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허필은의 ‘고전으로 고전하기’] 왜 인문학이 필요한가?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 “문돌이 극혐!” 대학생들의 취업난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공학 등 실용적인 이과 계열 전공자들은 상황이 좀 낫다. 대학에서 문과 관련 학문을 전공하는 학생들의 취업에 대한 고민은 상상을 초월한다. 워낙 취업이 힘들다보니 이제는 문과 자체를 비하하는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문과충(문과와 벌레를 뜻하는 충蟲이 합쳐진 말)’, ‘문레기(문과와 쓰레기의 합성어)’, ‘인구론(인문계 학생의 구십 퍼센트는 논다)’ 등의 신조어는 이미 신조어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익숙한 말들이 됐다.

더욱 심각하게도 문과를 비하하는 신조어들은 문과 계열 전공자들의 귀가 아닌 입과 관련되기도 한다. 이제는 이러한 신조어를 듣는 것을 넘어, 문과 계열 전공자들까지 스스로를 비하하는 자조 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인문학이 쓸모없다는 의견은 대학생들 사이에서 이미 정설로 굳어졌다. 제조업으로 먹고 사는 나라에서 인문학을 쓸 곳이 없다는 생각이 팽배해진 셈이다.

독일의 이과생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Heisenberg)의 의견을 달랐다. 비록 지금 대학생들이 태어나기도 전인 1976년 2월 1일에 눈을 감아 이 세상에는 없지만, 세계적인 물리학자였던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통합을 모색했다. 하이젠베르크는 『부분과 전체』라는 책 머리말에서부터 “정신과학 자연과학 분야라는 두 문화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단절”을 극복하고자 하는 소망을 내비친다. 그렇다면 물리학을 전공한 전형적인 이과생인 하이젠베르크는 왜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일까?

▲ ‘불확정성의 원리’를 발견해 물리학계에 지대한 공헌을 한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하이젠베르크가 활동하던 시기는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의 근대과학이 부정되고 현대과학이 출현한 시기였다. 뉴턴역학이 경험 세계인 일상생활에서는 모두 맞아떨어졌지만 거시적인 우주 세계와 미시적인 원자들의 세계에서는 어긋나는 경우가 빈번해졌다. 따라서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이 상대성 이론을 통해 우주 세계를 설명했고, 하이젠베르크가 불확정성의 원리를 발견해 원자들의 세계를 설명했다. 절대성과 확정성으로 대표되던 뉴턴역학의 법칙이 깨지고 과학 또한 상대적이고 불확정적인 성격이 있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이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과학의 ‘전체’로 여겨지던 뉴턴역학이 단지 일상생활의 현상만을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이 세상 모든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부분’인 상대성 이론과 불확정성의 원리가 뉴턴역학과 공존해야만 했다. 하이젠베르크가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쓰면서 책의 제목을 ‘부분과 전체’로 설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이젠베르크는 과학에서 “어느 하나가 전체인 것이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하이젠베르크는 과학적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자신이 삶을 바친 미시물리학이 제2차 세계대전 때 원자폭탄 제조로 활용돼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냈다는 사실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하이젠베르크는 과학 또한 하나의 ‘부분’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그리고 과학을 올바르게 활용하기 위해서는 다른 학문들과의 단절을 극복하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생각에까지 미친다. 그에 의하면 세계를 풍부하게 해석하기 위해서는 과학뿐만 아니라 역사, 철학, 종교 등 다양한 다른 ‘부분’들이 어우러져야 한다. 인문학의 중요성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또한 이것이 그가 정신과학과 자연과학의 단절을 극복해야 한다고 역설한 근거다.

한 마디로 이과가 진보의 힘을 결정한다면, 문과는 진보의 방향을 결정한다. 현재 대학생들은 가시적으로 나타나는 힘의 증폭에 집중해 방향 설정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진보의 힘도 중요하겠지만 방향 설정 또한 중요하다. 이과와 문과라는 두 가지의 ‘부분’이 조화될 때 완전한 ‘전체’가 되는 것이다. 하이젠베르크가 살아있던 당시 미시물리학을 비롯한 과학기술이 올바른 방향 설정에 성공했다면 원자폭탄으로 인한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숨을 거둔 스티브 잡스(Steve Jobs)를 비롯해 세계적인 리더들이 인문학을 중요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내에서도 신세계그룹의 정용진 부회장이 누누이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하이젠베르크의 사고방식이 현재 세계를 이끄는 리더들에게도 고스란히 전수됐다. 현재 국내 대학생들이 세계를 이끌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인문학을 비하하는 사고방식에서 탈피해야할 것이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문돌이’는 이제 제 모습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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