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오는 10일 재개봉되는 ‘이다’(파벨 포리코브스키 감독, 2013)는 지극히 국지적인 개인사를 통해 폴란드의 역사와 그 안에 녹아있는 유대인들의 큰 고통을 웅변하는 미니멀리즘의 심미주의적 모노톤 미스터리다. 예비 수녀 안나는 가난, 순결, 순종을 맹세하는 서원식을 앞두고 원장의 부름을 받는다.

천애고아로 알고 자란 그녀에게 이모가 있단다. 이모 완다는 판사로서 술, 담배, 자유분방한 성생활을 즐긴다. 안나는 완다에게 자신의 본명이 이다고 유대인이라는 얘기를 듣는다. 두 사람은 이다 부모가 묻힌 곳을 찾아 시골의 한 집을 방문한다. 그곳은 사실 이다의 조부모의 집이자 엄마의 고향집.

완다는 현재 그 집의 주인에게 이다 부모 무덤의 위치를 다그치지만 그는 모른 체한다. 둘은 히치하이킹하는 알토 색소폰 연주자 리사를 태워준 뒤 그날 저녁 그가 속한 밴드의 공연을 관람한다. 수소문 끝에 완다는 집 주인의 아버지의 소재를 알아내고 집 주인으로부터 무덤 위치를 확인하는데.

완다는 “난 창녀, 넌 성녀”라고 이다에게 말한다. 한때 잘나가는 주 법원 판사였다던 그녀는 현재 자유분방한 삶을 산다. 어찌 보면 그녀는 이다보다 더 큰 상처를 안고 있다. 이다는 갓난아이 때 부모가 살해당했기에 부모가 기억에 없지만 완다는 어린 아들이 ‘그들’에게 살해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선 처참한 폴란드의 근현대사 예습이 필수. 14세기부터 리투아니아와의 연합으로 동유럽 강국으로 한때 군림했던 폴란드는 그러나 17세기 중반 이후 주변 강대국들과의 다툼으로 국력이 쇠퇴하기 시작하더니 결국 양차 세계대전을 통해 유럽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보게 된다.

2차 대전 땐 특히 히틀러의 유대인 청소 때 적지 않은 폴란드인들이 나치 못지않게 유대인 학살에 앞장서는 아픈 역사를 기록했다. 그뿐만 아니라 2차 대전 이후 소련의 위성국가로서 자주성을 상실한 공산정권이 들어섬에 따라 굉장히 경직된 정치 상황 속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며 살았다.

이 작품의 배경은 폭압적인 비에루트 정권이 무너진 직후의 1962년. 폴란드엔 주류인 슬라브계를 비롯해 유럽의 다양한 민족이 뒤섞여 있다. 그중에서 유대인은 비주류다. 유대인이 가장 많은 미국에서의 위상과는 사뭇 다르다. 이다는 제가 유대인인 줄 모르고 자랐고, 타의에 의해 수녀의 길에 섰다.

완다는 이다에게 “유대인이 랍비가 아니라 수녀라니”라고 비꼬며 “신이 없다는 걸 알면 어떡할래?”라고 묻는다. 수녀가 주인공이라 종교 영화로 오해할 소지가 다분하지만 사실은 무신론적 영화라는 증거다. 완다는 신이 있었다면 유대인이 그렇게 대량학살당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다는 미모와 매력적인 빨간 머리를 소유했지만 항상 두건으로 머리를 가리고 자기 전에야 비로소 수녀복을 벗는다. 완다가 욕정을 어떻게 해결하냐고 묻자 이다는 그런 생각 없다고 단호히 자른다. 하지만 결국 이다는 완다의 드레스를 입고 하이힐을 신고 재즈에 맞춰 리사의 품에서 춤을 춘다.

술과 담배도 입에 댄다. 그녀는 예수상에 대고 “용서해 주세요. 전 아직 준비가 덜 됐어요”라고 고백하며 서원식에서 빠진다. 순결한 수녀를 꿈꿨던 이다는 리사와 잠을 잔다. 리사는 “결혼해 아이도 낳고 강아지도 기르며 평범하게 살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이다는 짐을 챙겨 리사의 품을 떠난다.

다시 단정하게 수녀복을 챙겨 입고 시골길을 걷는 이다의 정면을 핸드헬드 카메라가 따라잡는다. 과연 그녀는 수녀원으로 가는 것일까? 열린 결말이지만 결코 그렇진 않을 확률이 꽤 높다. 이제 그녀는 안다. 그동안 모든 가치관의 전부라고 여겼던 기독교나 또 유대교도 절대 진리는 아니라는 걸.

카메라는 신앙심이 깊은 이다는 왼쪽 하단에, 흔들리거나 변할 땐 오른쪽 하단에 잡는다. 마지막 핸드헬드는 한가운데 혹은 살짝 왼쪽이다. 미장센을 자제하고 공간미를 최대한 활용하는 미니멀리즘과 여백의 예술은 정말 압도적이다. 존 콜트레인 음악은 본능으로 사느냐, 신앙으로 사느냐의 은유.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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