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서머 퀸', '서머 송'인가? [유진모 칼럼] 서머 퀸 자리 노리는 오마이걸.
왜 '서머 퀸', '서머 송'인가? [유진모 칼럼] 서머 퀸 자리 노리는 오마이걸.

[유진모의 무비&철학] 여름이다. 오마이걸, 아일리원 등의 걸 그룹들이 저마다 '서머 퀸' 자리를 노린다며 컴백하고 있는 가운데 '선배' 소유도 서머 퀸을 탈환한다고 선언했다. 그녀들뿐만 아니라 K-팝의 대부분의 그룹들은 저마다 서머 송을 발표해 왔고, 퀸과 킹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왜 여름일까?

우리나라의 서머 송은 멀리 1960년대 밴드 키보이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닷가의 추억'(1964)과 '해변으로 가요'(1965)는 키보이스를 여름의 시그니처 밴드로 각인시켰다. 그 후 '해변으로 가요'는 여름이면 국내 그 어떤 피서지와 클럽을 가도 제일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서머 송으로 자리매김한다.

1970년대 포크 붐이 일면서 돌풍처럼 거세게 몰아친 남성 듀오 사월과오월은 '바다의 여인', '화', '등불', '딩동댕 지난 여름' 등을 히트시키며 역시 여름의 대표 가수로 뿌리를 내린다. '해변으로 가요'는 밴드 편곡이지만 사월과오월의 노래들은 통기타 하나면 연주와 합창이 가능했기에 더욱 널리 사랑받았다. '해변으로 가요'는 클럽에서 즐기는 애청곡이, '바다의 여인'은 백사장에서 직접 통기타를 연주하며 부르는 애창곡이 각각 된 것.

1970년대 이후 대학가요제 및 그 아류의 가요제가 대유행하면서 자연스레 수상곡 및 인기곡들이 대부분 서머 송으로 위치하게 된다. 출전 곡의 소재로 유독 여름이 많기도 했고, 그 이유가 가요제들이 대부분 한여름에 개최되었기 때문이다. 징검다리의 '여름', 높은음자리의 '바다에 누워', 바다새의 '바다새', 장남들의 '바람과 구름', 피버스 '그대로 그렇게' 등은 80년대의 여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서머 송들이다.

그리고 프로페셔널한 조용필의 '여행을 떠나요'가 바통을 이어받더니 90년대 중반 듀스의 '여름 안에서'가 방점을 찍는다. 이후 DJ DOC의 '여름 이야기', 클론의 '꿍따리 샤바라', 포지션의 '서머 타임', 쿨의 '해변의 여인' 등이 그 맥을 잇는다.

이런 낭만과 추억의 서머 송 인기 현상은 비단 국내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니, 미국의 팝 음악의 흐름을 우리가 배웠다고 하는 게 순서에 부합한다.

미국의 팝 시장에서 단골 서머 송은 1950년대에 리치 밸런스의 'La bamba'가 있었다. 그 후로는 단연코 비치 보이즈의 'Surffin' U.S.A.'이다. 캘리포니아의 해안에서 파도 위를 서핀으로 달리는 느낌을 주는 이 상큼한 노래는 수십 년 동안 전 세계 팝 팬들은 물론 여름을 보다 더 신나게 즐기려는 소비자들에게 낭만과 흥겨움을 안겨 줬다.

그 후로도 리키 마틴의 'Livin' la vida loca', 로스 델 리오의 'Macarena' 등을 빼놓을 수 없다. 아무래도 지중해와 대서양을 품은 스페인의 강렬한 햇살과 '서머 송'은 떼려야 뗄 수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자메이카 역시 빼 놓으면 섭섭하다. 우리나라는 예외이겠지만 전 세계적으로 서머 송이라고 하면 아마 쿠바의 살사와 자메이카의 레게를 손꼽을 것이다. 스페인과 영국의 지배를 거친 이 작은 중미의 섬나라 자메이카가 세상에 내놓은 가장 훌륭한 문화 중 하나라면 단연 레게이고, 그 선봉에는 밥 말리가 있다.

이른바 레게 록으로 전 세계의 록 음악계를 평정한 말리가 얼마나 위대한 인물인지는 그의 히트 곡 'I shot the sheriff'를 에릭 클랩튼이 리메이크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가수들이, 소비자들이 서머 송에 목을 매는 이유는 여름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여름은 휴가철이다. 휴가지에서 연인이나 친구를 만들기도 하지만 연인(배우자), 가족, 친구 등과 애초부터 계획을 세우고 즐거운 추억을 몇 겹 더 쌓는 좋은 기회이다. 일상에 찌든 심신에 여유를 주며 재충전하는 시기이다.

돈, 시간, 일 등에 대한 아무런 근심이나 걱정 없이 오직 휴가 기간 동안 남는 시간을 충분히 즐기기만 하면 될 뿐이다. 그러니 여기에 음악이 빠질 리가 없는 것이다. 오가는 동안에도 음악은 필수.

그렇지만 시즌 송이 비단 여름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유럽에도 알려진 70년대 박인희의 포크 송 '봄이 오는 길', 가을이면 전 세계 어느 거리에서나 울려 퍼지는 조제프 코스마의 'Autumn leaves', 그리고 DJ DOC의 '겨울 이야기'는 우리에게도 매우 익숙한 각 계절의 시즌 송이다.

그런데 왜 유독 여름만 부각하려 할까? 첫째, 겨울에는 캐럴이라는 막강한 스테디셀러가 있다. 1942년 영화 '홀리데이 인'에 첫 등장한 빙 크로스비의 '화이트 크리스마스' 싱글 앨범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팔린 음반 중 하나로 손꼽힐 정도이니 두말할 필요가 없겠다.

찬송가는 가스펠, 블루스, 재즈, 소울 등과 불가분의 관계이다. 그러니 캐럴 역시 대중음악과 얼마나 가까운지 알 수 있다. 불교, 이슬람교, 힌두교 등과의 차이점 중의 하나이다. 즉 겨울 시즌 송에는 한계가 있다.

봄과 가을을 여름, 겨울과 차별하는 것은 아니지만 임팩트 면에서는 살짝 차이가 있다. 봄은 긴 겨울을 지나 새 생명이 움트는 시작이라는 생명력, 가을은 봄-여름을 지나 그 생명력이 결실을 맺는다는 결과적인 생활의 발견을 선사하지만 여름의 강렬함과 겨울의 처절함(혹은 극도의 낭만)과는 결이 다르다.

그뿐만 아니라 여름은 더위 탓에 체력은 다소 처질지언정 의욕만큼은 강렬하다. '이번 여름에는 뭐 하나 해 보자.'라는 호승심은 음악에 대한 소비 역시 부채질한다. 봄의 상큼한 동요나, 가을의 축 처진 발라드보다야 여름의 신나는 댄스곡이 삶에 더 큰 활력소가 되지 않을까? 달리 설명할 필요도 없이 저마다 '서머 송'에 도전하는 현상만 봐도 입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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