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박은혜의 4차산업혁명 이야기] 낭만주의가 가지고 있는 기계적 인간 제작에 대한 회의감은 괴테의 대작 <파우스트> 제2부 제2막에 등장하는 호문쿨루스 이야기에서 잘 드러난다. 제2막의 배경은 파우스트의 오래되고 낡은 연구실에 자리한 바그너의 실험실이다. 제1부에서 파우스트의 조교였던 바그너는 이제 대학자가 되어 실험에 몰두하고 있다. 그의 실험은 ‘대작업’이라고 불리는데, 이는 전통적으로 연금술에서 사용되는 용어이다. 메피스토의 질문에 대한 바그너의 대답에 따르면, 바그너의 대작업은 인간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여기서 바그너는 무기물의 혼합을 통해 유기체인 인간을 만들어내려고 시도한다. 이러한 장면은 화학에 대한 괴테의 깊은 관심을 보여준다. 실제로 그는 화학반응과 관련된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괴테가 살았던 시대의 화학은 실험실에서 어떠한 유기물도 합성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1828년 유기화학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프리드리히 뵐러가 시암산 암모늄으로 유기물인 요소를 합성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이제 화학자들은 실험실에서 어떠한 유기물이든 만들어낼 수 있으며, 이를 발전시키면 인간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는 이들도 생겨났다. 그러나 실험실 인간을 만드는 작업에 대한 괴테의 평가는 부정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작품 속에서 바그너의 작업이 메피스토 즉 악마의 도움을 받고 있었음을 볼 때, 그러한 작업이 가능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괴테의 인식이 반영되어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실제로 바그너의 플라스크에서 태어난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였다. 태어나자마자 말을 하고 아버지를 알아보며 비상한 지식을 과시하는 반면, 신체적으로는 플라스크 바깥에서는 생존할 수 없는 결핍을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여성성을 결여한 남성성만으로 구성된 미완의 존재이기도 했다.

오토마타를 창조한 인간

이러한 분위기에서 맞춰, 18세기 후반 자연과 생명의 숭고함을 인간의 기계적 성격의 근거로 이해했던 일련의 과학자와 의사들은 오토마타(Automata)로 불리는 자동인형을 제작하는 작업에 몰두했다. 과학역사가 제시카 리스킨에 따르면, 그들이 생물과 무생물, 특히 기계 사이의 관계를 이해했던 방식은 20세기의 과학자와 의사들이 그것을 이해했던 방식과 상당히 유사했다고 주장한다. 오늘날의 과학자와 의사들이 웻-웨어(Wet-ware)를 통하여 생물을 일종의 기계로서 시뮬레이션(simulation)하듯이, 18세기 후반의 과학자와 의사들 역시 기계를 제작함으로써 생물을 재현하려고 시도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웻-웨어’란 기계의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와는 대립되는 의미에서 인간의 뇌를 가리키는 표현이며, ‘시뮬레이션’이란 생물 존재의 특성을 이해하려는 인식론적 목적으로 고안해 낸 실험적 모델을 가리킨다.

이 시기에 활동하던 소위 기계론자들이 제작한 오토마타의 그림이나 설계도는 오늘날의 시각에서 봐도 상당히 아스트랄한 느낌을 준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유명한 스케치들은 물론이고, 갈릴레이의 제자였던 지오반니 보렐리의 책을 통해 인간의 근육이 저마다의 작은 기계로 이해되는 선구적 흐름이 있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오토마타 제작 시도들은 과거 17세기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았던 유형의 것으로, 생명 기능이 기계와 같은 매커니즘으로 구현되기 때문에 반대로 기계에도 생명을 부여할 수 있다고 믿었던 과학자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그들은 인간과 기계의 상호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단계로서 우선 행위의 모방에 주력하면서 당시에 발달했던 시계 제작 기술에 의존하였다. 시계 제작은 톱니바퀴 및 태엽장치가 소형화된 기술의 결과였고, 이러한 기술이 인형의 움직임에 적용되었다.

