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김권제의 생활어원 및 상식] 미국은 1946년 작전명 ’Operation Crossroads’로 비키니 환초(Bikini Atoll) 섬에서 원주민들에게 정착금을 충분히 준다고 속여서 강제로 이주시키고 핵폭탄 실험을 강행했다. 물론 정착금을 준다는 것은 거짓이었고 그 원주민들은 아직도 방사능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 핵실험은 2차 세계대전 후 다음 해에 실시되었는데 잔혹한 전쟁의 상처가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아물기도 전이기 때문에 전 세계적인 파장도 컸다. 사람들에게 핵실험의 파장이 큰 만큼 이곳의 지명도 자연스럽게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 곳 지명과 수영복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비키니(bikini)’는 여성의 중요한 두 곳을 가릴 수 있도록 브레지어와 팬티로 구성된 두 조각의 여성용 수영복이다. 비키니 수영복과 비슷한 복식은 고대 로마시대 시칠리의 한 벽화에서도 발견된다고 한다. 하지만 원피스 수영복을 개량한 투피스인 비키니 수영복이 최초로 등장해 주목을 받은 것은 1946년이다. 1946년 여름 Jaques Heim(자크 하임)은 지구상에서 가장 작은 물질인 ‘원자’를 상표로 도입하여 ‘세상에서 가장 작은 수영복’이라는 표어로 깐느의 가게에서 그가 만든 수영복 ‘Le Atome(the Atom)’을 판매했다.

같은 시기 프랑스 디자이너인 Louis Reard(루이 레아)도 비슷한 디자인의 수영복을 만들고 이름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다가 당시 국제적 파장이 컸던 비키니 원폭실험을 생각하고는 자기 옷이 세상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으면 하는 바램에서 섬의 이름을 따서 ‘비키니’라 이름을 지었다.

그는 자크하임보다 3주 늦게 그가 만든 지구상에서 가장 작은 수영복 광고를 했다. 이 수영복을 본 프랑스 사회는 원자폭탄을 맞은 것 같은 충격에 휩싸였다. 하지만 수영복의 시작은 엄청난 우여곡절을 격었다. 무명 천에 디자인된 비키니 수영복을 그 당시 보수적인 사회 환경에서 사람들 앞에서 자신있게 입겠다는 모델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난처해진 루이 레아는 패션쇼는 예정대로 열려야 했기에 할 수 없이 ‘카지노 드 파리 음악당’의 누드 댄서인 19세의 미셀린 베르나르디니를 모델로 기용한 패션쇼를 통해 수영복을 세상에 선보일 수밖에 없었다. 미셀린 베르나르디니는 이 패션쇼를 통하여 남성들의 엄청난 팬 레터와 관심을 받아서 스타가 됐지만 쇼 자체는 당시 보수적인 프랑스를 일거에 엄청난 충격으로 빠뜨렸다.

하지만 이러한 충격 속에서도 자신의 몸매를 남들에게 자신있게 보이면서 자랑하고 싶은 여성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서서히 수영복을 입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면서 비키니가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을 하자 유럽사회를 정신적으로 다스리고 있었던 교황청은 여성들이 이 수영복을 입는 것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비난했고,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등에서는 법을 통해서 이 수영복을 입지 못하도록 금지시켰다. 하지만 비키니 수영복을 입고자 하는 여성들의 거침없는 대세는 거스를 수 없는 것이었다. 1960년대 접어들면서 세계적으로 비키니 수영복은 대중화되었고 우리나라에도 1961년 국산 비키니 제품이 등장하였다.

지금은 여성용 수영복의 대세가 되어버린 ‘비키니’의 어원은 어디에서 왔을까?

비키니는 태평양의 마샬 군도의 환초 섬 이름인데 원주민들의 말로 ‘비키니’는 ‘코코넛(ni)의 껍질(Pik)’이란 의미이다. 그래서 비키니는 원주민의 ‘Pikinni’에서 파생한 환초섬의 지명에서 왔다는 설이 정설로 받아들이지만 혹자는 ‘bikini’의 bi는 ‘둘’을 의미하기 때문에 위 아래의 두 조각 수영복이라는 의미에서 ‘비키니’라고 하는데 신빙성은 없다.

[김권제 칼럼니스트]
고려대학교 영어교육학과 졸업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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