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이하 픽사베이.
출처=이하 픽사베이.

[미디어파인=원영빈의 리딩이야기] 10여 년 전 우리 아이와 동네 아이 한 명을 데리고 영어 책 읽기를 시작할 때는 다독(Extensive Reading)이고 뭐고 눈으로 책을 보면서 테이프에서 나오는 소리를 따라가면 무조건 영어가 느는 줄 알던 시절이 있었다. 다독의 진정한 의미도 제대로 몰랐던 나에게 '13세 소녀가 영어 책을 좋아하여 늘 영어 소설책을 즐겨 읽어 토익 만점을 받았다.'라는 신문 기사는 그저 책만 많이 읽으면 영어를 저절로 잘하게 된다는 뜻으로 들렸다.

그래서 내용이고 뭐고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가 빨리 해리 포터 시리즈를 읽게 할까?'라는 욕심에 '해리 포터' 한 권을 다 들으면 당시 유행하던 로봇을 사준다고 꾀어 한 문장짜리도 제대로 못 읽는 아이에게 두꺼운 '해리 포터' 시리즈를 쥐여 주며 음원을 들으면서 눈으로 따라 읽게 한 용감하고도 참으로 무식한 엄마이자 선생님이었다. 그 때문인지 전혀 알아듣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영어 책 음원 따라 읽기에 진절머리를 냈던 우리 아이는 거의 일 년 가까이 책 읽기를 거부하며 나의 속을 애태웠다.

하지만 같이 책 읽기를 시작했던 동네 아이에게는 선생님으로서 '천천히' '아이의 능력에 맞게'를 강조하며 웃으면서 칭찬과 격려를 반복하면서 책 읽기를 진행하였다. 내 아이가 아닌 나의 '학생'이었기에 욕심을 내려놓고 지도할 수 있었다. 그 때문인지 그 아이는 빠르게 실력을 쌓아 갔고 외국인과 말하는 데에도 거침이 없었으며 문법을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영어로 글쓰기도 가능해져 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우리 아이의 영어 교육에 대해 더 조급해져 우리 아이에게는 더 억지로 영어 책 읽기를 시킬 수밖에 없었던 엄마로 변해갔다.

정확히 말하면 10여 년 전의 나의 행동은 정말 잘못된, 바보 같은 행동이었다. 그 당시의 나는 우리 아이와 내가 지도했던 학생 아이의 '다름'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아이보다 수준 높은 책을 많이 읽게만 요구하였다.

내가 지도했던 학생이 영어 실력이 빠르게 발전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 아이와의 '다름'은 첫째, 그 아이의 엄마는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한글 동화책을 가까이하게 해 주어 그 집에 가면 항상 식탁 주변과 거실이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으로 가득 차 있던 것이었다. 집에는 TV도 없어서 그 아이는 항상 집에서 책과 함께 노는 아이였기에 ABCD를 몰라도 영어 책만 주어도 음원이 있으니 재미있게 책의 내용을 유추하면서 읽을 수 있는 책 읽기 습관이 잡힌 아이였다. 그러니 영어 책 읽기로 어렵지 않게 실력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와는 반대로 우리 아이의 엄마는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일을 한다는 핑계로 한글 책 읽기의 중요성을 간과한 채 신문 기사의 내용대로 영어 책을 무작정 많이, 게다가 얼토당토않게 높은 수준의 영어 책을 계속 읽게만 시켰으니 한글 책 읽기의 재미를 못 느끼고 습관도 잡혀 있지 않았던 우리 아이에게 영어 책 읽기가 재미도 없고 효과도 적었던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현재 군 복무 중인 아들에게는 이번 휴가 때 그때 엄마의 행동에 대해 미안했다고 사과했으며 아들은 나이스하게 웃으며 무식하지만 용감했던 엄마를 용서해 주었다.)

그렇다면 그때 나는 어떻게 그 둘을 지도해야 했을까? 그러기 위해서 그 이후로 10여 년의 시간과 경험이 더 필요했지만 그로 인해 아이의 유형에 따라 독서의 지도 방법을 깨우치게 되었고, 아이들은 영어 독서지만 즐겁게 책 읽기를 통한 습득(노출)이 가능하게 되었다.

제2 외국어 학습론의 대가 Stephen Krashen은 “Extensive Reading is not the best wasy. It' the only way.”(다독은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니라 유일한 방법이다.)라며 다독이 충분한 어휘력 및 수준 높은 문법 능력, 그리고 철자까지 잘 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하였다. 나도 전적으로 동감하는 말이지만 내가 그 동안 지도해 본 아이들과는 차이가 있었다.

크라센의 이론에 맞는 아이들은 위에서 언급한 동네 아이처럼 어려서부터 한글 책을 많이 읽었거나, 태어날 때부터 어휘 감각이 있거나, 책 읽기를 좋아하는 소수의 아이들뿐이었다. 그 아이들은 한글 책을 많이 읽어 습득되어 이해되는 어휘의 수가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훨씬 많았다. 또한 한글 책 읽기로 습득된 유추 능력은 그림만 보아도 그림에 따라 음성만 들어도 그 스토리의 전반을 이해하는 듯 처음 보는 영어 책도 재미있게 읽는 등 크라센의 이론과 일치하였다. 이런 그룹을 다독형 아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실제로 다독형 아이의 비율보다 조금 더 많은 그룹이 바로 정독형 아이 그룹이다. 이 아이들은 일명 '천천히 가는 아이들'이다. 다독으로 인해 유추 능력을 형성하기까지의 시간이 오래 걸린다. 다행히도 여유있는 엄마들은 모국어로 된 책을 읽히면서 영어 책 읽기도 같이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려 엄마가 보기에는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아이의 경우는 다독을 메인으로 하지 않고 다소 학습적인 방법일 수 있으나 정독(Intensive Reading)으로 반복적인 습득-암기에 가까운-에 집중하면서 다독과 병행해야 한다. 문장 만들기의 연결 고리인 문법도 여러 번-수도 없이-반복해 주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소수의 다독형, 정독형을 제외한 나머지 부류의 아이들을 다독과 정독을 같이 하면 효과적인 아이들 일명 다·정형 아이라고 부른다. 이 그룹의 아이들이 바로 일반적으로 우리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보통의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은 양적으로 많이 읽는 다독을 하면서 어휘, 문맥, 문법까지도 정확하게 이해하여 말과 글로 표현이 가능하게 끔 하는 정독을 병행하는 균형 잡힌 독서를 하게 되는 효과적인 그룹이다.

추천키워드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