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폴란드의 헨릭 센키비치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쿼바디스’(머빈 르로이 감독, 1951)는 아직도 회자되는 명작 블록버스터로 이맘때 즈음이면 으레 ‘필독서’ 목록에 포함된다. 당연히 기독교적 색채가 짙긴 하지만 그렇다고 일방적이진 않다. 사랑, 예술, 인간미 등의 메시지가 훈훈하다.

예수가 순교하며 기적을 보여준 뒤 30년 네로 황제의 로마 제국. 브리튼 원정에서 승리한 사령관 마르쿠스(로버트 테일러)가 로마로 금의환향하지만 네로는 근위대를 통해 군단을 하루 동안 외곽에 머물도록 명령한다. 이에 불복하고 황궁에 입궁한 그는 삼촌이자 네로의 측근 페트로니우스를 접견한다.

페트로니우스는 마르쿠스가 편히 쉬도록 전 군단장 파비우스의 집에 데려간다. 그곳에서 포로로 잡혀 파비우스의 수양딸이 된 러시아 영토 리지아 왕국의 공주였던 리지아(데보라 카)를 본 마르쿠스는 첫눈에 반해 접근하지만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리지아는 피비린내 나는 그에게 거부감을 나타낸다.

파비우스의 집에 박해를 피해 다니며 교인들에게 가르침을 설파하고 있는 사도 바울이 나타난다. 파비우스가 예수와 직접 만나 말씀까지 들은 베드로에 대해 묻자 바울은 곧 만날 것이라 전한다. 페트로니우스는 자신의 여자 노예 유니스를 마르쿠스에게 주려 하지만 마르쿠스도 유니스도 거부한다.

역사에 남고픈 네로는 로마를 싹 불태워 청소한 뒤 네로폴리스라는 새 도시를 세우겠다고 선언한 뒤 실천한다. 놀란 마르쿠스는 화재 현장에 뛰어들어 보디가드 우르수스와 피신 중이던 리지아를 발견해 간신히 구한 뒤 난민들이 유일하게 피할 수 있는 황궁 쪽을 지키는 경비대장을 쳐 살려 준다.

시민들이 네로를 방화범이라며 비난하자 황후 포페아 등 측근들은 죄를 기독교도들에 뒤집어씌우면 비난 여론도 잠재우고 제국의 눈엣가시인 교인들도 제거하는 일석이조라고 귀띔한다. 이에 네로는 대대적인 종교 탄압을 시작한다. 리지아 가족이 구속되자 그들을 구하러 온 마르쿠스도 수감된다.

네로 측근 중 유일하게 쓴소리로 충언을 아끼지 않았던 페트로니우스는 로마의 운명이 머지않았을 뿐만 아니라 네로의 시대가 끝났다는 걸 직감하고 사랑하는 유니스에게 전 재산을 상속한 뒤 세상과 하직한다. 그러자 유니스도 그를 뒤따르고 그의 유언 편지는 세네카를 통해 네로에게 전달되는데.

이 영화는 기독교인의 시각에서, 또는 종교를 떠나서의 평가가 중요할 듯하다. 단, 종교를 배제하더라도 10년 안팎의 제작 기간과 더불어 그 속에 쏟아부은 물량공세와 노력이 창출해낸 엄청난 규모는 당시의 기술력에 비춰 볼 때 영화 역사에 길이 남을 기념비적인 작품인 것만큼은 인정받아 마땅하다.

먼저 종교적 관점. 가장 중요한 사건은 로마 대화재다. 네로는 약 400년 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가 최초의 제국을 건설하며 북아프리카를 비롯해 각 속주마다 자신의 이름을 딴 도시 알렉산드리아를 세웠듯 로마에 네로폴리스를 세우기 위해 옛 로마에 방화를 해 시민들의 분노를 한몸에 산다.

이에 민심을 돌리기 로마 제국에 적대적이었던 기독교도에 죄를 뒤집어씌운다. 마르쿠스는 리지아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철저한 로마 군인이었다. 네로가 썩 마뜩지는 않았지만 출세를 위해 충성하는 태도를 취했으며 남자라면 마땅히 로마 군인이 돼 정복 전쟁에 나서야 한다는 신념을 지녔었다.

뿐만 아니라 네로처럼 기독교를 미신으로 폄훼하고 오직 주피터 등 로마의 신만이 진정한 주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그러나 리지아와 그녀의 양부이자 한때 자신과 같은 위치에 있었던 파비우스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과 리지아를 향한 자신의 진정한 사랑을 깨닫고 점차 변해간다.

심지어 세례조차 안 받은 그는 리지아가 절체절명의 순간에 놓이자 자신도 모르게 “주여, 도와주소서”라고 외친다. 사실상 기독교의 창시자인 사도 바울과 예수의 12제자 중 한 사람으로서 예수를 세 번 부인했던 베드로 역시 매우 종교적으로 그려진다. 베드로의 지팡이에 꽃이 피는 게 대표적이다.

종교를 떠나선 불편할 수도 있다. 먼저 네로가 기독교를 박해한 건 맞지만 시대가 흐를수록 그의 폭정에 대해서는 해석이 유전하고 있기 때문. 즉 어머니와 아내를 죽인 점은 용서할 수 없지만 당시 왕가에선 흔한 일이었다는 점, 그리고 뛰어나진 않았지만 그가 예술을 사랑했던 건 맞는다는 이유.

그는 자작곡으로 류트와 리라를 연주하며 노래했고, 자작시를 낭송했으며, 연극에도 출연했다. 당시 제국은 원로원, 로마의 행정권과 군 통수권을 가진 집정관, 민회를 대변하는 호민관, 각 속주를 지배하는 총독 등으로 권력이 분립돼 있었지만 아우구스투스 때 독재가 성립됐고, 네로가 이어받았다.

그걸 염두에 둬서일까? 네로 역의 피터 우스티노프의 연기 솜씨는 두 주인공 못지않게 두드러진다. 실제 네로가 자살할 당시의 나이가 31살. 우스티노프는 항상 뭔가에 쫓기는 듯하고, 정에 굶주려있으며, 얼빠진 듯 영혼이 겉도는 모습이다. 최측근의 아부와 비아냥거림과 충성을 구분하지 못한다.

네로의 스승인 세네카는 비록 세속에 물들긴 했지만 올바른 이성으로 선과 덕을 행해야 인간이라는 스토아주의자였는데 이 영화에선 그저 예스맨이고 심부름꾼일 따름으로 그려지는 것도 아쉽다. 그는 영혼과 육체의 이원론으로 영혼을 우위에 뒀는데 네로는 달랐다. 외려 기독교도가 그에 충실했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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