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박병규 변호사의 법(法)이야기] 부부간에 이혼 할 수 있는 방법은, 합의 이혼과 재판상 이혼 두가지가 있습니다.

합의가 안 될 경우 재판을 통해 이혼을 할 수 있으나, 우리 법원은 원칙적으로 유책주의를 취하고 있습니다. 즉 피고의 유책성과 함께 원고의 무책성을 요건으로 하여 몇 개의 구체적 이혼원인을 제한적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민법 제840조(재판상 이혼원인) 부부의 일방은 다음 각호의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가정법원에 이혼을 청구할 수 있다.

1. 배우자에 부정한 행위가 있었을 때
2. 배우자가 악의로 다른 일방을 유기한 때
3. 배우자 또는 그 직계존속으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4. 자기의 직계존속이 배우자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5. 배우자의 생사가 3년 이상 분명하지 아니한 때
6.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

민법 역시 유책주의에 입각한 규정을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다만 위 6호의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의 해석과 관련해 파탄주의적 접근도 가능한 여지를 남겨두고 있습니다.

파탄주의란 혼인파탄이라고 하는 객관적인 사실의 유무에 의하여 이혼 여부를 결정하는 것으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라도 혼인파탄의 객관적 사실이 인정되면 이혼이 되는 것입니다.

최근 결혼한지 얼마 안되어 이혼했다가 다시 재결합 했지만, 재결합 이후 10여년간 10여 차례에 걸쳐 이혼절차를 밟는 등 갈등을 지속한 경우,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가 가능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와, 이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2007년 12월 결혼한 A와 B는 2009년 2월 협의이혼한 뒤 8일 만에 다시 혼인신고를 해 재결합했습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서로 폭언과 폭행 등으로 갈등을 겪었고, 10차례에 걸쳐 협의이혼 또는 재판상 이혼 절차를 밟기도 했습니다.

A는 혼인기간 중 아내 B를 수차례 폭행했고 상해죄로 벌금형을 선고받기도 했습니다. 이후 A는 2019년 2월 집을 나갔고, B를 상대로 이혼청구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두 사람은 이혼소송 중에도 계속 갈등을 겪었고, B는 2019년 10월 A의 자녀 면접교섭 요구를 거부하기도 했습으며, 부부관계 회복을 위한 상담 역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1심 법원은 "A와 B가 비록 상이한 기질 및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시간을 갖고 서로 상대방을 배려하고 관계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충분히 한다면 부부관계가 회복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본 후, "A가 주장하는 이혼사유는 인정할 수 없고, 설령 이혼사유가 인정되더라도, 유책배우자인 A는 원칙적으로 혼인 파탄을 사유로 이혼청구를 할 수 없다"며 원고패소 판결을 했습니다.

2심 법원은 "유책배우자는 원칙적으로 파탄을 이유로 이혼을 청구할 수 없지만, 혼인생활의 파탄에 대한 유책성이 이혼청구를 배척해야 할 정도로 남아 있지 아니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허용할 수 있다"고 전제한 후,

"A에게 혼인관계 파탄에 대한 책임이 있다"면서도 "두 사람은 이미 10여 차례가 넘게 이혼 관련 절차를 진행하는 등 부부간 문제를 상호 원만하게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형식적인 혼인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둘 사이의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새로운 문제의 원인이 되거나 두 사람 모두에게 크나큰 고통일 될 수 밖에 없다"고 보아,

"둘 사이의 분쟁이 미성년자인 자녀들의 정서에 약영향을 주는 등 자녀들의 복리도 심각하게 저해하고 있다. A의 유책 정도가 B보다 월등하다고도 볼 수 없으므로, 이를 종합하면 A의 이혼청구를 허용해도 혼인과 가족제도를 형해화할 우려가 없다"고 판단하여 원고승소 판결을 했습니다.

대법원 특별3부 역시 원심을 받아들여 원고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습니다(2020므11818).

대법원도 "B가 혼인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혼인관계 지속이 미성년 자녀의 복지를 해한다고 볼 만한 사정까지 존재한다, A의 이혼청구를 허용한 원심은 타당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원심과 대법원은 결국 A와 B의 혼인관계 지속은 무의미하고 나아가 혼인관계의 계속이 미성년자 자녀의 복지를 해하는 상황이라고 판단하여, 비록 A가 유책배우자 이지만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예외적으로 허용할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원심과 대법원의 태도는 2015년 9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2013므568)을 근거로 한 것이라 볼 수 있는데, 대법원은 당시 "유책배우자는 원칙적으로 이혼을 청구할 수 없으나, 책임이 반드시 이혼청구를 배척해야 할 정도로 남아 있지 않은 경우에는 이혼청구가 허용될 수 있다.

상대방 배우자도 혼인을 계속할 의사가 없고, 유책배우자의 책임을 상쇄할 정도로 상대방 배우자 및 자녀에 대한 보호와 배려가 이루어진 경우, 세월의 경과에 따라 혼인파탄 당시 현저했던 유책배우자의 유책성과 상대방 배우자가 받은 정신적 고통이 점차 약화되어 쌍방의 책임의 경중을 엄밀히 따지는 것이 더 이상 무의미할 정도가 된 경우 등은 예외적으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허용할 수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법원은 원칙적으로 유책주의를 취하나, 사안에 따라 파탄주의적 태도도 취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사안이었습니다.

▲ 박병규 이로(박병규&Partners) 대표변호사

[박병규 변호사]
서울대학교 졸업
제47회 사법시험 합격, 제37기 사법연수원 수료
굿옥션 고문변호사
현대해상화재보험 고문변호사
대한자산관리실무학회 부회장
대한행정사협회 고문변호사
서울법률학원 대표
현) 법무법인 이로(박병규&Partners) 대표변호사, 변리사, 세무사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저서 : 채권실무총론(상,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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