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저항해야 할 때 침묵하는 것은 비겁한 죄악이다’-E. W. 윌콕스. 1963년 12월 22일 오후 12시 30분 텍사스주 댈러스. 서행하는 컨버터블 리무진을 향해 세 발의 총탄이 날아와 케네디 대통령과 코널리 텍사스 주지사를 명중했다. 나머지 한 발은 도로에 맞고 파편이 튀어 서있던 행인의 뺨에 맞았다.

또 한발의 강력한 총탄이 케네디의 머리에 명중해 잠시 후 정부는 그의 사망을 공식 발표했다. 총격이 있은 지 2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24살의 해병대 출신의 백인 남자 오스월드(개리 올드먼)가 용의자로 검거됐다. 그는 한때 소련에 망명한 적이 있고, 열렬히 카스트로 지지 운동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23시간 동안 계속된 수사에서 오스왈드는 계속 “아무도 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2일 뒤 TV로 생중계되던 이송 때 그는 스트립쇼 술집 사장 잭 루비의 총에 맞아 사망한다. 루비 역시 감옥에서 죽는다. 후임 대통령 존슨은 국내외의 의심을 무마하기 위해 급히 진상조사 위원회를 연다.

대법원의 워런 판사를 의장으로 하는 이 위원회는 목격자들의 증언을 포함한 여러 자료를 토대로 오스월드의 단독범행이라고 결론짓는 ‘워런 보고서’를 작성하며 공식적으로 사건을 마무리한다. 그러나 수많은 학자와 수사관들은 워런 위원회의 수사 방법에 의문을 제기하며 나름의 수사를 시작한다.

뉴올리언즈의 지방 검사 개리슨(케빈 코스트너)은 그중에서 가장 열성적인 인물로 JFK 암살 사건의 배후 인물을 재판정에 최초로 세운다. 수사가 교착 상태에 빠져있을 때 X(도널드 서덜랜드)라는 인물이 등장해 그에게 ‘누가, 어떻게 죽였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왜 죽였는가가 본질’이라 말한다.

진보적인 개혁가 JFK를 살해해서 이득을 볼 사람들은 존슨과 닉슨 등 보수 정치인과 기득권층이다. 개리슨은 오스월드의 배후와 그를 증언해 줄 사람을 찾지만 갑자기 죽는다. 6년 후 개리슨은 JFK 저격사건의 배후 인물로 남부에서 입김이 센 경제인 쇼(토미 리 존스)를 기소해서 법정에 세우는데.

‘JFK’(1991)는 미국의 치부를 까발리는 데 둘째가라면 서러울 올리버 스톤 감독의 역작으로 거친 자료 화면과 흑백 톤 등의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189분이 전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스릴과 서스펜스가 넘친다. 30살에 하원으로 정계에 입문해 44살에 대통령에 취임한 존 피츠제럴드 케네디.

흑인에게 투표권을 주고 소련, 쿠바 등 공산주의 국가와 화합하려 노력한 개혁가로서 유색 인종과 진보 성향의 국민들에겐 영웅이었지만 기득권층엔 원수였다. 세계 최강국 미국의 대통령이 취임한 지 2년 10개월 만에 백주에 거리에서 킬러 1명에게 사살됐다. 이게 현실적으로 가당키나 한 일인가?

어쩐지 많이 본 듯한 기시감을 준다. 케네디는 생전에 “같은 공기로 호흡하는 우린 모두 같은 인간이다”라며 인권평등론을 설파했다. 그러나 보수주의자들은 “깜둥이한테 투표권을 주니 살해당하지”라며 고소해한다. 개리슨은 그런 미치광이를 보며 “오늘 내가 미국인인 게 부끄럽다”며 얼굴을 붉힌다.

케네디는 CIA의 권력을 분산시키려 했지만 관료주의의 저항에 부딪쳐 실패했다. 또 베트남전의 예산을 삭감할 뿐만 아니라 아예 빠지려고 했다. 냉전도 종식시키려 했다. 하지만 CIA, FBI, 국방부 등을 비롯한 보수 기득권층은 그렇게 되면 이득이 줄어든다. ‘No money, no war’라는 정말 살벌한 대사.

전쟁이 줄어들자 기득권층은 해외에서 사용했던 전쟁 규칙을 국내에 적용시키고 있었다. 케네디는 이와 달리 평화주의자였기에 “시저처럼 적에 둘러싸여 있었다”는 말을 듣는다. 연방 검사와 판사들이 진실을 외면할 때 한낱 지방검사 개리슨은 고군분투하지만 그의 사무실에선 도청장치가 발견된다.

언론은 그에게 부정적인 기사뿐만 아니라 왜곡한 것까지 휘갈긴다. 1968년 4월 4일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살해되고, 상원의원에 당선된 존의 동생 로버트가 6월 6일 저격당해 숨진다. 개리슨의 아내는 “애들 키우면서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절규하며 생명의 위협으로 일상이 망가졌음을 호소한다.

개리슨은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보고도 참을 수는 없었어. 누군가는 시도해야지. 진실을 말하는 게 때론 무섭기도 해. 케네디 사건은 특히 무서웠지만 용기를 낸 거야”라고 항변한다. “천지개벽이 일어나도 정의는 실현돼. 대통령을 잃었는데 국가 안보가 어디 있어? 그건 파시즘, 쿠데타야”라는 호소.

그는 시종일관 진실을 외친다. “진실은 권력에 위협적이다. 진실은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더 큰 거짓말일수록 더 잘 믿어”라는 히틀러의 말을 인용하고, 카프카의 ‘심판’을 거론한 게 인상 깊다. ‘심판’의 요제프 K.는 영문도 모른 채 불합리한 재판정에 서고 지난한 공방전 끝에 결국 사형을 당한다.

카프카는 납득할 수 없을 만큼 제도화된 현대 관료주의를 비꼬기로 유명하다. ‘심판’엔 미로와 같은 사무실이 등장한다. 지저분하고 꿉꿉한 느낌의 그 권력의 톱니바퀴 기계 안에서 상투적으로 뭔 일인지도 모르는 것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상투적으로 펜을 끄적거리며 살아가는 공무원을 조롱한다.

요즘 우리는 검찰 개혁과 공수처장 문제로 국론이 분열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청와대 기록은 한참 뒤에야 볼 수 있단다. 워런 위원회의 기록은 2029년에, CIA와 FBI 기록은 2038년에야 각각 볼 수 있단다. 스톤은 ‘젊은이들에게 바친다. 진실을 찾는 정의가 이어지길’이란 자막으로 마무리한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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