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파라다이스 힐스’(앨리스 웨딩턴 감독)는 지난 3월 개봉됐는지도 모른 채 사라진 영화인데 비주얼 하나만큼은 봐줄 만하다. 웨딩턴 감독은 광고계 출신답게 환상적인 미장센으로 노골적으로 기예르모 델 토로를 좇는다. 23살 우마는 어느 날 갑자기 낯선 장소에서 깨어난다. 화려한 시설의 고립된 섬.

그곳은 우아한 공작부인이 지배하는 교양 여성 양성소. 보호자들의 의뢰를 받아 소녀부터 결혼 적령기까지 여성들의 미모와 교양 등을 갖추게 만들고 정신적, 신체적으로 부족한 점을 치료해 주는 곳이다. 아름다운 정원, 고급 의상, 첨단의 시설, 계산된 고급 식단 등 억류된 것만 제외하면 완벽하다.

우마의 엄마는 상류층이지만 가난하다. 스스로 세상을 떠난 남편의 전 재산을 가로챈 힝스턴의 아들 손에게 우마를 시집보내기 위해 상류층 여자의 기품을 갖추게끔 이곳에 보낸 것. 우마에게 흑심을 품은 손이 2달간 머물며 교육받을 거액의 비용을 지불했다. 하지만 우마에겐 연인 마커스가 있다.

우마는 탈출하려다 실패한 뒤 유명 가수인 아마르나, 룸메이트인 살찐 클로이와 중국인 유와 친해진다. 팀에서 이탈하려는 아마르나를 멤버들이 알코올중독을 핑계로 보냈다. 유는 공황장애 때문에 부자인 숙모가 보냈고, 클로이는 몸매 때문에 엄마가 보냈다. 그런데 갑자기 아마르나가 퇴소한다.

그녀와 탈출 계획을 세웠다가 허망해진 우마에게 공작부인은 TV로 취재진에 둘러싸여 행복해하는 그녀를 보여준다. 아마르나에게서 매일 밤 배급되는 우유에 수면제가 들어있다는 비밀을 알게 된 우마는 클로이와 유에게 그걸 알린 뒤 탈출을 약속한 날 저녁 우유를 즉시 토해낼 것을 제안하는데.

일단 눈이 호강한다. 카리스마 넘치는 밀라 요보비치부터, 주인공인 엠마 로버츠, 에이사 곤살레스, 아콰피나까지 제 역할을 충분히 해낸다. 그들이 머무는 공간과 의상 등은 중세 혹은 근대를 연상시키지만 승용차를 보면 가까운 미래가 확실하다. 이렇듯 판타스틱한 미술과 미장센은 그러나 반어법.

주제는 크게 두 가지. 여성 감독에 여배우 주연이기에 여성을 외모로 평가하고, 성 상품화하는 데 대해 강력하게 비판한다. 더불어 상류층과 하류층, 혹은 부자와 빈자로 이분화된 세상에 대한 통렬한 비난이다. 우마라고 부유하게 살고 싶지 않을까마는 가난할망정 사랑 없는 결혼은 용납이 안 된다.

손이 우마를 바라보는 시선은 첫째는 성욕의 대상, 둘째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위한 쇼윈도다. 이미 상류층 딸이라는 자격에 미모까지 갖췄으니 잠자리만으로는 아쉬울 게 없지만 자신의 사회활동에 대한 내조자로서의 교양이 부족하기에 섬으로 보낸 것이다. 그에 동조하는 엄마가 더 나쁘다.

여성을 성 상품화하는 데 동조하거나 앞장서는 게 같은 여성이라는, 그것도 부모라는 아이러니. 그렇다.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풍습과 인식론에 젖어 무의식적으로 전승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의식과 사상을 의심하고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그런 면에서 회의주의가 강한 작품.

승용차가 날고 목걸이에서 동영상이 나올 정도면 작품의 배경은 확실히 미래다. 그런데 의상은 복고적이고, 상류층과 하류층의 구분이 분명하다. 게다가 섬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입소자들에게 대하는 언행은 마치 하인 같다. 오래전 신분계급은 사라졌지만 자본주의가 다시 계급주의를 부른다는 교훈!

손과 우마의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들이 입에서 침 흘리기 직전일 만큼 우마와 엄마를 부러운 눈초리로 쳐다보며 “따님은 상류층의 표본입니다”라고 어색한 찬사를 보낸다. 다수의 작가는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기계주의적으로 그리고 있는데 웨딩턴은 봉건주의에 가깝게 예상하는 우려를 보이고 있다.

광고업계 출신의 그녀는 미디어를 통한 세뇌 기법인 서브리미널 효과를 이 작품에 도입했다. 분명히 현대인은 민주주의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러나 그건 이론적이고, 교과서적일 뿐 실제 생활에서는 계급주의가 만연돼있고, 모든 가치관의 종착역은 돈이 지배하는 자본주의다. 그걸 주도하는 미디어!

드라마를 보면 여성은 현모양처여야 한다. 남자는 남자다워야 하고 여자는 여자다워야 한다. 사람들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세뇌돼 간다. 그걸 비판한 감독은 다분히 롤랑 바르트를 염두에 둔 듯하다. 바르트의 신화론은 현대의 미디어가 외연의미가 아닌 함축의미로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한다는 뜻.

감독은 심지어 그런 미래의 디스토피아는 무솔리니나 히틀러 같은 깡패 지도자가 나타난다고 우마의 “여긴 파시스트 기숙학교”라는 대사를 통해 경고한다. 외모와 의식을 획일화하는 데 앞장선 공작부인이 “진정 자기다울 때가 좋은 것”이라고 말하는 아이러니컬한 신은 그나마 희망은 있다는 뜻.

그래서 그녀는 우마에게 “나도 너랑 같아. 엄마의 눈엣가시지”라고 절규한다. 그녀는 일찍이 자의식은 깨달았지만 현실에서 자기효능감을 성취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이내 기성세대의 사상으로 전향한 것이다. 더 이상 세상은 기대효과나 호손효과로 기대 이상의 발전과 성공을 거머쥘 수 없다는 것.

그림은 아름다운데 내용은 매우 음울하다. 공작부인의 캐릭터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불친절만 감내한다면 그럭저럭 즐길 만한 팝콘무비다. 특히 끝을 알 수 없는 반전의 반전과 아마르나와 마커스 등의 정체를 탐구하는 미스터리 장치도 봐줄 만하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상상불허의 캐릭터가 충격적.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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