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기예르모 델 토로가 제작한 ‘오퍼나지: 비밀의 계단’(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 2007)은 델 토로 특유의 다크 판타지가 짙은 여운을 준다. 의사인 남편 카를로스, 에이즈에 걸린 7살 아들 시몬과 함께 사는 로라는 자신이 자랐지만 폐쇄된 보육원을 매수해 이사한 뒤 장애 아동 보호소로 꾸민다.

로라는 어릴 적 기억을 찾아 지금은 기능을 잃어버린 등대 밑 해식동굴로 시몬을 데려간다. 시몬은 동굴 안에서 누구와 대화를 나눈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조개껍질을 하나씩 떨어뜨린다. 동굴 안에서 사귄 새 친구가 집을 찾아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며. 장애아 상담사라며 노파 베니그냐가 방문한다.

시몬을 치료해 주겠다는 것. 이상한 낌새를 느낀 로라는 황급히 그녀를 쫓아낸다. 그날 밤 밖에서 이상한 소리를 들은 로라는 창고에 들어갔다 베니그냐를 보고 경악한다. 베니그냐는 도망간다. 시몬은 친구에게 들었다며 자신이 입양됐고, 얼마 못 살 것이라며 로라에게 강하게 반항한다.

로라는 장애 아동과 후원자들을 초청해 파티를 열고, 시몬을 파티장에 데려가려 하지만 시몬은 토마스가 사는 비밀의 집을 먼저 보자며 거부한다. 로라가 파티에 신경 쓰는 사이 감쪽같이 시몬이 사라지고 경찰 심리학자 필라르가 실종사건을 맡는다. 그렇게 6개월이 흐르고 로라는 거리에서 베니그냐를 발견한다.

하지만 그녀는 눈앞에서 차에 치여 죽고, 필라르는 그녀의 정체를 알아낸다. 로라가 어렸을 때 그 보육원에서 근무했던 것. 그녀는 얼굴이 기형인 채로 태어난 아들 토마스에게 가면을 씌운 채 숨겨놓고 키웠다. 하지만 보육원의 로라의 다섯 친구들이 그의 존재를 알아채고 가면을 벗긴 채 동굴에 가뒀는데 익사한 것.

베니그냐는 원한에 사무쳐 다섯 친구들을 살해했다. 죽은 다섯 친구들의 영혼이 집에 있고, 그들이 시몬을 데려갔다고 믿는 로라는 심령술사를 불러 이를 확인하지만 필라르는 사기라고 외면한다. 카를로스는 지쳐 그곳을 떠나자고 하지만 로라는 먼저 가라며 자신에게 시간을 더 달라고 하는데.

과연 신과 유령은 존재하는가? 델 토로의 영화는 우리가 알고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보편적인 존재자와는 다른 종교적, 주술적, 신비주의적 존재자와 유물론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실재 여부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데 이 작품 역시 그렇다. 시몬은 자신에게만 보이는 친구를 주장하지만 로라는 상상 속의 친구라고 무시한다.

하지만 시몬이 사라진 뒤 여러 가지 경험을 거쳐 심령술사의 확신에 찬 유령의 확인에 의해 비로소 다섯 친구와 토마스가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보육원 안에 머물고 있음을 믿는다. 카를로스는 떠나면서 자신의 성 안토니오 목걸이를 로라에게 준다. 그는 신을 안 믿지만 로라는 믿기 때문이다.

시몬이 진짜 유령을 보는 능력이 있는지, 유령이 실재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자신의 감각과 믿음대로 사는 게 옳다고 믿고 있기에 그의 삶의 방식은 그게 합리적인 것이다. 영화는 대놓고 ‘무의식 속에 삶과 죽음이 공존한다’며 융을 들먹인다. 시몬은 전 세대의 영혼들과 집단무의식을 공유했지만 다른 많은 사람들은 개인무의식에 머물 따름이었다.

과연 다섯 영혼이, 혹은 토마스의 영혼이 시몬을 데려갔을까? 그 해답은 마지막 시퀀스에 있다. 홀로 옛 친구들을 떠나 입양됨으로써 개인무의식을 지니게 돼 그 영혼들과 대극적 위치에 섰던 그녀는 사라진 시몬을 찾는 과정을 통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함으로써 친구들의 집단무의식을 공유하게 된다.

웬디는 실재계에서 살다 늙지만 그녀의 딸은 피터팬이 네버랜드로 데려가 영원한 젊음을 얻게 된다.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모임에 참가한 로라는 죽은 자식이 사무치게 그리우면 눈에 보인다는 설명을 듣는다. 그때 그 형상은 시간이 흐른 만큼 변할까? 그렇지 않다. 사망 당시의 모습일 것이다.

모든 사람은 젊음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 죽는 걸 반길 리 없다. ‘피터팬’을 좋아하는 시몬은 “난 어른이 안 될 것”이라고 말한다. 얼마 못 살 병에 걸린 걸 알기 때문인데 이미 집단무의식을 지닌 그는 그 운명을 긍정하는 것이다. 이토록 비극으로 점철되던 이 작품은 후반에 가면 비극마저 긍정으로 승화시키는 매력을 지녔다.

유대인이었지만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빈틈을 발견한 스피노자는 신과 자연을 동일시했다. 그의 존재 체계는 실체(본래적 존재), 속성, 양태(현존재)로 구성된다. 그리고 자연과 신을 실체로 본다. 그의 자연은 능산적 자연(자연 그 자체)과 소산적 자연(사물)으로 나뉜다. 능산적 자연은 베르그송의 ‘생의 비약’ 혹은 다윈의 ‘창조적 진화’다.

이 영화는 그와 유사하다. 신과 유령이 있다면 그조차 자연의 전부이거나 일부다.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의 이유는 물론 신과 유령의 존재의 이유를 궁금해한다. 그런데 그 이유와 이치를 물으면 물을수록 인식의 현기증만 울렁거릴 뿐이다. 그래서 감독은 마지막에 오랫동안 꺼져있던 등대에 환하게 불을 밝힌다.

과장된 격정이나 무차별한 광기로 휩싸인 세상에서 필요한 건 차분한 이성이란 안정제다. 로라는 시몬에게 “비밀인데 사실 등대는 안 망가졌다”고 속삭이고, 말미에 증명된다. 그녀의 오성과 사유가 깨어났다는 환유. 카를로스의 평안한 표정이 그 증거. 요즘 같이 아이들에 대한 무참한 범죄가 횡행하는 시대에 필요한 영화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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