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지금까지의 배트맨 영화 중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에 최고 점수를 줘도 반박할 관객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클로버필드’,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 ‘혹성탈출: 종의 전쟁’ 등을 연출한 맷 리브스의 ‘더 배트맨’을 그 옆에 슬쩍 세워도 역시 불쾌해할 관객도 없을 듯하다.

브루스 웨인(로버트 패틴슨)은 20년 전에 시장 선거에 나섰던 아버지와 어머니를 노상강도에게 잃은 뒤 오로지 복수심을 키우며 살아왔다. 이제 30대 초중반쯤 된 그는 고든 경위(제프리 라이트)와 도움을 주고받으며 2년째 자경단으로 활동해 오고 있다. 시장 선거를 앞두고 현역 시장이 살해당한다.

스스로 리들러(폴 다노)라고 이름을 밝힌 범인은 배트맨에게 편지를 남겨 놓았다. 이후 경찰청장, 유력 검사 등을 연쇄적으로 죽이며 역시 배트맨에게 편지를 남긴다. 웨인은 이 연쇄 살인을 조사하기 위해 도시를 움직일 만큼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마피아 두목 팔코네(존 터투로)의 클럽으로 간다.

거기서 팔코네의 오른팔 펭귄(콜린 패럴)과 ‘캣 우먼’ 셀리나(조 크라비츠)를 알게 된다. 또 팔코네로부터 부모의 원수가 그의 라이벌인 멀로니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도 듣는다. 사건을 따라갈수록 셀리나와 부딪치는 횟수가 늘고 두 사람 사이에는 묘한 기류가 흐르면서 웨인은 놀라운 진실에 부닥치는데.

DC는 ‘Detective Comics’의 이니셜이다. 이 작품은 기존의 마블이나 DC의 슈퍼 히어로 블록버스터와는 전혀 다르게 아직은 다소 어설픈 신참 탐정을 주인공으로 한 탐정물의 형식에 철저한 누아르 분위기로 펼쳐진다. ‘어벤져스’나 ‘저스티스 리그’를 기대하지 말 것. 게다가 러닝 타임이 무려 176분.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 듯. 지나치게 상업적인 영화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무거운 누아르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열광할 작품이다. 배경은 내내 어둡고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이는 배트맨의 고뇌와 고통의 메타포. 그는 스스로 ‘복수’라고 표현한다. 시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복수 때문에 밤에 다닌다.

부모부터 자신까지 섬겨 온 알프레드(앤디 서키스)의 충고에 “당신은 내 아버지가 아니다.”라고 쏘아붙인다. 현재 정신 상태가 불안하다는 의미. 그의 복장과 장비, 배트카까지도 ‘다크나이트’와 비교하면 많이 엉성하다. 이제 시작한 지 2년밖에 안 되었기 때문에 무기도, 마음가짐도 어설프기 짝이 없다.

배트맨과 브루스 웨인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리고 알게 된 아버지에 대한 진실은 그를 더욱 혼돈에 빠뜨린다. 리들러는 시장, 경찰, 검찰 등을 잔인하게 살해하면서 사실은 그들이 범죄자보다 더 나쁜 양면의 범죄자이기 때문이라고 진실을 알린다. 명분이 확실하다는 주장이다.

브루스의 아버지는 비교적 정직하게 살았지만 출세를 위해 부당한 행위에 연루되었다. 특히 팔코네와 엮인 게 가장 큰 실수. 이제 브루스는 누가 아버지를 죽였는지를 파헤칠 게 아니라 아버지가 건전한 사업가였는지, 아니면 두 얼굴을 가진 위선자였는지를 따져 봐야 한다. 더욱더 복잡해지는 것.

배트맨뿐만 아니라 모든 복면 자경단이 가진 숙제는 정체성과 이항대립이다. 다수의 사람들은 이분법으로 개념과 의식을 정리하려는 경향이 있다. 남자 대 여자, 선자 대 악한, 냉온, 음양, 동서양 등이다. 그리고 거기에 차등의 가치를 부여한다. 여자보다 남자가, 동양보다 서양이 우월하다는 식으로.

더 나아가 아예 하나는 옳고 하나는 아주 나쁘다고 명토 박기도 한다. ‘이렇게 하는 건 옳은 것이고, 저렇게 행동하는 것은 그렇지 못하다.’는 식. 아직도 선진국에서조차 적지 않은 사람들과 종교인들이 소수 성애자를 변태로 치부하는 게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들의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면 이단이다.

동성애와 자위행위는 보노보 원숭이도 한다. 이 작품은 다분히 자크 데리다를 연상케 한다. 그는 이분법을 해체한 해체주의자로 유명하다. 구조주의도 깨뜨렸다. 리들러가 잔인한 연쇄 살인마이고 행위 자체는 절대 해서는 안 될 잔인한 불법이지만 그의 의도와 주장에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기는 하다.

고담 시민을 지키고, 그렇기 위해서는 가장 정직하고 청렴해야 할 공무원들이 사실은 마피아와 동업을 하거나 그 밑에서 ‘투 잡’을 하며 사리사욕을 챙기고 있다. 리들러는 마피아보다 그런 비리 공직자, 권력자들이 더 나쁘다고 여기고 있다. 프로이트는 우리 정신세계를 이드, 에고, 슈퍼-에고로 나누었다.

이드는 본능이고, 에고는 우리가 흔히 자아라고 하는 이성적 영역이다. 초자아는 양심의 가책으로 무장한 도덕적이고 절제하는 위치이다. 에릭슨은 자아 정체성을 4가지로 나누었다. 첫 번째는 이 사회 속에서 가진 다양한 지위와 특성들을 통합한 의식으로의 자아 정체성이다. ‘무엇으로서의 나’이다.

두 번째는 과거-현재-미래를 연속하는 의식의, 세 번째는 즉자(주체적 자아)와 대자(객체적 자아) 사이의 조화 의식의, 네 번째는 실존 의식의 자아 정체성이다. 브루스 웨인, 혹은 박쥐 가면을 쓴 2년 차 자경 탐정의 내면은 아직 에고에도 도달하지 못했다가 아이러니컬하게도 리들러 덕에 발전한다.

이제 에고가 초자아와 이드와의 중재를 시작한 것이다. 배트맨은 이미 웨인 주식회사의 주인 자리에는 관심을 끊었다. 첫 자아 정체성의 초월. 아버지와 팔코네의 진실을 마주함으로써 둘째도 넘어섰다. 이제 대자로서 즉자를 바라볼 단계이다. 그래서 마지막에 화면이 밝아지며 희망을 말한다. 상영 중.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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