 터전이 될 그날을 그려본다. 목멱산 아래 미군기지가 용산역사공원으로 다시 태어날 때 꿈과 희망이 해방촌 곳곳에 심어질 것이다.

2020년 새로운 시간이 열리듯, 우리나라 최초이자 최대의 국가공원이 용산에서 조성되길 기대해 본다. 모름지기 꿈과 희망은 이루어질 것이다. 함께 꿈을 꾸며 같이 걸어가 볼까요.

▲ 최철호 성곽길 역사문화연구소 소장 - (저서)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최철호 소장]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
‘한양도성에 얽힌 인문학’ 강연 전문가
한국생산성본부 지도교수
지리산관광아카데미 지도교수
남서울예술실용전문학교 외래교수

저서 :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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