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다른 블록버스터들이 개봉을 미루거나 OTT로 노선을 갈아타는 것과 달리 23일 극장 개봉을 강행군한 이유가 있었다. ‘원더 우먼 1984’(패티 젠킨스 감독)는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 이후 DC가 마블에 큰소리를 칠 만한 작품이었다. 전편에서 70년 가까이 흐른 풍요로운 자본주의가 팽배한 1984년.

다이애나는 스미스소니언에서 고고학자로 일하는 한편 원더 우먼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거대 쇼핑몰 보석가게에 4인조 권총강도가 들어 난동을 부리며 시민들을 위협하자 원더 우먼이 나타나 일망타진한다. 박물관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보물 박사 바바라는 모든 게 어설퍼 ‘왕따’로 외롭게 산다.

그런데 다이애나가 친절을 베풀고 행패를 부리는 취객을 제압해 주자 그녀를 우러러본다. FBI는 강도들이 훔친 보물이 밀거래된 고대 유물이라 추측하고 바바라에게 실체를 밝혀달라고 의뢰한다. 대중적으로 유명한 유전회사 블랙골드 대표 로드가 박물관에 나타나 거액을 후원하겠다고 선언한다.

로드는 그날 밤 축하 파티를 열고, 거기 참석한 바바라는 로드를 데리고 나와 자신의 사무실로 가 은밀한 시간을 갖는다. 사무실에서 드림 스톤이라는 황수정을 발견한 로드는 자신의 친구 중에 고대 로마 전문가가 있다며 스톤을 가져가 확실하게 실체를 밝혀내겠다고 제안하고 바바라는 승낙한다.

사실 로드는 사기꾼이고 유전은 죄다 거짓이었다. 그는 오래전부터 스톤의 존재를 알고 혈안이 돼 찾아왔다. 드림 스톤이란 이름답게 소원을 빌면 들어주는 신비의 돌이었던 것. 은연중에 ‘다이애나처럼 되고 싶다’고 말한 바바라는 치타란 빌런이 되고, 스톤 자체가 된 로드는 신적인 존재가 되는데.

인트로는 어린 다이애나가 부족의 전설의 전사였던 아스테리아를 꿈꾸던 데미스키라. 소녀는 성인 여전사들 틈에서 원형경기장에서 출발해 바다와 산을 돌아오는 철인경기에 출전하는데 정말 액션의 차원이 다르다. 레이스를 거의 마칠 즈음 그녀는 낙마하자 호승심에 지름길을 택했다 반칙패한다.

이모 히폴리타는 진실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원더 우먼의 진실의 올가미의 근거. 이 작품은 양차 세계대전으로 지구촌의 헤게모니를 쥐고 자본주의와 자유주의를 전 세계에 퍼뜨리는 가운데 패권주의를 노골적으로 펼친 미국에서 부를 위한 반칙과 변칙이 만연했던 세태를 비판해 원칙론을 펼친다.

따라서 진실과 자족이 전편에 흐르면서 과욕은 금물이라는, 물 흐르는 대로 살라는 자연주의가 팽배하다. 바바라는 원래 동네 흑인 노숙자에게 음식을 챙겨줄 정도로 마음이 따뜻한 여자였다. 하지만 그 나이에 제대로 된 사랑 한 번 해본 적 없고, 직장 동료들에겐 무시당하는 그림자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지적이고 섹시하며 심지어 상대방의 힘을 역이용한 호신술을 펼칠 만큼 강인한 다이애나가 부러웠다. 로드 역시 부에 대한 열망이 지나쳤던 것만 제외하면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바람둥이인 아내와 헤어진 후 어린 외아들 알리스터를 풍요롭게 해주는, 위대한 아버지를 보여주고 싶었을 뿐.

그러나 세상엔 원칙과 섭리가 있다. 다이애나는 이름부터 올림푸스의 아르테미스인 슈퍼히어로 데미갓. 데미스키라가 영웅으로 떠받드는 아스테리아는 그리스 신화의 섬이 된 티탄 신족이다. 신화에 의하면 그 섬은 현실의 오르티기아 섬 아니면 델로스 섬이다. 데미스키라가 섬으로 설정된 배경.

그러니 바바라는 용기 내 타이트한 드레스와 화려한 하이힐로 변신해 파티장에서 남성들의 시선을 끄는 것만으로 만족했어야 했다. 욕심을 부린 끝에 ‘세상 최고의 포식자’인 치타가 됐지만 얼굴은 사악해졌고, 온몸엔 털이 솟았다. 물론 이기적이고 육욕적인 남성에 대한 피해의식은 이해는 된다.

아마 감독은 그런 앞뒤 정황을 충분히 고려해 그녀의 변화를 그린 듯하다. 로드는 전 세계에 연결된 위성 네트워크를 통해 지구인의 소원을 들어주는 대신 그들의 힘과 건강을 빼앗아 거의 신의 경지에 오른다. 다이애나가 “충분히 가졌는데 왜 욕심을 부리냐”고 묻자 “많을수록 좋지 않냐”고 반문한다.

세 주인공은 각자의 욕심 때문에 가장 소중한 걸 잃을 위기에 처한다. 바바라는 인간성, 로드는 아들, 그리고 다이애나는 세상을 구해야 할 책임감이다. 다이애나의 골동품 시계가 요동치더니 70년 전에 죽은 스티브가 현실에 환생한다. 대다수의 이론과 창작물은 시간의 왜곡을 부정적으로 본다.

결론은 뭔가를 간절히 원하면 그만큼 중요한 걸 잃어야 한다는 등가교환의 법칙이다. 인류의 상업 활동의 시작은 물물교환이었다. 죄다 돈을 외치는 건 원하는 물질과의 교환 가치를 담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과유불급이란 잠언이 뒤따른다. 중용을 설파한 아리스토텔레스가 보인다.

심지어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뒤따른다’는 ‘스파이더맨’의 아포리즘까지. 한 철없는 인간이 초래한 과욕의 세상은 ‘엑스맨: 아포칼립스’나 ‘어벤져스: 엔드 게임’을 무색게 하는 매우 현사실적인 지옥도를 그려낸다. 자본주의가 야기한 혼돈의 무질서를 이토록 전율토록 만든 작품은 당분간 없을 듯하다.

섹시하거나 힘만 잔뜩 들었던 갤 가돗은 이제 연기다운 연기를 펼치고, 로드 역의 페드로 파스칼은 히스 레저와 호아킨 피닉스에게 도전한다. 섭리를 거스르는 욕심 때문에 약해졌지만 이내 마음을 비움으로써 참된 영웅으로 거듭나는 원더 우먼의 성장기. 욕심에 대한 비판, 자본주의에 대한 경고!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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