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남자 냄새 물씬 풍기는 범죄나 복수 등을 소재로 한 액션 활극은 기본적 재미가 보장되는 반면 뻔하게 천편일률적인 스커마(도식)에 갇혀 있기에 대단한 감동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공조’(김성훈 감독, 2017)는 전형적인 버디 무비로서 재미 하나는 보장하는 상업 오락물이다.

북측은 경제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슈퍼노트(정교한 미국 100달러 위조 지폐)를 찍는 명도전을 만들어 세계 경제 질서를 교란 중이다. 공화국을 배신한 인민보안부 간부 차기성(김주혁)은 자신과 같은 특수 부대 출신 부하들과 테러 조직을 결성해 명도전을 탈취한다.

이를 저지하던 보안부 형사 림철령(현빈)은 부하들을 모두 잃고 간신히 혼자 살아남는다. 기성의 도주로를 추적하던 보안부는 그가 남측에 숨어 든 사실을 확인하고, 마침 서울에서 열리는 남북고위급회담 참여 인사에 철령을 심어 명도전을 되찾아 올 것을 명령한다.

남측엔 그저 흉악한 테러범 한 명을 체포하려 하니 협조해 달라고 공식 요청하며 작전을 숨긴다. 중년의 남측 형사 강진태(유해진)는 생계형 가장이다. 아내 박소연(장영남), 초등학생 딸 연아, 백수 처제 민영(임윤아)과 작은 아파트에서 4000만 원도 안 되는 연봉으로 알콩달콩 살아간다.

어느 날 용의자를 눈앞에서 놓치는 바람에 3개월 감봉 및 정직 처분을 받지만 복직 및 승진 조건에 혹해 최초의 남북 공조 수사에 자원한다. 철령이 받은 임무는 명도전을 되찾아 오는 것이지만 사실 그의 목적은 기성을 죽여 복수하는 것.

진태는 윗선(국정원)으로부터 철령에 협조하는 척하면서 차기성도 잡고, 명도전도 손에 넣으라는 지령을 받았다. 두 사람이 서로 속고 속일 수밖에. 철령을 24시간 감시하라는 지령을 받은 진태는 그를 자신의 집에서 재우고, 철없는 민영은 잘생긴 철령에게 첫눈에 반해 자꾸 추파를 던진다.

그러나 그의 입에선 “나 여자 있습니다.”라는 차가운 거절만 흘러나올 뿐. 기성이 삼합회 한국 지부장과 명도전을 놓고 협상을 벌인다는 첩보를 입수한 철령과 진태는 해당 장소에 잠입하고, 향방은 어디로 튈지 모른 채 목숨과 국운을 건 한판 승부가 펼쳐진다.

초반은 코미디에 관해 둘째가라면 서러울 유해진의 독주가 기대에 부흥한다. 복병은 소녀시대 멤버 임윤아이다. 우아하고 신비스러웠던 그녀는 푼수기가 다분한 집안의 민폐 역할을 충실히 해 내는 가운데 진지하다 못해 절실한 철령에게 씨도 안 먹히는 애정 표현을 하며 코미디의 맛을 완성하는 훌륭한 양념이 됐다.

남북의 ‘눈 가리고 아웅’ 식 공조 수사라는 플롯은 자칫 이데올로기의 쏠림 현상이란 딜레마에 부닥칠 수 있는데 감독은 영민하게 잘 피해 갔다. 조국에 대한 충성심에 투철한 철령, 인민들의 고혈을 빨아 지도층만 배를 불린 공화국에 대한 원망에 사무쳐 자본주의 체제 하의 비뚤어진 부의 축적을 선택한 기성, 그냥 칼에 찔리지 않고 순조롭게 승진해 정년 퇴직까지 근무하고 싶은 진태 등은 그 어떤 면에서도 교집합을 만들지 못하는 외딴섬 같은 인물들이다.

감독은 셋 중 그 어느 누구도 옳다고 감히 결론짓지 않는다. 각자의 신념과 행동엔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공평하게 평행선 위에 ‘앞으로 나란히’ 세우면서도 절묘하게 ‘중요한 건 이데올로기 혹은 국가나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 아니라 가족이고, 친구간의 의리며, 모든 사람들의 조화로운 공동체 삶의 영위’라는 멋진 논리를 내세운다.

