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영화 ‘용길이네 곱창집’은 재일 동포 최양일 감독의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 ‘피와 뼈’ 등의 각본을 쓴 재일 동포 정의신 감독의 연출 데뷔작이다. 1969년 고도성장이 한창이던 일본 오사카 공항 근처의 한인 판자촌. 용길(김상호)과 영순(이정은)은 곱창집을 차려놓고 3녀 1남을 키우며 살고 있다.

시즈카와 리카는 용길이 전처와의 사이에서, 미카는 영순이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각각 낳은 딸. 막내 토키오가 그들의 ‘순혈’ 아들이다. 용길은 태평양 전쟁에 강제 징용돼 한쪽 팔을 잃었다. 시즈카는 어릴 때 사고로 한쪽 다리를 전다. 중학생인 토키오는 학교에서 이지메를 당해 입을 닫고 산다.

곱창집엔 한국에 갈 수도, 일본인에 동화될 수도 없는 재일 동포 2세들이 모여 술 한잔으로 하루의 시름을 덜어낸다. 리카는 그중 대학을 나온 테츠오와 결혼한다. 미카는 나이트클럽의 가수 겸 사장인 연상의 미네코와 결혼한 유부남 하세가와와 불륜 중이다. 시는 판자촌에 공원을 조성하고자 한다.

곱창집을 찾은 시청 직원이 충분히 보상해 주겠다고 하지만 27년간 이곳에서 살아온 용길은 요지부동이다. 손님인 대수가 시즈카에게 관심을 표시하고 둘은 조심스레 데이트를 시작한다. 리카는 열심히 일하는 자신과 달리 놀고먹는 테츠오가 불만스러워 자주 다툰 뒤 동네 청년 일백과 눈이 맞는다.

시즈카와 대수가 약혼한 날 곱창집에선 가족 파티가 벌어지는데 술 취한 테츠오가 대수에게 시비를 걸더니 결국 싸움으로 번진다. 시즈카가 말리자 테츠오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줄곧 시즈카를 사랑했다고 고백한다. 결석이 잦은 토키오에게 유급이 결정되지만 용길은 그 학교를 지키라고 강압한다.

부부와 대수와 일백을 제외하면 모두 일본 배우다. 일단 김상호와 이정은의 연기는 보증수표고 일본 배우들의 연기 솜씨도 흠잡을 데가 거의 없다. 곳곳에 독립영화를 넘는 상업적 유머 요소가 가득하고 서너 번 크게 울리는 최루 장치가 튼튼하다. 우리는 물론 일본 관객들마저도 사로잡을 만하다.

인트로와 아웃트로는 토키오의 내레이션이 장식한다. 처음에는 “이곳도 이곳 사람들도 싫다. 세계는 고도성장하며 변화하는데 이 동네만 그대로다”라던 내레이션은 끝에 “사실 나는 이곳 사람들이 좋았다. 모두 좋았다”라고 매조진다. 우리는 평소 소중한 걸 모르다 잃고 나서야 깨닫는다는 교훈.

용길은 현실주의자이자 개척자이다. 현재 처한 환경을 피하려 하지 않고 어떻게든 그 속에서 이겨내려 한다. 또한 극한 방향으로 치우치지 않으려 하기에 되도록 중립을 유지하려 한다. 영순은 토키오를 전학시키자고 하지만 용길은 일본에서 살려면 일본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고집을 안 꺾는다.

“도망간다고 해결될 일 아냐. 여기서 살아야 해. 여기밖에 갈 곳이 없어”라는 그의 말엔 낙담이 아닌 강력한 개척정신이 드러난다. 그에게선 ‘우신예찬’으로 부패한 가톨릭교회를 비판하면서 성직자의 위선과 허구성 등을 풍자하고 야유한 에라스무스가 엿보인다. 그는 종교개혁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마르틴 루터는 에라스무스에게 여러 번 지지와 동참을 요청했지만 그는 거부했다. 그는 부패한 교회와 종교 지도자를 비판하고자 한 것이지 기존 체제를 전복하고 싶지는 않았던 중립주의자였다. 용길 역시 마찬가지. 한국인이지만 일본에 정착해야 할 운명을 믿고 일본의 문화를 인정한다.

또한 심신병행론으로 데카르트의 2원론과 심신관계의 문제를 극복한 스피노자의 합리주의까지 발견된다. 에라스무스와 스피노자는 모두 네덜란드인이다. 그들 시대의 네덜란드는 자유주의와 개척정신의 상징이었다. 용길은 시청 직원에게 제 땅을 예전의 땅 주인에게 돈을 지불하고 샀다고 말한다.

그러나 당시는 승전국인 미군이 관할했을 때. 지금은 일본이 주권을 되찾아왔기 때문에 국유지로 보는 것이다. 테츠오는 “한국에 돌아갈 수도, 여기서 정착할 수도 없는 ‘재일’은 모순덩어리”라고 탄식하지만 용길은 싸울 일이 있으면 싸우고 타협할 거면 타협해서 가족과 여기서 살겠다고 천명한다.

심지어 그는 매우 희망적인 낙천주의까지 보여준다. 의성어만 내지를 뿐인 토키오를 따라 오른 지붕 위에서 노을을 본 그는 “어제가 어떠했든 오늘이 이렇게 좋으면 내일을 믿을 수 있다.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미소 짓는다. 인생은 사는 게 아니라 살아지는 것이란 긍정 마인드가 가족을 이끈다.

시청 공무원이 불친절하다는 설정은 ‘일본이나 한국이나’라는 유머. 바가지를 긁는 리카에게 테츠오는 “대학 나와 돼지나 치우라고?”라고 반발하지만 리카는 정작 돼지 치우는 일백과 재혼한다. 짙은 화장의 기모노 여인이 마을에 등장했다 허둥지둥 사라지는 뜬금없는 시퀀스도 알고 나면 웃긴다.

테츠오는 뜻밖의 반전의 주인공이다. 그와 시즈카는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낸 서로의 첫사랑이었던 것. 테츠오가 시즈카를 꾀어 활주로에 들어갔다가 경비견에 다리를 물려 장애인이 됐다. 성인이 돼 테츠오가 청혼했지만 시즈카는 콤플렉스 때문에 거절했고 테츠오는 반발심리로 리카와 결혼한 것.

용길이 “내 팔 돌려줘”라고 절규하는 시퀀스에선 손수건이 필수다. 또 “나는 일하고, 일하고, 또 일하고”라며 가장으로서의 무게감도 웅변한다. 마지막 시퀀스는 끝은 마지막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이라는 메시지. 코로나19만 아니었으면 지난 3월 개봉 때 꽤 많은 관객을 웃기고 울렸을 작품이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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