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지난달 30일 방송된 KBS2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의 시청률이 30%에 근접한 데 이어 나훈아 콘서트의 뒷얘기를 담아 지난 4일 방송된 다큐멘터리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스페셜-15년 만의 외출’도 18.7%를 기록하며 그야말로 안방극장에 ‘나훈아 광풍’이 몰아쳤다.

나훈아가 슈퍼스타인 건 사실인데 왜 그의 돌풍이 새삼스러울까? 그 바람의 근거는 뭘까?

1970년대 언론은 남진과 나훈아를 라이벌로 만들어 당사자들은 물론 언론사와 방송사의 수입을 불리는 여론을 조성했다. 두 스타는 가수로서는 물론 영화배우로서도 때론 경쟁자로 때론 둘도 없는 콤비로서 맹활약을 펼쳤다. 당시 두 사람은 뭘 해도 항상 비교의 대상이었다. 나훈아는 부산, 남진은 목포 출신인 점도 대결 구도에 보탬이 됐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나훈아는 남진과는 다른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다. 남진은 여전히 TV에 친화적이었고, 가수협회장 등의 ‘완장’을 차는 것도 마다하지 않으며 제도권 내에서 활동한 반면 나훈아는 TV 출연에 인색했고, 대중 매체와도 접촉하지 않았으며, 철저하게 대형 콘서트로만 팬들과 만났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남진은 TV형 가수, 혹은 스타 지향형 가수라면 나훈아는 콘서트형 가수, 뮤지션 지향형 가수다. 남진은 소수를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나훈아는 자신의 레퍼터리를 거의 모두 스스로 작곡해 2000여 작품을 직접 썼는가 하면 강진에게 ‘땡벌’을 써줘 그를 무명에서 벗어나게 만들어 주기까지 했다.

아무리 대중가요라고 해도 예술성이 강하거나 약한 곡으로 나뉘기 마련이고 심지어는 아예 예술성을 논하는 것조차 수치스러운 곡도 있다. 스스로 곡을 만드는 싱어송라이터인 나훈아의 레퍼터리 중에서 수준 하위에 거론되는 곡은 하나도 없다. 외려 한때 ‘가요’로 불렸고, 지금은 ‘트로트’로 통일된 한국식 대중가요의 수준을 향상시킨 장본인이 바로 그가 아닐까?

신비주의라는 표현이 그다지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고, 그런 지적을 받는 연예인 스스로 그를 통한 효과를 노렸다기보다는 자연스레 그런 흐름이 형성된 것이긴 하지만 분명히 당사자의 몸값을 높이는 결과를 낳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다.

서태지와아이들은 디지털 시대의 TV와 뮤직비디오를 통해 가장 많은 혜택을 누렸지만 인기를 얻자마자 이내 신비주의에 돌입했고, 심지어 정상에서 그룹을 해체한 후 서태지만 솔로로 드문드문 앨범 발표와 콘서트를 할 뿐이었다. 지금도 서태지에 대한 언론의 보도는 그가 스스로 노출되거나 따로 자료를 배포하지 않는 한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 신비주의의 원조가 나훈아고 조용필이었다. 나훈아가 가요 쪽의 정상이었다면 조용필은 팝 쪽에서 탑이었다. 물론 조용필은 팝과 록은 물론 가요까지 섭렵한 만능 뮤지션이긴 했지만.

1980년대를 휩쓴 조용필은 그 후반 즈음 TV에서 여는 연말 가요대상 불참을 선언한 뒤 TV 나들이 횟수를 현저하게 줄였다. 물론 나훈아 역시 그렇긴 마찬가지.

대형 콘서트를 열 때야 팬들과 만나고, 그 콘서트가 엄청난 규모와 완성도를 자랑한다는 점 역시 두 뮤지션은 비슷하다. 조용필은 대형 밴드를, 나훈아는 오케스트라를 올리는 게 조금 다를 뿐.

나훈아는 사생활 측면에서 부정적인 보도나 소문이 나돌긴 했지만 그런 구설수를 무마시킬 만큼 뮤지션으로서 완벽한 실력을 지녔고, 가수로서 범접할 수 없는 가창력과 개성을 갖췄다. 그의 이번 KBS 나들이는 놀랍게도 노 개런티였다.