인트로에서 한때의 동료였던 철령의 머리에 총구를 댄 기성은 방아쇠를 당겼음에도 탄알이 발사되지 않자 살려 준다. 후환을 예상하면서도 그렇게 하는 것은 운명과 순리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신념의 수준을 따지는 것은 지엽적이긴 하지만 적어도 이 영화에선 기성의 신념이 가장 절절하다.

남한에 미리 심어 놓은 충복이 그동안 충실하게 임무를 수행했으니 이제 조직을 떠나 남한에서 평화롭게 살도록 허락해 달라고 애원하자 가차 없이 총살하는 면모에서 피도 눈물도 없이 잔인하기 그지없다고 볼 수 있으나 자신을 좇아 조국을 배신한 채 테러범이 돼 쫓기는 국제 범죄자가 된 수십 명의 부하들을 거느리기 위해선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는 체제의 희생자이다. 말로만 인민의 공화국이라 외치지만 사실은 3대째의 권력 세습으로 피라미드 최상위 계층만 배부른 조국의 실상에 넌더리를 느낀 한때의 ‘애국자’인 그로선 체제 전복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이고, 독재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길은 스스로 악마가 되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을 따름이다.

철천지 원수인 기성을 철령이 마냥 증오하는 것은 아니다. 사적인 면에선 복수심을 불태우지만 마지막 선택만 달랐을 뿐 결국 기성과 자신은 하이에나로 태어나 늑대로 길들여진 독재 체제 유지의 희생양일 수밖에 없었음을 알고 있다.

그래서 기성은 놓칠지언정 명도전은 꼭 회수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어기면서 진태와의 우정을 지키려 하는 것이다. 철령이 진태의 집에서 신세를 지며 본 것은 그동안 주입받은 남측의 부정적인 면이 아니라 그냥 사람 사는 모습이었다.

형사라는 직업에 나름대로 책임감과 사명감을 갖고 사는 진태의 최대의 목표는 가족의 안녕과 행복이었지만 가장이라는 무게는 항상 그의 가정에서의 위치를 최하위로 끌어내리곤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가족들이 표현만 안 했을 뿐 그의 노고를 잘 알고 있었고, 마음속으로 무한대의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그게 철령의 마음을 움직였다.

북측 평범한 가정이라고 다를까? 이념과 체제의 희생양이 된 철령은 서서히 이데올로기의 악령을 떨치고 세뇌된 체제의 환상에서 깨어나면서 사람이 사는 데 중요한 것은 이념이나 체제의 다툼이 아니라 기본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공동체적 의식이란 걸 깨달아 간다.

오락 영화이지만 교묘하게 정치적 철학을 복선에 깔았다. 기성, 철령, 진태 모두 스케이프 고트(불만 해소 정책)에 의한 크레덴다(정권 복종 합리화)에 의해 조직 혹은 권력에 절대 복종하게끔 길들여져 있다. 기성이 먼저 반기를 든다. 테러범이 된 설정은 그저 영화적 재미를 위함일 따름이다.

다음은 진태. 그는 상관과 국정원의 지시를 어기고 철령의 복수를 돕는다. 그리고 철령 역시 영웅이 될 수 있는 길을 마다하고 위험에 빠진 진태에게 간다. 레퍼렌덤(국민 투표)이다. 진태는 철령에게 곳곳에 설치된 CCTV를 가리켜 남측도 북측과 마찬가지로 감시당하며 사는 처지임을 말한다.

그래서 “똑같네. 그래서 한민족인가?”라고 푸념한다. 또 “대한민국에 죄수는 없고, 있는 놈과 없는 놈으로 구분된다.”라며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설파한다. 철령은 진태에게 “남조선 나라 빚이 얼만 줄 아냐? 그래도 우린 평등하게 가난해.”라고 일갈하면서도 “북조선 동포들도 코카콜라 맛에 중독됐다.”라고 허탈해한다.

상처투성이인 진태에게 소연은 “네가 칼 맞는다고 대한민국에서 나쁜 놈이 없어지냐? 나라에서 얼마 준다고 이 지랄이니,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라고 울부짖는다. 어느 곳이든 서민만 불쌍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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