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야행, 빛나지 않는 태양 아래에서 걷는 비극
백야행, 빛나지 않는 태양 아래에서 걷는 비극

[미디어파인 칼럼 = 이상원 기자]  처음 백야행이라는 책을 집어 들었을 때 그 분량에 놀랐다. 두 권으로 나뉘어져 있을뿐더러 각자 양마저 매우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뛰어난 작가에게 분량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깨달았다. 훌륭한 떡밥과 그것을 회수하는 실력, 전체적인 개연성까지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이 작품은 감히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느닷없이 한 폐건물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사사가키라는 형사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진행한다. 하지만 범인은 찾을 수 없었고 이와 관련된 주변 인물의 살인 혹은 죽음만 계속 이어질 뿐이었다. 그렇게 찝찝한 마무리를 뒤로하고 갑자기 이야기의 초점은 폐건물에서 살인 당한 전당포 주인의 아들인 료지와 그 주변 인물인 유키호의 성장으로 맞춰진다.

책에서는 수시로 이 둘에 대해 어두운 내면이 있는 것 같다는 추측적인 멘트를 주변 인물을 통해 제시하지만 절대 두 명의 내면을 직접적으로 서술하지 않는다. 항상 주변 인물의 시선에서 그들의 모습을 바라볼 뿐이다. 중학생 때부터 대학생 때까지는 같은 학교 동급생인 도모히코 시점에서 기리하라 료지를 바라보며 유키호는 마찬가지로 가장 친한 친구인 에리코의 시점으로 그녀를 관찰한다. 이후 성인이 되었을 때는 다시 형사 사사가키 시점과 유키호와 같은 대학교 댄스부 출신인 시노즈카 가즈나리 시점으로 그들을 관찰한다. 이런 서술은 독자들이 이들이 어떤 교류를 하겠다는 추측만 할 뿐 그들 사이에 오갔던 말이나 행동 같은 것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주인공인데 주인공의 내면을 독자들이 모른다는 점은 책을 읽는 내내 엄청나게 신선한 부분으로 다가왔다.

주인공들은 다른 소설처럼 멋지고 본받을 만한 주인공들이 아니다. 기리하라 료지는 어릴 적부터 고등학생 남자애들을 성인 여성들과 붙여주는 이른바 성매매를 주선했으며 당시 게임 개발이 열풍이 불던 시절, 회사에서 게임을 훔쳐 복제하는 일을 하기도 했다. 유키호는 아름다운 외모와 특유의 분위기로 많은 사람들의 이목과 중심을 받지만, 자신을 질투하는 사람이나 자신에게 해가 되는 사람들을 기리하라 료지와 함께 뒤에서 수치를 줌으로써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일을 저지르곤 한다.

하지만 왜인지 모르게 주인공에 대해 나쁜 마음이 들지 않는다. 특히 주인공의 시점이 아닌 주인공 주변 인물 시점으로 진행되는 만큼 다른 소설에서 주로 사용되는 내면 서술을 통한 자기변명이 없다. 그러나 두 주인공에게 맹목적으로 홀리게 되는 주변 인물의 모습이 마치 독자들의 모습을 반영하는 듯 두 인물에게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게 작가는 이야기를 진행한다. 마지막의 마지막에 기라하라 료지가 사사가키 형사에게 그 정체를 들키지만, 자살을 택하고 유키호가 그 장면을 무표정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는 장면은 통쾌함이 아닌 둘 사이의 아련함마저 느끼게 한다. 그 둘이 만나는 장면을 소설에서 단 한 번도 그리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제목인 백야행은 백야, 즉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내내 떠 있는 길을 의미한다. 작중 기리하라는 주변 인물에게 내 인생은 백야를 걷고 있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자신이 재능이나 여러 일을 통해 뛰어난 수익을 올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유키호와 함께 뒤에서 더 어두운 일을 진행했던 것을 대변하는 말이다. 유키호 역시 마지막 부분에서 내 인생은 밝지 않다고 언급하며 이에 대해 아름다운 외모와 뭐든지 완벽한 인생에 무엇이 밝지 않냐고 반문하는 주변 인물의 말에 자신의 인생에 태양은 없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태양과 비슷한 빛을 내는 것이 있었기에 자신이 여기까지 버텨올 수 있었다고 한다. 이것은 기리하라 표지를 가리키는 말로서 어릴 적 끔찍한 일을 당했음에도, 안 좋은 일을 계속 저지르고 다녔음에도 자신을 뒤에서 받쳐주는 그리고 작중 표현을 빌리자면 공생하는 관계인 망둥어와 새우 같은 관계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약 1,000페이지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양인만큼 많은 주변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주변 인물들은 하나같이 안 좋은 일을 당한다. 누군가는 성폭행을 당하기도 하며, 평탄한 삶을 살 수 있었음에도 안 좋은 길로 빠지기도 한다. 심지어 이 둘을 조사하던 사람은 살인을 당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나는 작가가 이런 비극적인 일을 왜 그렸는지 생각해 보고 싶다. 결국 모든 일의 시초는 기리하라 료지의 아버지가 행한 이성적인 성욕과 유키호의 어머니가 돈 때문에 자기 자식까지 팔아넘긴 행위다.

어린 시절, 자신들의 아이를 그저 소모품 취급하고 적절한 대우를 해주지 않았던 모습들이 향후 20년 동안 엄청난 파급을 불러왔다. 아마 작가는 이런 점을 그리지 않았을까. 유키호는 어릴 적 자신이 당했던 성폭행을 되돌려주려는 듯 자신이 시기하는 주변 인물에게 같은 방법을 사용한다. 작중 주인공인 료지와 유키호 모두 어린 시절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자신들이 어려움이 닥쳤을 때는 결국 어린 시절의 영향을 은연중에 받고 있다. 작가 입장에서는 이런 점을 강조하고 싶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요즘 시대에 천 페이지가 넘는 종이책을 도전하기란 쉽지 않다. 빠르고 쉬운 1분짜리 쇼츠 영상만 보는 시대에 천 페이지가 웬 말인가. 하지만 이런 책이야말로 현대 시대에 꼭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다 읽었을 때 비극적인 스토리와 결말임에도, 무엇인가 탁 하고 사이다와 같은 결말이 아님에도 전율이 느껴지는 이런 기분을 모두가 느껴보았으면 한다.

[이상원 칼럼니스트] 
고려대 산업경영공학과(휴학 중)
미디어파인 대학생칼럼니스트 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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