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콤플렉스 사용설명서 <도서출판 북인, 9.29 발행, 신국판 변형, 216쪽

[미디어파인=유성호 문화지평 대표의 문화‧관광이야기] ‘콤플렉스 사용설명서’? 제목이 어색해 입에서 몇 번 굴려봤다. 그래도 혀끝에 착 달라붙지 않아 저자를 만나야겠단 생각이 들었는데, 마침 기회가 생겨서 한달음에 달려갔다. 정영희 작가와 서 너 시간 수다를 떨다 보니 책장을 넘기지 않았는데도 내용이 짐작된다. 그래선지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펼쳐 든 산문집이 참 잘 읽힌다.

우리 삶에서 누구나, 언제든지 맞닥뜨리는 시간의 미분(微分)을 그는 용케도 잘 걸러내 글로 녹인다. 세월이 지날수록 촘촘해지는 생각의 그물과 세월에 의해 숙성된 확대경 같은 시각이 그의 손끝에서 따뜻하게 ‘콤플렉스 사용설명서’란 활자로 부활했다.

대부분 어렵지 않게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라 반갑고, 모든 게 ‘시간이 약’이란 의미를 함축하고 있어 위로가 되기도 한다. 순간, 그의 문장이 변했다란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노련한 필력으로 명망 있던 소설가가 언제부턴지 산문집을 통해 독자와 교감하는 그 자체가 큰 변화다.

조선시대 문체반정이 문학의 퇴보를 가져왔다면 정 작가의 문체 변화는 작가 자신의 문학세계에 새로운 발전 동력이다. 소설의 얼개를 구성하기 위해 심하게 쥐어짰던 생각의 그물이 평온함 속에 놓이게 되자 시나브로 숨어 있던 문장이 마구 걸려들었고 뭍으로 쏟아져 나왔다.

‘내 말의 무기는 문장이며 내 말의 방패 또한 문장이다. 이쪽과 저쪽을 강요하는 삶과의 투쟁으로 상처투성이인 내 영혼을 지켜주는 창과 방패, 내 속의 문장에게 무릎 꿇어 인사한다, 고맙다고. 오래 걸어온 나는 아직도, 이렇게, 문장으로 내 운명과 조금씩 화해하며 살아내고 있다.’

아름다운 고백이다. ‘내 속의 문장에게 무릎 꿇어 인사한다’는 작가의 말은 자신에 대한 진정한 고마움의 발로인 동시에 콤플렉스와의 작별 인사다. 2018년 연초에 펴낸 첫 산문집 ‘석복수행 중입니다’에서는 ‘비로소, 내 운명에게 어설픈 악수를 건넨다.’고 썼다. 그때의 어설픈 악수가 3년이 지난 지금은 조금의 화해가 됐다고 하니, 다음 산문집에서는 과연 어떨까. 세 번째 산문집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필자는 영광스럽게도 그의 첫 산문집 표4(책의 뒤표지)에 글을 남길 수 있었다. ‘역시 정영희 류의 글쓰기다. 그녀의 산문집은 무심히 스치는 일상을 불러 세워 기억과 추억을 소환해 현재를 비춰보고, 미래로의 길을 모색케 하는 유쾌한 반성문이다. 작가가 자신의 상처와 민낯을 보여주었을 때, 독자는 감동하는 법이다. 그러므로 작가는 철저히 고독하다. 그녀 또한 그러하다.’

그는 여전히 ‘유쾌한 반성문’을 쓰고 있지만 더 이상은 고독해 보이지 않았다. 콤플렉스를 털어내는 방법을 터득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어설픈 악수’가 그것을 함의한다. 그는 작가이자 역학자로서 활동하면서 타인의 콤플렉스를 완충하고 보충하는 일에 익숙하고 능란하다. 그러다 보니 저절로 자기 치유의 길이 열리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산문은 내가 나와 교감하는 말이다. 외로움이란 교감할 사람의 부재에서 온다’는 작가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더 이상 외롭지 않다. 내 안에 숨어 있는 나, 수많은 문장을 만났기 때문이다. 금맥을 발견한 금광업자도 이 보단 환희하지 못할 듯하다.

‘못생겨서 죄송합니다’란 셀프 디스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코미디언 고 이주일 씨, 속 시원하게 얼굴 성형 커밍아웃으로 ‘성형 미투’를 격발 했던 방송인 현영 등은 이미 콤플렉스의 사용방법을 알고 있는 이들이다.

이들과 달리 내 것이 아닌 주변의 온갖 껍데기로 자신을 위장하고 치장하는 콤플렉스 덩어리들이 있다. 작가는 이들 ‘영원히 불행한 이류’들에 대해 ‘스스로 디스하며 웃어넘기는’ 내공과 지혜를 키우라고 조언하고 있다.

정 작가와는 2006년 단편집 ‘낮술’의 서평으로 맺은 인연이 15년째다. 작가에겐 송구한 말이지만 소설보다 산문이 훨씬 감성을 풍성하게 자극한다. ‘낮술’, ‘아키코‘ 등 그간의 소설이 집착과 연민의 뫼비우스 띠 같았다면 지금의 산문은 세상을 향한 외침 같은 해방감이 느껴진다. 책 표지의 그림(장명규 작, 청춘가, 2017)이 그래서 참 잘 어울린다.

정 작가는 “나폴레옹이 작은 키를 극복하려 노력하다 영웅이 됐듯이 ‘콤플렉스 사용설명서’는 자신의 콤플렉스를 인정하고 ‘셀프디스’를 하면 세상이 유쾌하고 농담처럼 멋있어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며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전 연령대가 무리 없이 일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서출판 북인, 9.29 발행, 신국판 변형, 216쪽, 1만3000원>

▲ 정영희 작가

대구 생. 영남대학교 미술대학 및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대학교 2학년 때 ‘시문학’에 단편소설 ‘아내에게 들킨 生’을 발표하고, 1986년 중편소설 ‘무무당의 새’로 동서문학 신인상을 받고 문단에 나왔다. 그 동안 장편소설 ‘그리운 것은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는다’, ‘무소새의 눈물’, ‘슬픈 잠’, ‘아프로디테의 숲’, ‘아키코’ 등과 소설집 ‘그리운 눈나라’, ‘낮술’ 등을 출간했다. 산문집으로 ‘석복수행 중입니다’와 다수의 공저가 있다. 현재 ‘영희역학연구원’을 운영하며 글을 쓰고 있다.

▲ 유성호 문화지평 대표

[유성호 문화지평 대표]
문화공동체 ‘문화지평’ 대표
문화체육관광부 문화관광축제 현장 평가위원
지자체 근현대문화유산‧미래유산 보존 자문위원
한국약선요리협회 전문위원
대중음식평론가(‘유성호의 맛있는 동네산책’ 일간지 연재 중)
前 뉴시스 의학전문기자, 월간경제지 편집장
前 외식경영신문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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