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박창희의 건강한 삶을 위해] 전국 각지에서 출발한 식구들이 모두 모여 짐을 풀더니 음식을 만들고 상을 놓느라 분주하다. 나무 제기를 닦고 쌀을 담아 향을 꽂고 초를 켜는데 모든 게 형식이다. 과일의 위, 아래를 날려 제사상 위에 좌대각, 우대각을 맞추어 배열한다. 주방에선 탕국이 끓어 넘치고 구석에선 붓펜에 서툰 글씨로 뜻도 제대로 모른 채 애매한 한자를 써댄다.

모인 이 중 서, 넛의 여성은 튀는 기름 탓에 신문지를 깔고 바닥에 앉아 전을 부치는 중이다. 근엄하게 서있는 남성들 중 한 사람이 뭐가 빠졌네, 위치가 틀렸네 하며 야심한 밤의 이 이벤트를 총괄, 지휘한다. 제례에서 남자의 위상이나 서열은 확연히 여성의 그것보다 우월하다. 앞전에 선 이는 남성이요, 뒷전에서 조기비늘을 긁는 등 고생하는 것은 오롯이 여성 몫인데 말이다.

이윽고 문을 열어 제친 채 제사가 시작되는데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라 그 누구도 춥단 말을 못한다. 혼령을 부르기 위해 한 밤중에 문을 여는데 오뉴월엔 모기가 날아들고, 한겨울 제사엔 추위가 엄습한다. 젓가락 끝으로 상을 치더니 잔을 올리고 절을 혼자, 또는 단체로 몇 번씩 한다. 이윽고 조상님 식사가 끝나면 물을 말아 숭늉을 올리는데 음식하나 집어먹다 혼줄이 난 꼬맹이가 중얼거린다. 할머니가 와서 저거 먹어요? 드신다고 귀에 속삭여 주는 이조차 진짜 와서 잡숫는지, 아닌지 확신이 없다.

제사를 지내는 이조차 제사의 시작은 알 수 없다. 그냥 조상 대대로 해왔으니 하는 거고 복잡한 절차를 법령처럼 따르는 것 역시 당연시 여긴다. 안하면 불경한 후손이 될꺼고 차림도 거나해야 조상을 볼 면목이 생기는 것이다. 사정이 생겨 제사 장소를 옮기면 네비도 없는 조상이 어떻게 찾아오나 의문이 들기도 한다. 제사가 끝나면 남은 음식을 챙겨 각자 밤길을 떠나는데 남은 음식도 썩 인기가 있는 편은 아니다.

주말이 아니면 연차나 휴가를 내야 하니 경제 활동하는 이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제사는 우리의 삶 중 절대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행사다. 행여 잊을까 달력에 500원 짜리 동전만하게 동그라미를 쳐 놓은 날, 그날이 바로 우리의 제삿날이다. 제사가 과연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필자 역시 어머니를 기리는 제사를 십 몇 해 지내왔음에도 늘 회의적 생각을 가지고 있다. 아픈 부모의 대, 소변을 가리며 병 간호를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우선 제사는 남을 의식하는 허례허식과 형식적 측면이 너무 강하다. 돈 들인 화려한 상차림이 조상을 위하고 효도하는 거면, 형편이 어려운 자의 초라한 젯상은 조상을 능멸한 것이 되나. 한 발 더 나아가 여러 이유로 제사를 지내지 않은 사람은 불효인가. 유태인 수십만을 죽인 아우스비추의 원흉은 90까지 장수를 누렸다.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고 후손에게 해코지를 하는게 과연 우리의 조상일까. 홍동백서, 좌포우혜, 조율시이. 누가 우리에게 그런 형식을 알려주었는지 모른 채 우리는 그저 그 형식을 영문도 모른 채 따를 뿐이다. 제사는 고단하고 피곤한 형식의 잣대를 죽은 자를 위해 그렇게 해야 한다는 명분을 들어 산자에게 들이댄다. 제삿날이라는 어감도 싫고 내 가슴에 환한 미소로 살아 있는 엄마를 해마다 제삿상에 올리는 것조차 기분이 좋질않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지내온 제사를 더 이상 지내기 싫다는 판단이 들었다. 우선 집사람에게 얘기한다. “이제는 더 이상 북어나 수박에 절하는 짓은 하고 싶지 않소” 내키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하지 않는 필자의 성격을 잘 아는 아내는 묵묵부답 말이 없다. 시골의 아버지를 만나 말문을 연다. “이제 어머니 제사는 안 지낼 겁니다. 제 가슴속에 늘 살아있는 어머니를 제사상에 올릴 때마다 돌아가시게 만드는 기분이 들어서요” 네 말이 맞다며 형식에 불과하니 지내지 말라는 말이 아버지 입에서 얼른 나온다.

연년생인 필자의 남동생은 지내겠다고 하는 모양이다. 아버지는 하겠다는 사람을 말리지는 말라고 하신다. 물론이다.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상대방에 하지말라 말할 권리는 없다. 이제 고등학생에 불과한 쌍둥이들에게도 당부한다. 너희들도 엄마, 아버지 제사는 이담에 하지마라. 형식을 없애줄테니 편하게들 살아. 녀석들은 무엇을 먹느라 듣는 중, 마는 둥이다. 나이가 들어 흰머리가 늘수록 왠지 삶이 더 바빠지고 고단해지는 느낌이다. 진정한 미니멀 라이프는 불필요한 물건뿐 아니라 형식조차 들어내 버릴 수 있어야 한다.

▲ 박창희 다이어트 명강사

[다이어트 명강사 박창희]
한양대학교 체육학 학사 및 석사(동대학원 박사과정 중)
건강 및 다이어트 칼럼니스트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