오토마타는 생물의 본성으로 간주되는 숨쉬기, 먹기, 배설하기, 글쓰기, 악기 연주하기 등을 시뮬레이션 하는 다양한 기계들로서 고안되었다. 1737년 프랑스의 기술자 보캉송이 실제로 날개짓을 하며 울기도 하는 백조를 만들었다고 전해지나, 유감스럽게도 그 작품은 오늘날 남아있지 않다. 다만 태엽을 활용하여 제작된 맬라르의 인공 백조 설계도는 남아있다. 지금까지 박물관에 전시되어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오토마타도 있다. 스위스의 시계제작자 자끄 드로의 오토마타가 대표적인 사례다. 한층 정교한 동작을 연출할 수 있는 오토마타를 제작한 그는 1774년 글 쓰는 인형, 그림을 그리는 인형, 오르간을 연주하는 인형을 나란히 공개하였다. 자끄 드로의 오토마타들은 70cm 정도의 크기이고 머리와 팔은 물론 눈도 움직일 수 있으며, 현재 스위스의 뇌샤텔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드로의 오토마타는 앙부아르즈 파레가 설계했던 의수를 기초로 제작한 손을 사용하여, 일반 사람들보다 더 썩 괜찮은 그림을 그려낸다거나 심지어 데카르트의 명제를 종이 위에 직접 쓰고 오르간 건반을 연주하기까지 한다.

또한, 영국의 물리학자 에라스무스 다윈이 고안한 ‘말하는 머리’는 부드럽고 속이 빈 나무 안에 실크 리본을 채워놓은 후두(larynx)를 장착하고 있다. 생물의 본성 중 하나를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다윈은 기괴한 모습의 머리가 구슬픈 어조로 ‘mama, papa, map, pam’을 발음하도록 만들었다. 이외에도 1852년 파리의 세계박람회에 등장했던 폴카를 추는 인형, 1878년 세계박람회에서 선보였던 수영하는 인형 온딘 등이 당시에 각광 받았다.

시대마다 새롭게 정의되는 인간과 기계의 관계

18세기 후반까지 활발하게 시도된 오토마타의 시뮬레이션 작업들은 19세기로 넘어오면서 점차 거부되기 시작하였다. 앞서 밝혔듯이, 때마침 등장한 과학에서의 낭만주의적 경향은 기계적 시스템에 대한 혐오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셸리의 작품 <프랑켄슈타인>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 소설이 드러내는 혐오의 시선은 당대의 시뮬레이션 작업이 드러내는 일종의 자만심을 겨냥했다고 이해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리스킨의 통찰을 빌리자면, 생명의 과정을 인간이 재현할 수 없다는 19세기의 낭만주의적 반동은 17세기와 19세기, 그리고 18세기와 20세기를 각각 유사한 짝으로 이어준다. 17세기와 19세기와는 달리, 18세기와 20세기는 시뮬레이션이 활발하게 시도된 세기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오늘날의 우리 역시 18세기 후반의 과학자와 의사들이 그렇게 생각했듯, 생명과 기계 사이의 연속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미국의 역사학자 브루스 매즐리시가 지난 세기에 예견했듯이, 인간과 기계의 관계라는 범주는 인류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며(코페르니쿠스), 인간과 동물은 같은 조상으로 가지고 있으며(다윈), 심지어 인간은 비이성적 동물이라는(프로이트) 충격에 이어서, 이제 인간은 더 이상 스스로가 기계와 별개의 존재라는 믿음도 포기해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비록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18세기 후반에 유행했던 오토마타 제작의 역사적 경험은, 과연 인간의 존재론적 기초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문제들, 즉 20세기를 넘어서 21세기에 더욱 활발히 논의될 인간복제 및 사이보그 제작과 같은 문제들에 대하여 어떠한 교훈을 줄 수 있을 것인가. 여기서부터 우리의 고민은 다시 시작된다.

▲ 박은혜 칼럼니스트

[박은혜 칼럼니스트]
서울대학교 교육공학 석사과정
전 성산효대학원대학교부설 순복음성산신학교 고전어강사
자유림출판 편집팀장
문학광장 등단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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