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강 따라 사비성에 닿으면 낙화암이 보이는 백강

[미디어파인 칼럼=최철호의 한양도성 옛길] 백제 역사와 문화의 구분은 큰 강을 따라 나누어진다. 임진강과 한강을 거슬러 오르면 한성도읍기 위례성(慰禮城)인 백제의 도성이 나온다. 하남위례성은 어디쯤일까? 삼각산 아래 큰 물줄기 옆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이 찬란한 백제의 시작을 알렸다. 500여 년간 한강을 지배하며 뱃길을 따라 백제 문화를 꽃피웠다. 한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산과 남한산에 백제의 산성의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있다. 또한 석촌동 고분군과 방이동 고분군은 백제의 역사와 문화유적이다. 하지만 아차산에서 백제 중흥을 이끈 개로왕의 죽음으로 웅진도읍기가 도래한다.

한성도읍기에서 웅진도읍기로 강을 따라 천도한다

백제는 강 따라 다급하게 도읍지를 이동하였다. 한성에 수많은 궁과 궐 그리고 도성과 고분군을 두고 떠난다. 웅진도읍기는 금강 아래 웅진성(熊津城)에서 불안정한 5대 64년간 수도의 역할을 한다. 백제는 한강과 금강을 끼고 찬란한 문화를 형성하였다. 금강을 통해 서해 중국의 남조문화와 교류하며 세련되고 우아한 백제 문화의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금강 아래 도성인 웅진성은 작고 수세적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송산리 고분은 왕의 출생과 사망 연대가 처음으로 확인된 왕릉이다. 석수인 진묘수에 무령왕의 24년간 찬란했던 재위기간을 알 수 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또한 벽돌무덤인 전축분에서 사신도를 통해 지금의 공산성 둘레의 깃발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사비도읍기 사비성의 비밀은 강을 따라 숨겨있다

▲ 사비도읍지 능산리 고분군_왕릉원

금강을 중심으로 경제 기반이 확대되고, 제방 수리와 저수지 축조까지 도시가 발달하며 웅진성보다 큰 수도가 필요하였다. 사비도읍기 사비성(泗沘城)으로 수도 이전은 1400여 년 전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금강 아래 수세적인 웅진성보다 공세적인 사비성을 쌓고, 도성 아래 나성을 구축하였다. 사비로 천도한 후 성왕은 백제 중흥과 함께 왕권을 강화한다. 국호도 남부여(南扶餘)로 하여 122년간 금강에서 한강까지 회복하려고 하였다. 도성의 이름도 부소산에 성곽을 쌓고 사비성 또는 부소성이라 하였다. 부소성 뒤 큰 강 이름도 금강(錦江)이 아닌 백강(白江)으로 불리었다. 백강 따라 2.2km의 도성인 부소산성 아래에는 금성산과 화지산 둘레로 동서남북 중앙에 5개의 큰 사찰을 지었다. 사비도읍기는 평지에 사찰을 지었으니 정림사(定林寺)터가 찬란한 사비 백제의 상징이자 희망이었다.

▲ 익산 미륵사지 석탑_가장 오래된 가장 큰 규모의 탑

정림사지는 1탑 1금당으로 석탑과 금당이 일직선으로 전형적인 백제의 수도 안 사찰이다. 정림사지 5층 석탑은 1400년 동안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며 백제 가람의 규모와 배치를 알려주는 유물이다. 찬란했던 백제와 소정방의 침입에 패망한 백제를 하나의 이야기로 담았다. 소정방의 평제탑으로 알려진 가슴 아픈 글씨 8자가 탑에 쓰여져 있다. ‘대당평백제국비명(大唐平百濟國碑銘)’이 정림사지 5층 석탑 오른편에 희미하게 남아있다. ‘백제를 평정한 기념탑’으로 아픈 역사지만 백제의 역사가 되어 1360년 동안 부여에서 버티어 왔다. 슬프지만 우리나라 석탑의 시원이자 목탑처럼 우아하고 아름다운 탑이다. 보면 볼수록 국보 제9호로 그 위엄이 전해진다. 또한 백제 불교는 문화가 되어 정림사지 석탑뿐 아니라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함께 백제의 가장 오래된 석탑이다. 사비도읍기는 석탑의 나라 백제가 찬란한 역사의 유물로 전해지고 있다.

정림사지 5층 석탑과 능산리 고분군은 백제 문화의 꽃이다

▲ 정림사지 오층석탑_백제시대 최고의 석탑

123년 사비도읍기 왕과 왕비가 살아서 궁에, 죽어서 능에 묻히니 능산리 고분군이 사비성 밖에 있다. 사비성에서 3km 거리인 도성 밖 십리안 121m 능산에 능이 모여있다. 3기씩 2열 그리고 북쪽 끄트머리에 1기가 있어 모두 7기가 남향인 왕릉으로 전해지고 있다. 1호분에 사신도가 있고, 고분군의 위치 역시 풍수지리상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의 산세와 지세가 잘 갖추어진 왕릉이다. 또한 사신도가 있는 벽면에는 사방에 맞는 색깔까지 그려져 공주의 송산리 고분과 부여의 능산리 고분이 백제 왕릉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리고 능사(陵寺)터인 원찰까지 발굴되어 역사적 의미가 큰 도시가 부여(扶餘)다.

금강(錦江)을 따라 부소산성에 닿으면 백강(白江)을 만날 수 있다. 백제시대부터 지금까지 지명을 유지한 도시가 바로 부여다. 한강(漢江) 따라 백제가 시작되고, 백강(白江)에서 찬란한 백제가 꽃 피었다. 부여는 완성된 백제의 역사이며,정림사 5층 석탑과 왕릉지 및 궁남지는 백제 문화의 지붕없는 박물관이다. 강 따라 배를 타고 물길로 시간여행 하여도 좋고, 백제 옛길을 따라 부여에 공간여행하면 더욱 기억에 남는다. 2021년 첫 시작을 역사유적지에서 시간여행 해 보면 어떨까요? 길 위에서 길을 찾듯, 길 속에서 문화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 성곽길 역사문화연구소 소장 - (저서)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최철호 소장]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
‘한양도성에 얽힌 인문학’ 강연 전문가
한국생산성본부 지도교수
지리산관광아카데미 지도교수
남서울예술실용전문학교 외래교수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저서 :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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