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모의 무비&철학] 리부팅 시리즈는 각 캐릭터의 트라우마 혹은 딜레마를 다룬 바 있다. 특히 마지막 벌칸족 스팍의 현재와 미래의 캐릭터를 한꺼번에 등장시킴으로써 꽤 진지한 삶의 의미를 메시지로 내세우며 ‘로스트 인 스페이스’와 유사한 철학을 설파했지만 이번엔 그런 진지함은 크롤의 단순한 분노 하나로 단순화됐다.

그 대신 본즈와 스팍의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를 각별하게 챙기는 전우애, 스팍과 우후라의 종족을 뛰어넘은 사랑과 종족 보존이라는, 생명체가 지닌 본능 때문에 생긴 갈등 등을 소재로 소소한 유머를 곳곳에 포진함으로써 수시로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시리즈 50주년 기념 작품이란 타이틀과 달리 오히려 아날로그적 정서를 많이 담고 있어 친근하다. 행성을 잃고 동족이 몇 안 남은 스팍은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접하곤 종족 보존을 위해 종족과의 결혼에 강렬한 책임감을 느끼고 사랑하는 우후라와 거리를 두지만 사실상 그녀의 위치 추적기인 벌칸 족 운석 보카야로 만든 목걸이는 되돌려 받으려 하지 않는다.

연애에 관한 남자의 이기심을 살짝 유머로 비틀었다. 제이라의 무기는 봉에 불과하고 그녀의 가장 큰 전투 능력은 분신술이다. 그뿐만 아니라 크롤은 다른 사람(종족)의 에너지를 흡수해 죽임으로써 생명력을 연장하고 힘을 보강한다. 그건 중국 무협지의 흡성대법이다.

분신술 역시 손오공의 전매특허이다. 크롤의 모기 떼 같은 어마어마한 숫자의 작은 전투기 군단의 전투력은 다름 아닌 크롤의 초능력에서 비롯된다. 이 역시 매우 아날로그적이다. 게다가 그 조종사들을 조종하는 초능력을 흐트러뜨리기 위해 동원한 기능이 바로 음악인데 장르가 헤비메틀이다.

엔터프라이즈의 승무원들은 이 강렬한 록을 “클래식이냐?”라고 묻는다. 115분 동안 한눈팔 겨를이 전혀 없을 정도로 스토리는 스피디하고 화면은 화려하다. 두바이에서 촬영해 CG를 통해 완성한 요크 타운은 ‘투모로우 랜드’나 ‘엘리시움’이 보여 준 인공적이고 우주적인 새 유토피아와 비교해도 가장 화려하다.

린 감독의 명성답게 모든 액션에 군더더기가 없이 매번 극도의 긴장감을 주는데 특히 초반의 엔터프라이즈가 크롤의 전투기 군단에 의해 파괴되는 시퀀스는 웅장하고 장엄하다. 영화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소재는 커크의 진급이다.

초반에 커크는 상관으로부터 진급 명령을 받고 후임 함장 적임자로 스팍을 손꼽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상관이 진급을 받아들이는 데 변함이 없냐고 묻자 커크는 "그러면 엔터프라이즈에 승선할 수 없는 게 아니냐?" 그럴 수 없다."라고 진급을 거부한다.

이 역시 출세 혹은 안정보다 현역과 동지애를 소중하게 여기는 아날로그 정서이다.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에서 악당 밸런타인의 비서 가젤 역을 맡아 날카로운 의족으로 주인공을 괴롭히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 소피아 부텔라가 맡은 제이라가 매우 매력적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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