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이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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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원영빈의 리딩 이야기] 지난해 수능 바로 다음날이었다. 다음날에 있을 강연 준비로 한창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즈음 한 앳된 아가씨 한 명이 두 손엔 커피를 들고 문을 열고 들어서며 "선생님!" 하며 와락 안기는데 보니 6년 전 졸업한 제자 채진이었다.

“샘, 저 이번 영어 수능 하나만 틀렸어요. 시험 시간만 잘 체크했어도 다 맞는 건데.”

아쉬운 듯 말하는 그녀의 미소엔 원하는 점수를 얻은 만족감이 그득했다. 수능 영어 1등급이라는 선물을 가지고 수능이 끝나자마자 옛 선생님을 찾아온 그녀가 정말 고마워 결국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도대체 비결이 뭐였니? 어떻게 한 개 밖에 안 틀릴 수가 있냐고?"

“샘, 저 초등 때 키리에서 영어 책 읽은 게 정말 행운인 거 같아요. 책을 많이 읽은 덕분에 문맥을 보고 바로 파악하는 능력이 생겨서 빈칸 추론 같은 어려운 문제도 저는 별로 어렵지 않았어요.”

그녀가 또 한번 책 읽기의 힘을 증명해 주었다. 사실 수능 영어는 한글로 해석해 놓아도 풀기 어려운 문제들이 있다. 영어 선생님들도 배경 지식이나 문맥을 자연스럽게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없이는 풀기가 쉽지 않은데 책 읽기는 그런 문제를 자연스럽게 해결해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이다.

그녀는 초등학생 때 이미 5000여권의 영어 책을 읽었다. 요즘에는 영어 책 읽기를 더 일찍 시작해서 초등학교 졸업 전에 8~9000권의 영어 책을 읽는 아이들도 있다. 물론 아이들이 어떤 레벨의 책을 읽느냐에 따라서 혹은 한 권의 책을 몇 번씩 반복해서 읽느냐에 따라 측정할 수 있는 권 수는 크게 달라지고, 읽은 권 수가 아이의 영어⓵ 실력과 비례한다고도 말할 수 없으나 의미상의 숫자 5000권은 아이들에게 실력 그 이상의 무엇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영어 책 읽기 5000권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먼저 칭찬과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짧은 책이건 긴 책이건 초등 시절 이렇게 많은 권 수의 책을 읽었다는 것은 매일 평균 적어도 30분, 40분 이상의 영어 책을 읽고 들었다는 것인데 이쯤 되면 책 읽기 습관이 잡혀 지구력과 집중력이 향상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미 많은 시간 영어에 노출이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외국어 학습 영역에서 보자면 문맥 속에서 단어의 뜻을 유추할 수 있는 능력과 추론 그리고 문장을 읽고 스토리를 이해하는 능력 등이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책을 읽는 사이에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학습하고 탐구할 수 있는 능력이 동반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학업 역량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신체의 근육이 생기면 기초 대사량이 늘어나는 것처럼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을 스스로 찾아 끈기 있게 해결하는 자세는 모든 학습자의 기본 태도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외국어 습득 그 이상의 의미인 5000권 읽기, 어떻게 해야 할까? 한글 책도 5000권, 아니 500권 읽기도 힘든데 과연 영어 책 읽기가 가능할까? 무조건 많이만 읽으면 좋을까? 주의해야 할 점은 없을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효과적인 다독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꼭 필요한 사항들을 모아 보았다.

1)자신의 리딩 레벨보다 한두 단계 아래의 책 읽기

“선생님 저희 아이가 더 높은 단계의 책을 읽게 도와주세요. 외국에서 그 정도 책은 무난하게 읽었거든요.”

책 읽기를 시작하는 아이들 중에는 영어 유치원을 나왔다거나 외국에서 4~5년 있다가 한국에 온 아이들, 또는 외국인 학교를 다니는 친구들의 부모님들 중 대부분은 단계가 조금 높은 책부터 읽기를 희망한다. 듣기며 말하기며 영어를 쓰는 데 아무 문제가 없는 아이들이라 나도 처음에는 제일 높은 단계의 책을 주었다.

이해가 되냐고 물으면 당연하다는 듯 모두 이해가 된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영어를 잘한다 하더라도 책 읽기 실력과는 별개라는 것을 나중에야 깨닫게 되었다. 아이의 단계보다 수준이 높은 책은 읽기는 하나 책이 재미가 없거나 책장이 넘어가는 속도가 한없이 더디다. 왜 그럴까?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초등 아이에게 인문 소설이나 신문 사설을 읽으라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런 아이들에게는 -엄마의 눈에는 너무 쉬워 보일 수 있으나-한두 단계 아래의 책을 권해 주니 아이들의 눈빛이 달라지고 책에 몰입도가 훨씬 높아지며 책이 재미있다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는다. 한국말을 잘 한다고 한글 책을 무조건 잘 이해하며 읽는 것은 아닌 것처럼 영어 책도 자신이 재미있는 분야부터 혹은 만만한 단계부터 읽는 습관을 들여 책과 친해지는 연습부터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너무 높은 단계의 책을 읽으며 책 읽기가 또 다른 학습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또한 자신의 실력보다 한두 단계 아래의 책을 읽는 것부터 시작하여 부족한 부분을 채우면서 그것이 충분히 쌓이고 쌓여 흘러 넘치게 하여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올라갈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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