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멜로 장르에서 여자 관객들의 지지를 받아 온 이윤기 감독은 새 영화 ‘어느 날’(2017)을 멜로의 ‘닭살’을 빼고 대신 판타지를 입혀 상처받은 젊은 두 영혼의 치유의 드라마로 썼다. 보험 회사 과장 강수(김남길)는 2달 전 사랑하는 아내 선화(임화영)를 잃었다.

처남 영호의 독촉 전화마저 외면한 채 장례식에 불참한 이유는 남모를 그만의 고통이다. 마음을 다스려 회사로 복귀하자 팀장은 “오랫동안 내근했으니 이제 다시 외근으로 복귀하라.”라며 새 임무를 던진다. 대표이사 친구의 아들이 강원도 고성에서 승용차로 25살의 시각 장애인 미소(천우희)를 치어 코마 상태에 빠뜨렸다.

피해자에게 가족이 없어 시각 장애인 복지관 직원 호정이 대리인 노릇을 하는데 워낙 빡빡해 합의가 쉽지 않아 피의자가 감옥에 갈 처지라는 것. 팀장은 사건 현장에 케인(시각 장애인용 지팡이)이 없었고, 피해자가 서울에서 먼 고성까지 간 정황을 들어 자살 시도로 몰아가 의뢰자에게 유리하게 재판을 이끌라고 지시한다.

미소가 입원한 병원은 선화가 숨을 거둔 곳이다. 혼수상태에 빠진 미소를 무심히 바라보던 강수는 뭔가 단서를 찾을 요량으로 서랍을 뒤진다. 그런데 웬 처녀가 나타나 “뭐 하냐.”라고 묻는다. 그녀는 자신이 미소의 영혼이라고 한다.

믿지 않던 강수는 거울에 그녀의 모습이 안 비치는 걸 확인하고야 비로소 인정한다. “쟤(신체)가 잠들어 꿈꿀 땐 제(영혼)가 이렇게 나타나고, 쟤의 의식이 깨어나면 저는 육체로 되돌아가죠.”라는 설명을 이해한다. 미소의 영혼은 유일하게 강수의 눈에만 보인다.

미소는 강수에게 병원 밖 구경을 시켜 달라고 조른다. 선천적 시각 장애인인 그녀는 세상 풍경이 어떤지 모르기에 혼자 다니는 게 두렵기 때문이다. 그렇게 25년 만에 처음 본 세상은 신기했다. 따뜻하거나 을씨년스러웠고, 황홀하거나 황폐했다.

고마운 마음에 미소는 강수에게 “제 사건, 아저씨 마음대로 하세요.”라고 배려해 준다. 보험 사기 해결사였던 강수는 병원에서 우연히 전문 사기꾼 두용(윤제문)을 만나 “보험 회사 등쳐 먹고, 가족한테 부끄럽지도 않냐?”라며 호통을 치고, 두용은 “네가 뭘 아냐, 네가 뭔데 나한테 가르치려 드느냐?”라며 주먹을 치켜들었다가 이내 보험 청구 포기 각서에 사인한다.

강수는 고성의 사건 현장으로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미소에게 숨겨진 놀라운 비밀을 발견하고선 더욱더 마음이 저려오는데. 눈이 먼 채 태어난 미소는 뭐든지 손으로 만짐으로써 지문에 닿는 촉각으로 사람과 소통하고 세상과 대화했다.

3살 때 홀로 세상에 버려진 그녀는 2달 전 또 한 번 더 잔인하게 내동댕이쳐졌다. 그러나 미소(영혼)는 지금이 좋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과연 그럴까? “볼 수 있어 좋긴 하지만 만질 수 없어서 아니다.”라고 답한다. 두 사람이 만나야 했던 당위성, 강수 눈에만 미소의 영혼이 보이는 이유, 모든 조건이 미소보다 나은 강수가 외려 더 힘든 원인 등의 함축적 의미이다.

미소는 소외와 외로움을 태생적으로 안고 살아왔다. 이제 25살에 불과하지만 현실 적응 능력과 배려심이 매우 강하다. 25년간 그녀가 어떻게 먹고 입고 즐기면서 살아왔는지 설명은 없지만 최소한 그녀는 자살을 시도할 만큼 염세적이진 않다.

그녀보다 10살 이상 많을 듯한 강수는 선화와의 결혼 생활이 엄청나게 행복했다. 시시각각이 데이트였고, 하루하루가 축제였다. 아내는 착했고, 내조도 좋았다. 그러나 불치병에 걸려 힘든 대수술을 겪고, 그렇게 뻔히 끝이 보이는 투병 생활을 하며 변했다.

