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한의사 홍무석의 일사일침(一事一針)] “내가 지난날, 어두운 단칸방에서 본 한발 속의 고목(古木), 그러나 지금의 나에게 웬일인지 그게 고목이 아니라 나목(裸木)이었다. 그것은 비슷하면서도 아주 달랐다.”

10년 전 작고하신 박완서 선생님이 1970년 나이 마흔 살에 <여성동아> 여류 장편소설 공모에 응모해 당선된 첫 작품의 제목인 ‘나목’은 겨울나무에 대한 편견을 고쳐주는 계기도 됐다. 더 크지 않는 고목과 달리 나목은 새 봄에 다시 태어나는 희망을 품고 있어서다.

잎이 지고 가지만 앙상히 남은 나목은 대지에 온기가 올라오면 색채로 화답한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면서 동백 산수유 매화 목련 개나리 진달래 벚꽃 유채꽃 철쭉 순으로 제 빛깔을 내고 나면 온 산은 초록으로 물든다. 길고 따뜻해진 햇살이 나목의 피부에 자극을 준 것이다.

자연이 온도에 반응하듯 사람의 피부도 계절에 따라 변화한다. 피부를 한의학에서는 살갗을 다스린다는 의미로 ‘주리(腠理)’라고 한다. 외부 온도와 소통을 담당하는 곳으로 볼 수 있다. 온도에 따라 몸 안의 진액을 내보내고, 반대로 외부의 나쁜 기운 침입을 막아준다.​

주리가 열리면 분비물이 나가고, 주리가 닫히면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아주는 데 겨울이면 닫히고 봄이 되면 열린다. 통로가 넓어져야 분비물이 나오기 때문에 봄이 찾아와 기온이 올라가면 피부의 모공(털구멍)도 커지게 된다.

계절 변화에 따라 피부가 변한다는 것은 적응의 의지라고 볼 수 있다. 식물도 건드리면 분비물을 내보내듯 피부도 열 자극에 반응하며 보호액의 일종인 기름(분비물)을 쏟아낸다. 얼굴의 수분 증발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 사진 출처=픽사베이

반면, 여름철에 심한 운동을 하면 얼굴에 열이 나서 기름이 많아지게 되는데 잘 씻지 않으면 모공이 막혀 여드름이 생기는 원인이 된다. 한의학에서는 얼굴에 나는 여드름을 열(火)과 관련 있다고 설명하기 때문에 한의사들은 “얼굴에 열나게 하는 것을 피하라”는 권고를 하게 된다.

얼굴의 열은 외부 온도 때문에 생기는 것만은 아니다. 심리적인 요인도 있고 장기(臟器)가 영향을 주기도 한다. 옛날에 이성(異性)을 좋아하면 얼굴에 여드름이 생긴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나름 일리가 있는 말이다. 누굴 뜨겁게 좋아하면 얼굴이 발그레해지면서 열이 생기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면 얼굴에 뾰루지가 더 많이 생긴다는 사람도 있다. 역시 알코올 기운 때문에 얼굴에 열이 나면서 기름 분비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한의학에서는 얼굴에 열을 떨어뜨리거나 분산시키는 약을 처방해주게 된다.

요즘에는 잠을 못자고 스트레스를 받아도 여드름이 올라온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허열(虛熱)이 뜨기 때문이다. 에너지 등이 부족해져서 나는 열이다. 체형 체격 등 개인 조건을 판단해서 다른 처방을 받아야 하는 게 바람직하다.

손과 발은 찬데 얼굴에 열이 발생해 피부 트러블이 생기기도 한다. 장(腸)에 정체를 의심해 볼 수 있다. 마치 물이 흐르는 고무호스의 중간을 꽉 밟으면 역류하듯이 복부 정체 때문에 심장에서 박동한 피가 팔다리로 뻗어 나가지 못해 얼굴 쪽으로 몰리면서 열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렇듯 피부는 신체의 다른 어떤 기관보다 변화에 민감하다. 외부 온도뿐만 아니라 속상한 일이 생겨도 얼굴에 표시가 날 정도다. 한의학에서는 음양(陰陽)의 치우침 없이 조화를 이룬 사람은 음양화평지인(陰陽和平之人)이라고 하는데, 단순히 겉 피부만 아니라 오장육부가 같이 조화로운 피부 음양화평지인이 되기를 기원한다.

▲ 한의사 홍무석

[홍무석 한의사]
원광대학교 한의과 대학 졸업
로담한의원 강남점 대표원장
대한한방피부 미용학과 정회원
대한약침학회 정회원
대한통증제형학회 정회원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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