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출처=픽사베이

[미디어파인 칼럼=한의사 홍무석의 일사일침(一事一針)] 알려진 대로 유대인은 나라 없이 2000여 년 동안 세계를 떠돌았다.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유대인 방랑의 역사를 4000년으로 보기도 한다. 이집트→바빌로니아→로마→스페인→네덜란드→영국→미국 등이 유대인의 주요 방랑동선(動線)으로 꼽힌다.

역사 전문가는 아니지만, 이원복 교수의 <먼 나라 이웃나라> 같은 책을 몇 번씩 읽다보면 세계사에서 유대인의 역할에 대해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유대인을 포용하는 시대는 크게 번성하고, 유대인을 박해하면 쇠퇴했다는 것을 감지하게 된다.

일찍이 금융 분야에 두각을 보였던 유대인들은 스페인에선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컬럼버스의 신항로 개척에 자금을 지원했을 정도이며, 네덜란드 영국에서는 채권·은행권 발행 등의 기법으로 당시 두 나라가 세계를 재패하는 데 기틀을 제공했다고 한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온 유대인들은 워싱턴 장군이 독립 전쟁을 지휘할 때도 물심양면으로 도왔고, 월스트리트를 중심으로 무역과 금융업을 주도하는 뉴욕 건설의 주역도 유대인으로 꼽힌다. 최근에는 코로나 백신개발에서 유대인의 활약상과 신기술을 수용한 미국 정부가 화제다.

▲ 사진 출처=픽사베이

우선 기존의 백신과는 달리 항체를 유도하는 단백질을 주입하는 mRNA백신 기술의 주역이 공교롭게도 모두 유대인이다. 드류 와이즈만 펜실베이니아대 교수와 바이오엔텍의 카탈린 칼리코 수석부사장이 그 주인공으로 신기술 개발에 첨병 역할을 했다.

칼리코는 1976년 헝가리 대학에서 생명과학 강의를 듣다가 mRNA 세계에 빠졌다. 분자생물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1984년 미국으로 건너가 연구에 몰두했지만 쉽게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면역학의 대가인 와이즈만 교수를 1997년 만나면서 운명이 바뀐다.

와이즈만 교수가 칼리코 연구의 중요성을 알아보고 그를 집중 지원했기 때문이다, 처음에 mRNA 주사는 심각한 염증 반응을 일으켰지만 연구를 거듭해 그들은 세포 안으로 mRNA정보를 집어넣는 기술을 특허 내면서 백신 접종의 신기원을 열게 된다.

RNA를 비눗방울처럼 얇은 지방질로 감싸 몸속 세포까지 안전하게 운반하고 세포에 도달하면 RNA가 쉽게 나오게 잘 쪼개져야 하는 고난도의 기술을 해결한 것이다. 화이자와 모더나가 이 기술을 이용해 빠른 속도로 백신을 만들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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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mRNA 백신의 개발 과정을 훤히 꿰뚫고 있는 전문가가 미국 정부기관에 있었는데, 바로 앤서니 파우치 국립 알레르기·감염병 연구소장이다. 와이즈만 교수가 알레르기·감염병 연구소에서 파우치 소장의 지도 아래 박사 후 과정을 밟은 인연 때문이었다고 한다.

파우치 소장이 “새로운 기술이지만 안전성과 성공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는다”며 전문가들의 연구결과를 적극 수용하고 파격적으로 지원해 마침내 접종이 시작된 mRNA 백신은 코로나19 종식의 게임체인저로 주목받고 있다.

그런데 다른 나라였어도 파우치 소장, 와이즈만 교수, 칼라코 수석 부사장이 나올 수 있었을까.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만 8명을 배출한 프랑스의 대표 면역학 연구기관인 파스퇴르연구소가 최근 코로나 백신 후보물질 개발에 실패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미국의 시스템은 도대체 뭘까, 상상해본다. 간접 경험으로 유추해보면 이방인과 과학에 대한 포용이 아닐까하고 우선 떠올려 보게 된다.

▲ 한의사 홍무석

[홍무석 한의사]
원광대학교 한의과 대학 졸업
로담한의원 강남점 대표원장
대한한방피부 미용학과 정회원
대한약침학회 정회원
대한통증제형학회 정회원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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