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조소민의 물음표창고] 2011년 1월 31일. KBS는 매력적인 드라마 한 편을 선보인다. 학교를 배경으로 하지만 흔한 학원물이 아니었다. 다수의 남자 배우와 소수의 여자 배우가 출연했지만 그들 간의 N각 관계를 다루는 로맨스 코미디도 아니었다. 차가운 철학과 하얀 눈의 비린내가 그득 벤,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그런 드라마였다.

‘괴물’. 단어의 어감부터 이질적이고 괴상하다. 오싹하거나 혐오스러운 존재일 것 같고, 내 주위에서 없어져야 할 악질일 것이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우리에게 그런 ‘괴물’에 대해 이야기한다. 극중 표면적인 괴물은 여덟 명의 아이들과 대치하고 있는 살인마 ‘김요한’이다. 아이들은 괴물이 아닌 척 했다가, 괴물이 될 뻔 했다가, 괴물을 죽이려 들었고, 끝내는 성공한다. 그런 과정을 담고 있는 드라마다. 이 드라마를 성장물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렇다면 아이들은 무엇으로의 성장을 이룩한 걸까.

우리는 아이들을 통해 ‘괴물’을 보고, 동시에 자기 자신을 볼 것이다. 우리는 드라마 스페셜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내면 어딘가에서 깨어날 준비를 하고 있는 괴물의 알을 들여다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누군가가 죄인이 되어야 하는 상황에서 스스로가 죄 없는 ‘순결한 피해자’임을 증명할 수 있는가? 사자가 기다리는 강가에서 내가 아닌 누군가가 희생양이 돼주길 바라지 않을 수 있는가?

드라마 마지막 화의 재생이 끝났다면 다시 한 번, ‘괴물’. 이 단어를 마주해보자. 이제 그와 당신은 악질적 존재임과 동시에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마주 세운 거울에서는 악마가 튀어 나온다고 하였으니, 튀어 오른 당신이 여덟 명의 아이들처럼 드리워진 암전 속으로 삼켜질지도 모른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선악의 저편』(Beyond Good and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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