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미스터 보스’(김형기 감독)는 고교를 무대로 하지만 ‘친구’나 ‘말죽거리 잔혹사’처럼 진지하거나 과장되지 않고 매우 현사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유머를 적당히 버무린 꽤 재기 발랄하고 위트가 넘치는 우정의 영화다. 고1 현준(공찬)은 아버지의 사업이 망하자 전북 순창으로 이사, 광상고로 전학한다.

1년 재수한 영수, 권투를 익힌 진원, 돈에 환장한 병연 등과 사총사로 뭉쳐 재미있는 학창생활을 보내는 한편 이젠 공부 좀 해보자고 마음먹지만 여기도 불량 서클 제우스가 휘어잡고 있어 분위기는 어수선하다. 서클 ‘짱’인 2학년 재윤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지만 어쩐지 영수에게는 조심스럽다.

영수를 만나러 나간 현준은 기함한다. 의외의 미모의 여자 친구 정현이 그에게 갖은 애교를 부리고 있는 것. 분기탱천할 때쯤 그녀의 친구 지민이 나타난다. 영수는 현준에게 그녀가 좋아하는 것 같다고 귀띔한다. 지민은 죽은 엄마의 생일에 영정을 모신 사찰로 현준을 초대해 소개한 뒤 입을 맞춘다.

학생들 사이엔 전설이 있다. 2년 전 중학생으로 구성된 삼별초란 서클이 인근의 내로라하는 고교의 서클을 초토화시킨 뒤 홀연히 사라졌다는 것. 재윤은 드디어 영수를 치기 위해 다른 서클 허리케인까지 끌어들여 도전장을 던진다. 주먹이나 수적으로 열세인 현준 등은 용기 하나로 영수를 돕는데.

전혀 그렇지 않지만 우아한 척하는 담임 앙드레 진, 토너먼트가 붙을 때마다 도박을 부추겨 수수료를 챙기는 병연, 재윤의 앞잡이로서 현준 등을 괴롭히는 1학년 대가리 등 다수의 인물들의 언행이 과장되지만 의도한 유머라 각 캐릭터들을 즐기는 재미가 꽤 크다. 드라마의 큰 줄기는 참다운 우정.

아리스토텔레스는 ‘친구란 두 사람의 신체에 사는 하나의 영혼’이라고, 몽테뉴는 ‘솔기마저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의 결합’이라고 우정에 대해 말했다. 1900년의 시차가 나는 두 인물이 같은 내용을 말했다. 키케로는 ‘우정에 관하여’에서 ‘우정은 미덕에 기초하고, 미덕에 의해 유지돼야 한다’고 썼다.

현준은 겁 많은 물렁팥죽이었지만 싸움과 처신에 있어서만큼은 두루치기였던 겸손한 영수와 복싱의 귀재 진원 덕에 착실한 가르친사위가 된 후 점점 싸움과 처신 솜씨가 늘어간다. 그러나 과유불급. 제동장치 없이 질주하는 데 대해 영수가 따끔하게 조언하자 아직 덜 익은 현준은 어깃장을 놓는다.

그런 그들의 흔들리는 우정을 다시금 탄탄하게 복원시켜 준 건 영수의 위기. 영수는 재윤에게 1대1로 결론짓자고 제안하지만 비겁한 그가 제안을 받아들일 리 만무. 이에 현준 등은 비록 큰 힘은 못 되지만 불행도 함께하겠다며 합류한다. ‘불행은 진정한 친구가 아닌 자를 가려준다’-아리스토텔레스.

현준의 성장은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과 존 로크의 경험론 사이의 징검다리 역할을 한 가상디의 감각론이다. 가난 때문에 공부도, 싸움도, 대인관계도 원만치 못하고 소극적이었던 그는 영수의 완급조절과 진원의 코치로 처세술과 싸움의 요령을 배워간다. 아빠의 부상은 그의 성장의 마침표다.

병상에 누운 아빠 대신 택배 일을 하느라 결석을 하자 친구들이 달려와 도와준다. 우정의 ‘찐’맛, 감각론의 체화! 영수는 비록 한 살 많지만 그 경험이 풍부하기 때문에 겸손할 때와 나설 때를 잘 안다. 그의 가장 큰 낙은 삶은 계란 한 판을 마요네즈에 찍어 먹으며 쌓아놓은 만화책을 보는 것이다.

“꿈이 있어야 행복하지. 행복해지고 싶어”라며 화백을 꿈꾸는 그는 딱 한 번 나설 때 “저지른 죄는 털고 가야지”라고, 현준은 “그때 알았다. 영수가 그토록 이별하고 싶었던 게 뭔지”라고 말한다. 그 회자정리는 인트로의 “새로워서 새로운 희망이. 다 잘될 듯”이라는 현준의 독백과의 수미상관이다.

삼별초라는 키워드가 이 영화의 마지막까지 재미를 담보하는 반전이다. 잔뜩 기대감을 부풀렸다 실패하는 영화보다 전혀 기대하지 않고 무심코 관람했다 의외의 큰 만족을 얻는 영화가 보석이라면 이 작품이 그렇다. 단 현준과 지민이 지민의 과거 때문에 갈등하는 신파는 좀 어색하다. 30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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