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위플래쉬> 스틸이미지

[미디어파인 칼럼=바이올리니스트 김광훈의 클래식 세상만사] 영화 ‘위 플래쉬’가 이야기다. 내용을 ‘초 간단히’ 요약하자면 천재 재즈 드러머(학생)와 그를 극한까지 몰아붙이는 가학적 선생 이야기. 음악 예술계를 잘 모르는 이들에게는 아름답기만 할 줄 알았던 음악세계가 저런 이면이 있나 싶기도 할 텐데, 모든 픽션이 그러하듯 이 영화 역시 적당한 현실과 적당한 허구가 버무려져 있다.

그러니까 드라마 ‘미생’을 보고 회사생활을 100% 이해(?)해서는 곤란하며, 오래 전 드라마 '하얀 거탑‘을 보고 의사들의 삶을 안다고 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런데, 영화 ‘위 플래쉬’에서 학교 재즈 밴드 지휘를 하던 (가학적) 교수가 이런 대사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밴드 지휘는 바보라도 할 수 있어.’ 이 말은 영화의 상황에서는 물론 적절한 대사일 수 있지만, 결론적으로는 틀린 이야기이다.

지휘자는, 정말, 무척, 굉장히 중요하다.

필자가 클래식 음악에 그다지 천착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지휘자를 보고 있노라면 ‘저게 뭐람, 팔 휘젓고 있는 건 나도 할 수 있겠다. 모든 건 다 쑈야.’ 라고 (부끄럽게도)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클래식 음악을 전혀 모르는 이들에게조차도 지휘봉을 들고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마에스트로의 폼새는, 남자라면 마도로스의 로망처럼 순진하게, 혹은 순수하게 품고 있는 이상향 중 하나일 것이다.

지휘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건, 필자가 본격적으로 클래식 음악을 공부하면서부터다. 독일 뮌헨에서 수학하는 동안 운 좋게도 마리스 얀손스며 에사-페카 살로넨, 그리고 주빈 메타 등과 같은 대 지휘자들과 함께 연주를 해 보기도 하였고 그들을 통해 지휘자의 도(道)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깨달음(?)은 이들에게서만 얻는 것은 아니다. 비록 대중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지휘자이지만 실력 있는 지휘자에게서, 혹은 반대로 대중들에게 ‘엄청’ 알려져 있으나 실속 없는 지휘자에게서도 배움은 계속되었다.

(필자의 생각으로) 지휘자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연습을 어떻게 시키느냐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리허설 시간 안배의 중요성, 원하는 음악을 분명히 전달하는 능력, 그리고 오케스트라의 밸런스나 좋지 않은 음정 혹은 리듬을 찾아내는 남다른(!) 귀도 필요하다. 기술적인 모든 것을 갖추기도 어렵겠지만 운 좋게(?) 그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지휘자라 해도 사람(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아우르지 못하면 이것은 속된 말로 ‘말짱 도루묵’이다.

사람을 어루만지지 못하면 음악은 경직되고 그들이 그 지휘자와 좋은 협력을 이룰 리가 없다. 또다시 운 좋게(?) 여기까지, 그러니까 지휘의 모든 기술과 단원들을 아우르는 능력의 소유자라 해도, 연주 당일, 무대 위에서 마지막 1%의 마술 -무대 위의 카리스마 혹은 음악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큰 지휘자가 되기 어렵다. 필자가 딱 잘라 1%라고 했는데 이것을 사실 10%라 해도 좋다. 그만큼 이 부분은 중요하다. 우리가 음반 속에서 알고 있는 역사 속 지휘자들은 이 부분, 그러니까 실연(實演)에서 소위 말하는 무대 위 카리스마를 부릴 줄 아는 이들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무대 위 카리스마는 고사하고 좋은 리허설과 교감을 나눌 지휘자를 만나는 것조차 쉽지가 않다. 많은 전문 오케스트라 플레이어들이 ‘내가 지휘를 해도 저보다 낫겠다.’는 이야기에는, 어느 정도 뼈 있는 ‘진정성’이 내포된 셈이다.

음악의 세계에서 지휘자는 작게는 기업의 장, 크게는 국가의 경영인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흥하고 있는 애플의 예를 통해,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과 함께 쇠락해 버린 폴라로이드 사(社)를 통해 우리는 장(長)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소수에게 허락된, 1%의 마술을 부릴 줄 아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어느 분야에서건, ‘엄청난’ 리더십까지는 아니더라도 구성원들을 이해해 주고 소통해 주는 것만으로도 ‘매우 매우’ 감사한 일일 것이다.

▲ 바이올리니스트 김광훈 교수

[김광훈 교수]
독일 뮌헨 국립 음대 디플롬(Diplom) 졸업
독일 마인츠 국립 음대 연주학 박사 졸업
현) 코리안 챔버 오케스트라 정단원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겸임 교수
전주 시립 교향악단 객원 악장
월간 스트링 & 보우 및 스트라드 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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