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정의 태평가] 시대가 변하면서 우리는 터치 한 번, 클릭 한 번으로 쉽게 음악을 접할 수 있게 됐다. 음악 시장은 점점 몸집을 불려가며 한 달에도 무수히 많은 가수가 데뷔를 하고, 다양한 노래가 쏟아져 나오지만 그 중 몇몇 곡을 제외한 대부분의 곡들이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한다.어떤 음악이 대중의 관심을 받을까. 인기 가수가 불러 발매 전부터 화제가 되는 곡이 있고, 단순한 가사의 반복이지만 신나는 멜로디로 유행가가 되는 곡도 있는 반면, 참신하거나 공감 되는 가사로 대중의 사랑을 받는 곡도 있다.

노래로 공유하는 같은 감정: 백아연-이럴 거면 그러지 말지 (작사:백아연,심은지)
가사로 화제가 된 노래를 꼽자면, 최근 공감 되는 가사로 음원차트 역주행에 성공한 백아연의 ‘이럴 거면 그러지 말지’ 라는 곡이 있다. 인기 가수나 유명 작곡가의 참여 없이 백아연의 곡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공감이 가는 가사 때문이다. ‘이럴 거면 그러지 말지’는 상대방도 나와 같은 마음인줄 알고 진심을 다해 좋아했지만, 결국 아니었음을 백아연의 어리고 여린 목소리로 전하고

있다. 마음을 줄 것 같이 행동했던 상대방에 대한 원망, 착각했던 자기 자신에게 느끼는 한심함, 누구나 느껴본적 있는 감정일 것이다. 사랑할 때에는 모든 사랑 노래가 내 얘기 같고, 이별 후에는 모든 이별노래가 내 얘기로 느껴지듯이, 사람들은 공감이 가는 가사에 자연스레 귀를 기울이게 된다. 백아연의 노래는 실연을 경험한 이들의 감정을 가장 잘 읽어낸 ‘일기 같은 노래’라는 생각이 든다.

신선한 충격: EXO-Thunder (작사:전간디)
아이돌 음악을 즐겨듣는 이들이라면 ‘전간디’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녀가 작사한 곡들을 대충 들어보면, 그냥 잘생기고 예쁜 아이돌들이 부르는 신나는 노래라고 생각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가사를 곱씹어본다면 그녀의 신선한 비유는 가히 충격적이라 말 할 수 있다. ‘Thunder’는 소리와 빛의 속력 차이 때문에 번개가 먼저 친 뒤 천둥소리가 들린다는 과학적 ‘사실’을 ‘감성’적으로 표현했다. 화자는 자신의 세상을 밝혀줬으나 빨리 떠나버린 상대를 ‘번개’로, 느려서 번개를 따라갈 수 없는 자신을 ‘천둥’이라고 표현하며 둘의 ‘시간의 차이’가 ‘공간의 차이’가 됐다고 말하고 있다. 학창시절 모두가 배웠던 과학적 사실을 이별로 표현할 생각을 누가 할 수 있었겠는가.

신선한 충격-2: f(x)-첫 사랑니 (작사:전간디)
첫 사랑니의 화자는 사랑에 빠진 소녀도, 소년도 아닌 바로 ‘사랑니’이다. 흔히 사람들은 ‘첫사랑’하면 깨끗하고 순수한 이미지를 떠올리며, 첫사랑에 관한 노래들도 사랑에 빠진 이가 느끼는 설레고 애틋한 감정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첫 사랑니’는 ‘사랑에 빠지면 사랑니가 난다’는 속설처럼 사랑니가 사랑에 빠진 자신의 주인에게 충고를 전하고 있다. 가사 속 사랑니는 힘들게 자신을 빼내도 평생 그 자리를 비워 둘 것이라 말한다. 우리들의 첫 사랑도 그렇다. 아무리 힘들게 첫 사랑을 잊고 오랜 시간이 흐른다해도 첫 사랑이 첫 번째 사랑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그 이름을 다른 사람이 채갈 수는 없는 일이다. 사랑니와 사랑, 둘 다 고통을 주며 우리를 잠 못 이루게 한다는 점이 매우 닮아있다.

전간디의 가사를 보고 이게 무슨 애들 장난인가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들이 하는 말은 장난스럽다가도,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고는 한다. 어쩌면 가장 1차원적일지도 모른다고 느꼈던 생각들이 고차원적일 수 도 있다는 것이다.

현실적이고도 감성적인: 아이유-첫 이별 그날 밤 (작사:윤종신)
많은 이들이 윤종신의 곡을 좋아한다. 그가 얼굴이 알려져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가 쓰는 가사를 보고 그가 몇 살인지,남자인지 여자인지 아무도 짐작하지 못할 것이다. 아이 셋을 키우는 아저씨가 방금 첫 사랑을 끝낸 소녀의 이야기를 써도 아무런 위화감이 없다.

우리의 삶은 드라마가 아니다. 매일 드라마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사람들은 굳이 자신의 시간을 써가며 드라마를 보지 않을 것이다. ‘첫 이별 그날 밤’은 극적인 이별이나 운명적인 재회에 대한 소망 보다는 가장 보통의 이별을 노래하고 있다. 가사 중 ‘수고했지 나의 사랑, 고생했지 나의 사랑’이라는 구절이 가장 인상 깊다. 여태껏 우리의 사랑 그 자체를 위로해줬던 노래는 없었다. 슬픈 기억만 가득했더라도 우리의 사랑이 모두 고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음악의 장르가 다양해지면서, 때로는 특정 대상을 비하하고, 듣는 이에게 불쾌감을 느끼게 하는 가사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예술’이라는 보호막이 어디까지 그들을 보호해 줘야하며, ‘다양성’이라는 이름하에 우리가 어디까지 존중해야할지 의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가사가 음악의 ‘수준’을 나누는 수단은 아니다. 많은 후크송들이 전 국민의 사랑을 받지 않았는가. 음악(音樂)의 ‘樂’이 ‘음악 악’이면서도 ‘즐길 락’이 듯이,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불쾌감 대신 즐거움을 느끼고, 제작자의 의도가 듣는 이에게 전해졌다면 그 것이야 말로 좋은 음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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