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컬럼=박창희의 건강한 삶을 위해] 대한민국은 가히 음식공화국이다. T.V의 요리 방송을 보자. 예전엔 여성이 한, 두 명 나와 차분히 음식을 만들더니 요즘은 차원이 다르다. 남성의 약진이 두드러진 게 특징인데 한 술 더 떠 예, 닐곱 씩 떼를 지어 나온다. 요리와 수다가 여성의 전유물처럼 느껴지던 시대는 가고, 웃고 떠들며 음식을 만드는 남성들의 시대가 도래했다.

인류학자 랭엄은 인류의 진화에서 요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인간은 불을 무서워하지 않으며, 그것으로 요리까지 하는 유일한 동물이다. 유일을 좋아하는 인간은 동물 중 유일하다는 표현을 가장 많이 하는 동물로도 유일하다. 인류의 진화를 연구하던 칼턴은 인간은 동물적 존재임이 분명하지만, 그것을 벗어나 좀 더 인간적인 존재로 도약하게 된 결정적 요인을 요리의 발견으로 보았다.

같은 동물이면서 그 종에서 벗어나고 싶은 인간은 요리라는 매개를 통해 동물과의 차별을 도모했다. 어쨌거나 요리 본능을 인간과 결부시켜 오랑우탄과 내가 같지 않음을 일깨워준 학자들께 감사드린다. 인간은 불을 이용하여 감자만 익혀 먹은 게 아니라 그것으로 철을 다스려 무기를 만들었으니 그 불을 지배하는 자가 결국 세상을 지배하는 게 된다.

어젯밤에 철문을 잠근 후 잠이 들고, 오늘 아침은 수저를 들고 익힌 밥을 먹었으니 나를 지키고, 먹게 함에 불의 역할은 지대하다. 그뿐 아니라 불의 힘을 빌려 맹수의 접근을 막은 탓에 나무 위의 인류는 조심스레 땅으로 내려와 직립원인의 형태를 갖추어 갈 수 있었다. 우리가 네 발로 기지 않고 걸어서 회사에 갈 수 있는 것도 불의 영향이다. 이처럼 인류의 진화 및 역사에 큰 공헌을 한 위대한 불, 그 불을 현시대에 지배하는 자들이 있는데 바로 요리사다.

요리사가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가 왔다. 시청자들이 정치인이 떠드는 채널을 황급히 먹방 채널로 돌리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활발한 사회 참여를 통한 여성의 약진이 먹이사슬 상부 구조에 안주한 남성들을 밀어내자 위기의 수컷들은 본래 불을 다스리던 정복자의 위엄을 요리라는 매개를 통해 되찾고자 했다. 그러나 피 튀기는 싸움을 즐기던 이들은 여성성이 강하고, 정적인 기존의 요리 방송이 썩 내키지 않았다. 정복자들은 전리품 가져오듯, 상대의 냉장고를 통째로 스튜디오로 옮겨와 요리를 만들어 낸다. 냉장고 속 음식은 그 주인의 식습관이나 생활패턴을 고스란히 나타내는 지표가 된다. 사생활을 드러내 곤혹스럽겠지만 개의치 않는다. 곰팡이가 피거나 당장 내다 버릴 상태의 음식이 나와도 모두 유쾌하다.

전통적 가족관계에서 보자면 냉장고 속이 가장 궁금한 사람이 시어머니일 것이다. 모처럼 아들 집에 갔으니 며느리가 아들이나 손자에게 무엇을 먹이는지 직접 확인할 좋은 기회다. 판도라의 상자에서 먹다 남은 참치 캔이나 햄 조각, 그리고 식어버린 피자나 몇 쪽 나온다면 그 가족의 즐거운 해후는 기대하기 힘들다.

냉장고 속 내용물이 궁금하기는 시청자도 마찬가진데 현대판 석빙고가 열리면 그 안의 음식은 낱낱이 파헤쳐진다. 냉장고의 주인은 먹고 싶은 음식을 요구하고 젊은 세프들은 제한된 재료를 조합하여 듣도 보도 못하던 요리를 해낸다. 음식인지, 공산품인지 분간이 안 되는 식재료를 자르고 붙이고 뿌려내어 뭔가를 만든다.

심야시간대에 이를 지켜보는 굶주린 여성들은 힘세고 멋진 남성들이 만드는 기름진 음식에 넋이 나간다. 화면 속 요리를 먹을 순 없지만, 우리의 손안엔 스마트폰이 있고, 무수히 많은 배달의 앱이 깔려있다. 치킨, 족발, 보쌈 등을 파는 야식집 전화통은 덩달아 불이 난다.

T.V 속 화면에서는 완성된 요리를 냉장고의 주인이 음미하며 먹는데 정복자의 힘에 눌려 격찬을 쏟아낸다. 요리의 본질인 재료의 특성과 영양이 고려되지 않은 채 오락이나 유희의 소품으로 전락한 음식을 말이다. 미디어가 주는 굶주림일까. 지켜보는 필자도 배가 고파진다.

▲ 박창희 다이어트 명강사

[다이어트 명강사 박창희]
-한양대학교 체육학 학사 및 석사(동대학원 박사과정 중)
-건강 및 다이어트 칼럼니스트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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