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서재미 청춘칼럼] 딩동, 대학생 김 씨의 스마트폰에서 푸시 알림이 울린다. '박아무개님이 당신의 게시 글에 댓글을 달았습니다.' 김 씨는 알림을 클릭해 답글을 남기고, 그 사이 자신의 게시 글에 좋아요 수가 얼마나 올랐는지 체크한다.

올린 지 2시간이 지났는데도 생각보다 미적지근한 반응에 글을 지울지 말지 고민한다. 딩동, 딩동. 이렇게 하루에도 몇 번씩 SNS에 접속하는 김 씨의 행동이 좋은지 나쁜지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판단될 수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위의 예가 비단 김 씨, 단 한 사람만의 일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쩌면 이는 우리 20대들의 ‘젊은 날의 초상’이다.

요즘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스마트폰의 보급은 사람들의 정보 습득 능력을 크게 향상시켜 주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잘 기억해두었다가 집에 와 컴퓨터로 찾아보던 예전과는 달리 이젠 지하철에서도, 길거리에서도, 심지어 화장실에서도 스마트폰 하나면 무엇이든 당장 찾아볼 수 있다.

무엇이던 그 자리에서 해결해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인에게는 가히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좋은 점이 있으면 나쁜 점도 있는 법. 정보의 빠른 흐름은 우리네 삶의 중심축을 크게 뒤흔들어 놓았다. ‘SNS 중독’이 바로 그것이다.

사실 SNS는 예전부터 우리와 밀접하게 닿아있었다. 2000년대 초반 혜성처럼 등장한 ‘싸이월드’는 아기자기한 꾸미기 기능을 무기로 상당한 이용자 수를 확보했다. 당시 싸이월드는 1020세대에게 ‘현실에서 벗어난 나만의 다락방’이자 ‘친구들과 함께하는 소통의 장’으로서의 기능을 했다.

그러나 스마트폰이 국내에 보급된 이후 모바일 접속이 가능한 ‘페이스북’의 인기가 나날이 치솟았고, 2016년 현재엔 거의 모든 사람들이 페이스북, 트위터 등 새로운 SNS의 세상 속에 몸을 담게 되었다. 사람들이 이 SNS를 예전처럼 단순히 소통의 장으로만 적절히 활용한다면 아주 바람직하겠으나, 사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관심을 받기 위해 자신의 계정에 충격적인 영상을 올리는 사람들이 연일 뉴스에 보도되고, 추억을 남기기 위해서가 아닌 단지 SNS에 자랑하기 위해서 좋은 것만 골라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급속도로 팽창하는 SNS의 마력에 푹 빠진 사람들. SNS는 어느새 다락방이 아닌,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안방’이자 누군가에겐 ‘집’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SNS 속에서 우리는 현실의 자신과는 다른 새로운 페르소나(persona)를 만들어 낸다. 가면을 쓰는 것이다. 현실 속 자신이 멋있거나 똑똑하지 않을지라도 SNS 속에선 멋있고 똑똑한 사람일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이 마치 진짜 자신의 모습인 양 행동한다.

페르소나를 쓴 채 다양한 인맥 쌓기가 가능한 SNS는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정신적인 도피처가 되어준다. 이러한 것 외에도 언제 어디서나 바깥세상과의 손쉬운 연결고리가 되는 등 여러 장점이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SNS의 지나친 이용은 사회로부터의 고립을 초래한다.

SNS에서 맺는 관계에 지나치게 집착하다 보면 현실 생활을 하는 시간보다 SNS에 접속하는 시간이 훨씬 커지기 때문이다.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위해 배설물을 얼굴에 바르거나, 자동차 뒷바퀴에 다리를 밀어 넣어 깔리는 등 혐오스러운 영상을 올리는 일명 ‘관심종자’들의 대부분이 사회 부적응자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이 바로 그 예이다.

SNS가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SNS에 접속해있더라도 우리는 현실에 발을 딛고 있어야 한다. 가상공간 속의 내가 현실의 나에게서 너무 멀리 벗어나게 되면 그 간극의 괴리감을 이기지 못하게 되고, 더욱더 SNS 속으로 파고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일명 ‘관심종자’들이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음을 생각해보면 쉽게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이다.

더욱 문제인 것은 SNS가 주는 관계의 명료함이다. SNS 안에선 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좋아요나 리트윗 같은 단순명료한 숫자의 개념으로 치환된다. 인간관계는 쉽게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메커니즘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글에 좋아요나 댓글을 쓰지 않는 사람은 ‘나와 소통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규정짓게 되기 십상이다.

현실에서의 위안을 얻기 위해 시작한 SNS에서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니 이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SNS 끊기 운동이 빠르게 퍼지고 있는 것 역시 이러한 맥락이다. 실제로 SNS 끊기 운동에 동참한 지인은 ‘당장은 답답하고 활력을 잃은 느낌이 들어도, 시간이 지날수록 주위의 작고 사소한 것들에 눈길이 간다’며 만족해했다.

숫자에 집착하지 않게 되고,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신세한탄하지 않게 된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종속자로서가 아닌 주체자로서의 바람직한 SNS 사용’이 가능해졌다는 것이 SNS를 끊은 주변인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사실이다.

딩동. 누군가 날 태그 했다는 알람이 울린다. 예전 같았으면 하던 일을 멈추고 바로 확인했을 테지만, 요즘은 조금 느긋한 여유를 갖고 현실의 삶을 음미해보려고 하고 있다.

처음이다. 등굣길에 꽃나무가 참 많다고 느낀 것은. SNS 속 예쁜 꽃 사진 백 장보다, 눈으로 보는 한 송이의 꽃이 더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휴대폰에 빠져있던 전에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일상의 소중함이다.

청춘들에게 고한다. 이제 SNS 속 가상의 모습에 몸을 숨기지 말고, ‘나’라는 존재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세계, 그 자체를 사랑해보는 것은 어떨까. 네모난 디바이스에 갇혀 젊은 날을 보내기엔 세상이 너무 경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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