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의준 변호사
채의준 변호사

[미디어파인 시사칼럼]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직원은 퇴사해서 파일을 남긴다. 새해 초엔 다른 곳에서 새롭게 출발하고자 퇴사나 이직을 준비하는 이들이 많은데, 인수인계를 준비하다 보면 화가 나거나 억울한 일도 생기기 마련. 깔끔한 퇴사와 이직이란 어떻게 하는 것일까.

온라인 커뮤니티를 보면 종종 퇴사할 때 사이다를 선사하겠다며 각종 업무 파일을 지우고 나갔다는 일화를 볼 수 있다. 만약 고의로 회사의 재산에 해당하는 서류나 작업물을 삭제한다면 어떻게 될까? 경영과 관련된 중요 문서 혹은 사업계획서, 거래처 리스트, 디자인 작업 파일 등 인수인계와 관련된 서류를 지우게 될 경우 '전자기록손괴죄'에 해당해 3년 이하 징역 또는 7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여기서 회사 운영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주요 문서들을 삭제했다면 형법상 ‘업무방해죄’에 해당된다. 업무방해죄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여기에 민법상 손해배상책임까지 지게 된다면 회사가 입은 손해액과 파일 복구를 위해 취한 조치, 추가적인 피해 등 보상해야 할 금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다.

퇴사 후 영업비밀을 누설하는 경우에도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는 '부정경쟁방지법'에 해당되는데 타인의 상표, 상호를 부정 사용하거나 혹은 영업비밀을 침해하는 행위를 통해 영업비밀 보유자에게 손해를 입힐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있다.

현행 법률에서는 영업비밀의 취득‧사용‧누설만 침해행위로 규정하고 있으나 최근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의원이 ‘부정경쟁방지법 개정안’ 2건을 대표 발의하면서 영업비밀이 저장된 컴퓨터나 정보 시스템을 공격해 영업비밀을 훼손하거나 삭제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이 가능하도록 했다. 회사뿐 아니라 관련 업체들까지 중대한 경영상의 위기에 처할 수 있는 사안이므로 그에 따른 처벌이 매우 엄중하게 적용되고 있으며 상황에 따라 업무상배임죄에도 해당되는 것이다.

더 심각한 사안으로는 흔히 말하는 '산업스파이', 즉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이 있다. 산업스파이는 회사의 산업 기술을 내부적으로 입수하여 유출하는 등 해당 기업에 막대한 피해를 끼치는 행위를 전문으로 하는 이들로, 무형의 정보를 유출하기 때문에 반도체, 배터리 등 핵심 기술 분야를 집중적으로 노리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파일을 포함한 모든 인수인계를 마치고 포맷했다면 처벌 대상일까? 분명히 인수인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퇴사 후 파일이 없다는 등의 연락을 받는 케이스가 있다. 하지만 전자기록손괴죄는 고의범이기 때문에 인수인계 시 파일을 인계하였다는 증거가 확실하고, 고의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게 증명되면 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다.

많은 직장인이 애로사항으로 꼽는 '동종업계 이직 제한' 조항. 하지만 퇴사 후 동종업계에 취업했다고 해서 무조건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며, 손해배상청구가 가능한 것도 아니다. 회사의 기밀과 밀접한 영업비밀 관련 직책이 아니었다면 '영업비밀침해'가 성립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전 회사의 영업비밀을 침해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 이상 단순 이직만으로 책임을 묻기는 힘들다. 법원의 태도 역시 전직 금지 등의 조치는 헌법상 직업선택의 자유를 직접적으로 제한하고, 퇴직 근로자의 생계와도 연관이 있기 때문에 사용자와 근로자 간 전직 금지 약정에 관해선 엄격하게 요건을 판단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만약 전 회사에서 내용증명을 보냈을 때 반박할 내용이나 증거가 있다면 이를 토대로 반박 내용증명을 보내 대책을 마련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우선 회사와 상의한 퇴사일정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고, 사직서 등을 통해 퇴직 의사를 명확히 밝혀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퇴사를 앞두고 감정이 좋지않더라도 정해진 날까지는 최선을 다해 본인의 업무를 수행하고, 추후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꼼꼼하게 인수인계를 진행하는 것을 추천한다. 회사에서 진행한 업무나 파일은 법적으로 개인의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에, 되도록 삭제하거나 포맷하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

그러나 사직의사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사직을 수리하지 않는다면, 사직서를 제출한 날로부터 1개월이 지난 때에 효력이 발생하니 이를 참고하여 퇴사를 진행하는 것이 좋다.

인터넷에 떠도는 일명 ’사이다 퇴사 경험담’을 보며 ‘나도 나중에 퇴사할 때 다 포맷시키고 나와야지’, ‘어차피 내가 만든 결과물인데 내 마음대로 해도 되겠지’라고 한 번쯤 생각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시원한 사이다를 마시는 것은 본인이 아니라 회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위에서 언급된 행위들은 고소감이 될 수 있는 행위고, 업무에 사용되는 문서는 엄연히 회사 소유이기 때문에 이를 고의로 유출하거나 임의로 삭제하는 경우 해당 회사에게 정신적, 금전적으로 큰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

만약 회사 입장에서 퇴사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상황에 놓여 있거나, 퇴사자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2차 피해를 주는 가해자가 되어 있다면 정확한 사실관계 확인 및 증거 확보를 위해 형사 전문변호사에게 자문을 얻어 현명하게 상황을 헤쳐 나가길 바란다.(법무법인 태하 채의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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