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출처=픽사베이

[미디어파인 칼럼=김권제의 생활어원 및 상식] 인간들은 어떤 하나의 일에도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논쟁을 한다. 애기가 태어나도 행복한 곳에 태어났느냐? 불행한 곳에 태어났느냐의 논쟁이 존재한다. 논쟁을 떠나서 생명이란 존귀한 것이고 신비로운 것이다. 이 지구에 더 이상 생명이 태어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은 상상하기도 싫다. 식물은 식물 나름대로 동물은 동물 나름대로 자기의 종을 연속시키기 위하여 온갖 역경을 이겨내야 한다. 그래서 그 역경을 헤치고 나오는 새 생명이 위대한 것이다.

무적의 동물인 사자, 악어, 코끼리 그리고 코뿔소의 새끼는 그야말로 동네 북이다. 평소에 거들떠보지도 않던 연약한 동물에게도 쉽게 죽임을 당한다. 그래서 강력한 어미의 도움이 성장에 필수 조건이다. 인간은 어떠한가? 우리 조상들은 집안에 애기가 태어나면 부정을 타지 않도록 대문에 금줄을 치고 부정한 기운의 출입을 경계했다. 그리고 연약한 생명이 지속되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100일이나 돌잔치를 하면서 장생을 빌었다. 그렇게 무사히 성장한 생명은 다른 배우자를 만나서 또 다른 영속성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게 된다.

식물들은 씨를 그 자리에 혹은 멀리 날려 보내거나 아니면 동물들의 맛있는 식사로 변신해서 수 만리 떨어진 곳에 씨를 뿌려서 대를 잇는다. 동물들은 수 만리 길을 죽음을 무릅쓰고 이동을 하여 새로운 생명을 낳은 다음 새끼가 자라면 근거지로 돌아온다. 그 과정에서 무수한 생명들이 사라진다. 대표적인 장거리 이동을 하는 회귀동물하면 조류나 연어가 생각난다.

▲ 사진 출처=픽사베이

우주인들이 먼 우주에서 지구를 보면 그렇게 아름답다고 한다. 이 지구의 깨끗한 물과 푸른 나무, 맑은 구름과 대기가 아름다움을 만드는 요소이다. 하지만 이 지구가 아름다운 것은 여러 자연의 요소 중 수많은 생명체들이 존재하기에 더 아름다울 수가 있는 것이다. 사람이 꽃 보다도 아름답듯이 수많은 동물과 식물들의 생명력이 이 지구를 더욱 활기차고 아름답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구의 연속성을 만드는 새 생명의 ‘탄생(birth)’은 어디에서 온 말일까?

‘birth’를 의미하는 고대 영어는 ‘gebyrd(탄생)’인데 이 말은 인도-유럽 공통기어 ‘bher-(수행하다, 맺다)’에서 온 ‘bhr̥tis’에 접두사가 붙은 ‘gaburdiz’가 모태이다. 이 말에서 나온 게르만 조어 ‘burdiz(탄생)’가 고 노르드어 ‘burðr’/ ‘byrd’로 유입이 됐는데 이 말이 고대 영어 ‘gebyrd’를 대체하면서 ‘burthe’/ ‘burde’가 되었고 다시 1250년경 중세 영어 ‘birthe’로 변형되면서 최종 ‘birth’로 정착을 하였다.

‘born’은 동사 ‘bear(과일을 맺다)와 방언의 변형인 ‘burn’에서 왔다. ‘bear’는 인도-유럽 공통 기어 ‘bher-‘가 게르만 조어 ‘beraną’가 되었고 이 말이 고대 영어 ‘beran(수행하다, 맺다)’으로 유입되어서 중세 영어 ‘beren(수행하다, 출산하다)’으로 되었다가 ‘bear’로 최종 정착을 하였다.

[김권제 칼럼니스트]
고려대학교 영어교육학과 졸업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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