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박창희의 건강한 삶을 위해] 필자의 고향은 강원도 철원이다. 철원 하면 독자께서는 DMZ과 오대쌀, 그리고 혹독하게 추운 겨울과 시베리아에서 날아오는 철새 정도를 떠올리실 것이다. 고향에 남아있는 필자의 친구들은 대부분 논농사를 짓는다. 곧 추석이고 가을 들녘엔 황금 물결이 가득할 것이다. 농부들은 여름내 자신들이 흘린 땀의 결실을 보며 고생과 시름을 잊을 터. 그런데 그들의 결실을 보며 필자가 재앙이다 재앙이라고 되뇐다면 어떻게 될까.

그 즉시 그들로부터 재앙에 가까운 욕설이 돌아올 것이다. 그렇지만 필자는 철원 들녘의 황금 물결을 바라보며 재앙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연 상태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일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식물이 열매를 맺기 시작하면 그것을 먹기 위해 벌레나 새, 들쥐를 포함한 설치류 등 수많은 동물의 공격이 시작된다. 동물뿐 아니라 일년생 초본식물인 피와 잡초 등 식물들도 벼를 공격한다. 어제 뽑아 논둑에 던져둔 풀이 밤새 날아와 그 자리에 꽂힌 게 아닌가 착각할 정도로 논농사는 피와의 전쟁이다.

자연 상태는 식물이 열매를 맺어 자손을 퍼뜨리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그 공격이 극심하고 혹독하다. 그 공격에 맞서 싸우는 것이 곧 농업이 된다. 고추 농사를 짓는 친구는 농약 통을 지고 살지 않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음을 고백하기도 한다. 결국, 농사란 스스로 그러함 또는 있는 그대로의 의미인 자연을 훼손하는 행위다. 그 앞에 먹고 살기 위해란 수식어를 붙이는 것은 자연을 파괴할 수밖에 없다는 암묵적 동의가 된다. 땅에 떨어진 열매를 주워 먹는 것과 열매가 생기는 이치를 파악하여 직접 키워 먹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는 의미다.

당도가 높은 과일을 얻기 위해 접붙이기를 하거나, 유전자 조작을 통해 생산성이 뛰어난 품종을 만들고 단위당 소출을 늘리기 위해 비료를 주기도 한다. 제한된 토지로 많은 인구가 살기 위해 농업기술은 비약적 발달을 거듭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약간의 자연스러움이 있을 뿐, 완전한 자연은 이제는 우리 주위에 없다. 순수 자연을 유지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우리에게 죽음을 강요하는 것이다. 내 몸이 요구하는 기본적인 영양학적 사항을 충족시키기 위해 우리는 자연과 맞서 싸워나가야 한다.

멧돼지가 피를 흘리고 죽으면 내 배가 채워질 것이고, 내가 피를 흘리고 죽으면 포식자가 자기 배를 채울 것이다. 결국, 자연은 폭력적이고 피가 흐르는 곳이기 때문에 인간 역시 살기 위해 자연과 똑같이 행동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물론 동물을 제품처럼 사육한 후 도륙하여 먹거나 농사를 짓기 위해 흙을 농약과 비료 범벅으로 만드는 것이 윤리적, 도덕적으로 용납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도록 파괴를 줄여 상호 간 손상을 최소화해야 한다.

서두에 밝혔듯 곡창지대인 철원 평야에 가득한 황금 물결은 인간이 자연과 최선을 다해 투쟁한 결과다. 과거에는 자연과 혹독한 투쟁을 통해 겨우 얻었을 수 있던 것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남용이 이루어진 것들이 비만의 원인이다. 인간의 노력으로 쉽게 얻을 수 없었던 것은 상대적으로 귀하다. 우리의 몸이 쉽게 접해보지 못했다는 것은 우리 몸이 적응하기 힘들다는 의미다.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거나 아주 드물던 음식들, 그리고 접해보지 못했던 환경적, 신체적 경험들을 주의해야 한다.

먼 옛날 과자나 아이스크림, 소시지가 없었듯, 그런 것들을 경계하고 멀리해야 한다. 밤을 낮처럼 환하게 밝히는 불야성 역시 우리 몸이 경험한 바가 없다. 진화적응으로 볼 때 어두워지면 일찍 잠드는 것이 인체에 적합하다는 논리가 된다. 오래전엔 존재조차 하지 않았던 음식들, 과거엔 없었으나 현재는 우리의 일상이 되어버린 행동들을 유추해보자. 힘들겠지만 그 목록에 작성된 것들을 하나, 둘 지워 나가는 것, 그것이 우리의 건강을 지키는 길이다.

▲ 박창희 다이어트 명강사

[다이어트 명강사 박창희]
한양대학교 체육학 학사 및 석사(동대학원 박사과정 중)
건강 및 다이어트 칼럼니스트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