강수는 “병이 사람을 완전하게 바꾼다는 게 무서워.”라고 진저리를 쳤다. 영화는 이기심과 이타심 혹은 규칙과 배려의 선택에 관해 거창하게도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그걸 어떻게 초월하느냐의 진지한 고찰을 빗대 묻는다.

팀장은 강수에게 “평생 과장으로 있을 거냐?”라며 대표이사의 눈에 들게  빨리 사건을 의뢰인에게 유리하도록 매조지라고 독려한다. 사회복지법인 직원에 불과한 호정이 미소의 소송을 유리하게 이끈다고 크게 얻을 것도 없다.

책임감에 불타긴 하지만 강수가 2가지 의심(고성과 케인) 요인을 무기로 압박하거나 회유하면 두 손을 들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결국 강수는 회사의 경영 방침에 반대하는 노선을 택한다. 두용은 “좀 봐줘, 사정이 있어서 그래.”라고 애원하지만 강수는 냉정하게 원칙을 고수한다.

결국 두용은 “매정하네.”라며 자포자기해 각서에 사인을 한다. 나중에 두용의 간절한 속사정을 알게 된 강수는 오히려 그를 응원한다. 거리의 흩날리는 벚꽃이 “눈처럼 아름답다.”라며 손바닥으로 받으려 하지만 영혼이기에 그럴 수 없어 안타까워하는 미소의 손 밑에 자신의 손바닥을 받쳐줌으로써 미소의 작은 소망을 들어주는 강수는 바로 스킨십(밀착의 소통)의 미학이다.

그건 소통으로 인한 화해와 화합, 그리고 이해와 배려라는 미소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초반 강수가 미소가 영혼이라는 존재를 확인한 거울 속에 수많은 거울이 복제된 미장센은 두 사람이 내면적으로 특별하게 연결돼 있다는 시뮬라시옹(파생 실재) 혹은 시뮬라크르(인위적 대체)의 암시이다.

더불어 영화는 무소유의 소유라는 거창한 철학도 설파한다. 강수가 보험 사기꾼들을 악착같이 괴롭혔던 이유는 정의감 때문이 아니라 선화와의 안락한 삶을 위함이었다. 물론 보험 사기꾼은 사회악이지만 보험 회사가 공익이나 사회 정의에 반드시 이바지한다고 하기도 쉽지 않다.

아버지와 계모의 감금 학대에서 탈출해 마트에 가 닥치는 대로 집어 먹은 소녀의 영상을 뉴스로 접한 시청자 중 그녀가 절도범이라고 생각한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 정도는 아닐지라도 최소한 두용이나 그와 유사한 사정의 범죄자의 죄는 처벌할지언정 사람까지 미워할 수는 없다.

강수가 괴로웠던 건 자신도 확신할 수 없었던 그런 잠정적 범죄 혹은 양심에 어긋나는 이기심이었다. 그는 누구보다 아내를 사랑했고, 그녀의 병에 마음 아파했으며, 쾌유를 빌었지만 희망은 안 보이는데 그녀가 변하자 점점 실망하기 시작했다.

결국 선화는 죽음을 앞당기는 선택을 했고, 그 결정은 내내 강수의 양심을 괴롭히는 영구적 고문이 된 것이다. 영화가 시작부터 첨단의 고가 도로 밑의 을씨년스럽고 황량한 콘크리트 구조물과 터널 아래 등을 훑고 지나가고, 어스름한 노을을 비추는 건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의 어두운 면과 하루하루를 사는 게 아니라 죽음에 가까워진다는 ‘황혼’을 뜻한다.

반대로 강수와 미소가 탁 트인 바다를 배경으로 삶과 죽음의 의미와 진리를 깨달으며, 비로소 심리적 짐을 훌훌 털어 버리는 장면으로 내면의 병의 치유를 의미한다. 처음 미소가 나타났던 병원 옥상 위에 강수까지 가세해 위태롭게도 난간에 걸터 앉아 오히려 가장 편안한 얼굴을 보이는 것은 해탈이다.

영화가 예술이라면 ‘어느 날’은 모나리자의 미소이다. 영화가 철학이라면 ‘어느 날’은 알랭 드 보통이다. 그럼에도 다수의 관객들이 재미 우선주의라는 강한 선호도를 보이는 현실은 감독에겐 여전히 숙제이다. 천우희는 B급 장르나 독립 영화에서 몹시 찬란한 빛을 발하는 몇 안 되는 여배우임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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