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1인까지 살아 남겠다. ‘검투사(gladiator)’ [김권제 칼럼]

김권제 칼럼니스트l승인2020.11.09l수정2020.11.11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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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글래디에이터>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 칼럼=김권제의 생활어원 및 상식] 검투사를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가 많은데 그 중에 대표적인 영화가 레셀 크로우, 와킨 피닉스 등이 주연한 ‘글레디에이터’와 여러 번 리바이벌이 된 ‘스타르타쿠스’ 등이 있다.

위키백과사전의 검투사를 보자. ‘검투사(gladiator)’는 고대 로마 때 경기장에서 사람이나 동물, 범죄자 등과 싸우는 것을 업으로 삼았던 직업적 전사이다. 검투 경기는 로마 공화정~제정시대에 로마제국 전역에서 실시되었다. 1세기경 학교에서 검투를 가르켰고 학교마다 다른 스타일이 있었다고 한다. 많은 검투사들이 경기장에서 싸우면서 누구는 명예롭게 자유를 얻고 누구는 싸움 중 죽임을 당하거나 불구가 됐다. 대다수는 노예 출신이지만 일부는 생계나 명예를 탐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멸시받는 검투사에 지원하기도 했다. 검투사들 가운데 유명한 인물은 트라키아 출신의 검투사 스파르타쿠스로 그는 B.C 73년에 로마 공화정을 상대로 검투사 노예들의 해방을 위해서 검투사들을 이끌고 저항을 했다.  

우리는 검투사 중 하나가 죽어야만 시합이 끝이 난다고 알고 있으나 실은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경기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특별히 상대방을 죽이는 경기는 ‘sine missione’로 상대방이 다쳤을 때 관중들이 “habet, hoc habet(그는 당할 만큼 당했다)”이라 말하면 심판은 시합을 중단시켰다고 한다. 관중들이 패자의 죽음을 요구할 경우 검투사의 주인 재량에 따라 용인하기도 했는데 황제가 엄지 손가락을 아래로 돌리면 죽는 것이고 관중들이 살리기를 원할 경우 엄지 손가락을 위로 올린다고 한다.

▲ 사진 출처=픽사베이

죽은 이의 가족에게 소유주는 오늘날의 약 10억원 정도를 보상해야 하기에 손해보지 않기 위해 검투사를 죽이지 않았고 죽음은 대부분 사고사였다. 서기 325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법으로 검투 경기를 금지시켰으나 효력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시합에 관심이 줄고 살인을 금지하는 기독교가 확장되면서 399년 호노리우스의 금지령이 실질적 효력을 발휘했다. 기록된 마지막 로마 검투 경기는 404년으로 440년 이후에는 로마 제국의 기록에서 나타나지 않는다.

생사를 위해서 싸웠던 “검투사(gladiator)’는 어디에서 유래가 된 말일까?

‘글레디에이터’의 어원은 제2차 포에니 전쟁 중 로마 장군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가 지금의 스페인을 점령한 후 채택한 그 지역 원주민의 검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검투사(gladiator)’는 라틴어 ‘gladius(검)’와 사람을 의미하는 접미사 ‘-tor’가 결합한 ‘gladiātor’에서 파생하여 ‘gladiator’로 최종 정착을 했다.

[김권제 칼럼니스트]
고려대학교 영어교육학과 졸업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김권제 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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