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윤쓰의 ‘문제적 시각’] 요즈음 길거리에 나가든 지하철을 타든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있지 않은 사람을 보기 힘들다. 어느 순간부터 휴대폰의 개인 소유가 당연시되면서 스마트폰이 우리의 일상에 강하게 자리를 꿰찼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카카오톡’이라는 새로운 모바일 메시지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오프라인 대화와 맞먹을 만큼 온라인 대화가 늘어났다. 카카오톡은 채팅방 형식으로 되어있어 실시간으로 소통이 가능하다. 굳이 시간을 따로 내지 않아도 상대방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카카오톡은 바쁜 현대인들에게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러나 필자는 ‘카카오톡의 시대’가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오히려 휴대폰이 흔치 않던 시절, 집전화로 친구와 약속을 잡던 때가 그립다. 카카오톡이 생겨남에 따라 신조어들이 많이 생겼는데 대표적인 예로는 ‘썸’이라는 말과 이에 파생된 ‘썸남’, ‘썸녀’라는 말이 있다.

썸: ‘썸싱을 타다(There is something between us)’에서 나온 말로 남녀 간 탐색만 하는 단계를 이르는 신조어다. 즉, 남도 아니고, 연인도 아닌 애매한 단계를 이르는 말로 사용된다

상대방의 표정을 읽으며 대화하는 면대면 대화가 아닌 ‘문자 그대로’의 카카오톡 대화는 ‘애매함’을 불러일으킨다. 감정을 숨기려고 노력해도 눈빛이나 표정 등에서 드러날 수밖에 없는 면대면 대화와 달리 카카오톡으로 대화하는 것은 ‘글자’라는 방패 안에 자신의 감정을 얼마든지 숨길 수 있다. 이러한 점으로 인해 상대방과 대화를 했어도 남에게 해석을 맡겨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카카오톡이 진정한 대화라고 착각하고 중요한 이야기를 카카오톡으로 해버리는 경우도 많이 발생한다. 상대방의 얼굴을 보고 직접 해야 예의인 ‘이별 통보’ 같은 경우도 카카오톡으로 달랑 보내버리고 상대방의 반응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차단을 하는 경우도 있다. 사람과 사람 간의 소중한 인연이 ‘카카오톡’ 메신저로 한순간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또한 카톡 내용을 확인하고도 답장을 하지 않는 것을 일컫는 ‘읽씹(읽고 씹기의 줄임말)’이라는 신조어의 등장은 즉각적으로 상대방의 반응을 알 수 있는 면대면 대화와 달리 답장을 기다려야 하는 카카오톡의 특성상 나온 말이다. 하염없이 답장을 기다렸는데 되돌아오는 것이 ‘읽씹’이라면 상대방에게 상처를 받거나 좋지 않은 감정이 생길 수 있다. 이런 신조어들의 등장은 카카오톡의 불편한 매력을 반영하는 듯 하다.

우리는 카카오톡으로 상대방과 대화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문자’와 대화를 하고 있다. 온라인 메신저가 발달함에 따라 까페에서 상대방을 앞에 두고 다른 사람과 카톡을 하거나, 오프라인에서의 만남이 어색한 카톡 친구가 생기는 현상은 씁쓸할 수밖에 없다. 카카오톡을 아예 하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 불편한 시대가 되어버린 것은 맞다. 그러나 이러한 카카오톡이 우리 주변 사람과의 관계를 가볍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는 게 더 어색한 일이 되어버려서는 안 된다.

단순한 메신저로만 감정을 나누기에는 너무나 소중하고 보고 싶은 사람들이지 않는가. 카톡으로만 연락하고 만나지 않는 소중한 인연이 있다면 당장 약속을 잡아라. 카톡이라는 장벽에 가로막혀 하지 못했던 말들이 그 인연을 만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끊임없이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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