여기서 그의 ‘클래스’를 알 수 있다. 물론 그는 벌 만큼 벌었고, 아직도 상당액의 저작권료를 받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을 보면 부자일수록 욕심이 크다는 걸 알 수 있다. 나훈아 정도 되면 이번 콘서트에 억대의 개런티를 불렀어도 어느 방송사든 덥석 물었을 텐데 무료라는 통 큰 행보를 보였다.

그런 그의 스케일이 대중을 감동시키는 것이다. “코로나19 때문에 내가 가만히 있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다”라는 이번 콘서트에 출연을 결정한 취지 한 마디만으로 이미 20% 정도의 시청률은 보장받고 들어간 것과 다름없었다.

소크라테스에게 “세상이 왜 이래? 세월은 또 왜 저래?”라고 묻는 신곡 ‘테스 형!’을 부른 후 “물어봤더니 테스 형도 모른다고 한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던 그는 KBS를 향해 “이것저것 눈치 안 보고 국민을 위한 방송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당부하는 유머 감각과 시사적 센스도 보였다. 그런 아름다운 행보를 보인 그에 대한 예우로 KBS는 이번 콘서트에 붙은 대기업 광고를 받긴 했지만 중간 광고는 삽입하지 않았고, 다시 보기 서비스도 제공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에서 이런 나훈아 같은 대형 가수가 몇이나 될까? 모든 사람의 인권은 똑같지만 저마다의 인격은 다르다는 걸 입증했다.

나훈아는 ‘테스 형!’에서 흔히 알려진 ‘너 자신을 알라’를 거론하지만 사실 이 잠언은 고대 그리스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 현관 기둥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정작 소크라테스가 남긴 유명한 말은 ‘내가 아는 건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라는 불가지론이다.

당대 최고의 현인이 스스로 무식하다고 했으니 나머지 사람들은 얼마나 어리석었을까? 어쩌면 ‘테스 형!’의 ‘세상이 왜 이래, 세월은 또 왜 저래’라는 가사는 소크라테스가 그토록 찾아 헤맨 윤리가 사라진 이 세상, 그렇게 지나가 이제 삶보다 죽음이 가까워진 허송세월을 뜻하는 게 아닐까?

사실 소크라테스는 저서를 안 남겼기에 그의 정확한 사상과 교훈을 알기는 힘들다. 다만 저술 속에 그를 등장시켜 자신의 철학을 설파한 플라톤에 의해서 알려졌을 뿐. 그래서 후학들은 전 분야에 걸쳐 천재적인 이론을 남긴 아리스토텔레스를 통해 두 현자를 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용과 4원인설이 대표적이다. 나는 무엇으로 이뤄졌고(질료인), 나는 누구이고 여긴 어디이며(형상인), 나는 왜 세상에 나왔는지(작용인), 그리고 나는 어떻게 살아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목적인)가 4원인설이다.

널리 알려졌지만 소크라테스가 사형을 선고받자 그의 친구와 제자들이 뇌물을 써 그를 탈옥시키려 한다. 하지만 그는 단호히 거절하며 독배를 마신 뒤 울부짖는 부자 친구 크리톤을 달래며 유언을 남긴다. “내가 아스클레피오스(의술의 신. 당시 병이 나으면 이 신에게 닭을 한 마리 바쳤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졌는데 그걸 갚아주게나”라고.

73살을 넘긴 나훈아는 그 유명세만큼이나 사생활로도 화제를 뿌렸고, ‘웃픈’ 루머로 구설수에 오르자 가요계의 ‘맏형’답지 않은 ‘입증’ 해프닝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콘서트와 어록은 분명히 그가 웬만한 연예인과는 사뭇 다름을 충분히 증명해 줬다.

그가 ‘테스 형!’을 들고 나온 이유는 장삿속이라기보다는 산전수전 다 겪은 정상급 가수 이전의 성숙한 한 인간으로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과연 인생이란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 보자는 뜻의 화두와 숙제를 던진 데 있다고 보인다. 목적인이다.

그 배경엔 코로나19라는 아이러니가 있다. 이 전대미문의 바이러스는 삶의 패러다임을 바꿨고 서민 경제를 파탄 냈지만, 환경을 개선했고 개인적인 삶을 되돌아보고 그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는 계기가 돼줬다. 그 덕에 시청자들은 나훈아와 함께 잠시 철학을 할 수도 있었고.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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