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매 시간 유괴 사건이 벌어지는 멕시코시티. 전 CIA 암살전문 요원 존 크리시(덴젤 워싱턴)는 과거의 트라우마로 알코올에 의지하며 폐인처럼 가족 하나 없이 산다. 오랜 친구이자 동지인 레이번(크리스토퍼 월켄)의 소개로 사업가 새뮤얼(마크 앤서니)의 딸 피타(다코타 패닝)의 보디가드로 취업한다.

세상을 향해 단단히 벽을 쌓고 살던 크리시는 많은 호기심과 관심을 보이며 귀찮을 만큼 질문을 해대는 이 9살 소녀가 성가시다. 같은 미국인인 피타의 엄마 리사(라다 미첼)는 딸은 친구가 필요하다고 얘기하고, 크리시가 티 없이 맑은 피타에게 수영을 가르쳐 준 계기로 둘은 다정한 친구가 된다.

피타를 통해 모처럼 행복을 느끼며 새 출발을 꿈꾸던 크리시의 희망은 그러나 오래가지 못한다. 피아노 교습소 앞에서 피타를 기다리던 크리시는 경찰을 포함한 납치범들의 공격에 맞서지만 4명을 사살한 뒤 자신도 총격을 받고 쓰러진다. 그렇게 피타는 유괴되고 납치범은 1000만 달러를 요구한다.

혼수상태에 빠진 크리시는 경찰을 죽였다는 이유로 멕시코 경찰의 집중 감시를 받지만 레이번의 도움으로 혐의에서 벗어나 병원을 나온다. 용의자는 부패 경찰이 속했을 뿐만 아니라 고위층과 유력 정치인들의 비호를 받는 조직 헤르만다드. 그런데 그들이 요구한 돈이 사라지자 조직은 피타를 죽인다.

크리시는 리사에게 피타 사건과 연관된 모든 자들을 죽음으로 응징하겠노라 선언하고 부패 경찰을 잡아 취조하는데 놀랍게도 협상금을 새뮤얼의 변호사가 가져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영화 ‘맨 온 파이어’(토니 스캇 감독, 2004)의 필름 톤과 커트는 마치 왕자웨이 감독 작품을 연상케 만든다.

그만큼 그림과 전체적 분위기도 누아르적 냄새가 물씬 풍긴다. 노골적인 포교만 제외하면 147분이 전혀 지루하지 않다. 액션은 당연히 훌륭하고, 크리시와 피타의 아웅다웅하는 시퀀스도 소소한 재미를 선사한다. 피타는 가룟이 아닌 실패한 이념의 수호성인 성 유다 목걸이를 크리시에게 선물한다.

크리시가 즐기는 건 술 아니면 성경이다. 그는 자신이 수많은 목숨을 빼앗은 데 대해 괴로워하며 ‘신이 우리를 용서할까?’라고 뇌까리곤 한다. 멕시코의 부자를 선택한 리사는 “신을 잊은 지 오래”라고 말하더니 피타가 죽자 크리시의 성경을 읽는다. 자신의 불신이 딸의 불행으로 연결됐다고 믿는 것.

과달루페 성모 발현 발언도 직설적이다. 액션 스릴러인 만큼 사건의 내막을 파헤쳐 가는 반전의 재미도 크다. 3번의 반전은 꽤 충격적이다. 그리고 결말은 매우 음울하지만 희생이라는 비장미는 꽤 교훈적이다. 새뮤얼의 “포드와 제휴를 모색 중”, “사업 잘 되라고 기도했다”라는 대사에 힌트가 있다.

“이전 경호원은 월급이 적다고 떠났다”는 피타의 대사 역시 마찬가지.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자본주의 혹은 물질만능주의가 얼마나 무서운지 모골이 송연해질 것이 확실하다. 멕시코는 치안이 불안하기로 유명한 나라다. 그만큼 빈부격차가 크기 때문에 극빈자들의 부자들에 대한 반감은 매우 크다.

그들 중 일부는 운명론에 기울거나 ‘이 정도가 어디야’라며 포기를 자족으로 위장한 채 체념이 미덕인 양 살아가지만 적지 않은 이들은 악착같이 돈벌이를 하거나 아예 부자의 돈을 호시탐탐 노리기도 한다. 과연 이 세상은 아등바등 눈에 불을 켜야 할까, 아니면 도가나 불교를 믿는 게 바람직할까?

영화 내내 흘러나오는 미국의 국민 여가수 린다 론스태트의 ‘Blue Bayou’에 그 답이 있다. 블루 바이유는 호수, 잔잔한 강, 조용한 시골을 뜻한다. 젊은이들은 저마다 생계 혹은 출세를 위해 도시로, 도시로 몰려들지만 일상에 지칠 나이 즈음엔 소박하지만 걱정 없는 한적한 고향을 그리기 마련.

클럽에서 크리시가 총을 쏘고 방화하자 춤꾼들의 열기가 더 고조되는 자본주의의 광기! 전임 경호원이 남긴 앵무새를 크리시가 날려보내자 다시 돌아온다. 고향에의 회귀본능! 피타의 반려견 이름이 샘인 건 패닝의 출세작 ‘아이 엠 샘’을 염두에 둔 센스다. ‘레옹’과 ‘아저씨’ 사이의 고독한 킬러!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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