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이기돌의 잡세(雜稅)이야기] 나는 스스로 유리지갑이라 한 적이 없다. 나를 감싸고 있는 것은 주로 가죽이거나 천 조각들이지 결코 유리조각으로 만들어 지지 않았다. 왜 나를 유리지갑이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 다만, 사업소득자의 지갑에 비해 투명하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내 스스로가 더 잘 안다.

내 주인이 다니는 직장에서 열심히 근무한 대가로 지급받는 급여를 나에게 넣기 전에 직장에서는 과세관청에 급여로 얼마를 주는지 알리고, 그것도 모자라 사업소득자들은 1년에 한번 경우에 따라서는 중간예납으로 한번 이렇게 많아야 두 번 나누어 내는 사업소득세에 비해 나의 주인은 매월 근로소득세를 미리 내고 있는 것이다. 갑종근로소득세의 약칭 갑근세 원천징수라고 부른다.

이 근로소득세는 연말정산이라는 제도를 통해 총납부할 세액과 미리 납부한 즉 원천징수한 것과 비교하여 환급 또는 추가납부의 방식으로 1년의 근로소득세를 정산한다. 취업한 이후 내 주인은 거의 매년 연말정산 때 환급을 받아 나를 배불리 해 줬다. 때로는 기분 좋다고 술 독에 빠져있기도 하고 아이들 선물을 사기도 했다. 지갑으로써 나는 정말로 기뻤다. 나의 주인이 미리 낸 거지만 그래도 돌려받는 다는 것은 공짜인 듯 기뻤다.

사업소득자의 지갑들은 조삼모사인데 뭘 그리 좋아하냐고 한다. 그도 맞는 말이 매월 원천징수로 많이 걷어뒀다가 연말정산 때 환급해 주는 것이니 1년으로 따지면 조삼모사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나의 주인과 주인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화를 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날따라 엉덩이로 나를 죽일 정도로 짓누르면서 말이다. 심지어 내가 오른쪽에 있는데 왼쪽 엉덩이를 들고 있으니 나는 정말 죽을 지경이다. 나의 주인은 화나지 않을 때 나를 가슴가까이 두어 따듯하게 했었는데 오늘은 왠지 속상하고 하염없이 서글프다. 오랫동안 나를 간직해 주고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워 그 이유라도 알아야 했기에 조용히 그들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

나의 주인과 주인의 주변 사람들이 술자리에서 나누던 얘기를 그대로 옮기려 하니 욕도 많이 들어있고 술에 취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말도 있고 나의 주인이 평생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말들이어서 알아 들을 수 없어서 내 주변 지갑들과 상의 끝에 함께 내용을 정리해 보기로 작정을 했다. 그래야 이런 얘기를 듣지 못하여 속상해 하는 지갑들에게 우리의 주인들이 왜 화가 났는지 설명해 주고 딴 마음을 먹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전적으로 우리들 지갑을 위한 작업이다. 당초에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지갑들이 이 일에 동참해 주었고 나의 주인과 주인의 주변 사람들보다 더욱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주장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한 사실에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주인이여! 죽어라 일만 하지 마시고 공부도 하고 책도 읽어서 나를 유리지갑이 아닌 유식한 지갑으로 만들어 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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