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장충단공원] 1960년대 대중가요의 노랫말로... 1970년대 정치집회의 장소로... 1980년대 서울의 대표적 공원으로... 시대에 따라 운명을 달리했던 곳 장충단공원. 대중가요의 노랫말로 잘 알려진 장충단공원에 숨겨진 비밀은 무엇일까?
서울 한복판 남산 자락 아래 자리한 장충단공원.
지금은 인적이 드문 한가로운 공원이지만, 과거 장충단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 역사는 1895년 고종황제 때부터 시작된다.
대한제국 최초의 국립현충원이라 할 수 있는 장충단에서는 매년 봄가을 제사가 거행됐다.
을미사변 희생자 뿐 아니라 임오군란(1882년 6월 9일, 고종 19), 갑신정변(1884년 12월 4일, 고종 21) 때의 순국 충신들도 함께 기렸다.
당시 장춘단은 지금의 장춘단공원과 신라호텔 일대를 아우르는 넓은 부지 위에 세워졌다.
일제의 만행을 알리고 국권을 더욱 튼튼히 하겠다는 고종황제의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1919년 일제는 장충단에 광장, 연못, 놀이터를 설치해 사당을 공원으로 꾸민다.
을미사변의 희생자를 기렸던 장충단은 일제 침략전쟁의 전사자들을 기리는 제단으로 변질되었다.
일제는 장충단을 공원으로 만들면서, 장충단 옆에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기리는 박문사까지 세웠다.
경희궁 정문을 통째로 뽑아다 박문사 앞문인 경춘문으로 둔갑시키면서 위엄과 권위를 자랑하던 경희궁은 과거 속으로 사라졌다. 광복 후 박문사는 철거되었다.
경춘문(敬春門)은 이토 히로부미의 호인 ‘춘무(春畝)’에서 따온 것으로 추정된다.
박문사가 자리했던 곳은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 지배해나가는 과정에서 매력적인 공간이었다. 조선이 갖고 있는 여러 민족적 가치를 누를 수 있다는 측면도 있고, 교통 환경적인 요소 외에도 서울을 조망할 수 있는 조망권과 같은 요소들이 고려돼서 그 공간에 자리했다고 볼 수 있다.
해방 후 일제 만행의 역사인 박문사는 철거되고, 그 자리에는 외국 국빈을 대접하는 영빈관이 세워졌는데... 이후 영빈관 일대에 신라호텔이 들어서면서 영빈관은 본래의 기능을 잃고 호텔의 부속건물로 남겨졌다.
일제 치하에서 수모와 오욕의 시간들을 겪어야 했던 장충단. 어렵사리 버텨냈던 사당과 부속건물들은 6․25전쟁을 거치며 모두 파괴됐다. 그리고 사당이 사라진 자리엔 일제 치하 치열하게 싸웠던 선조들의 항일정신을 다시 새겨 넣었다.
이제는 도시 안의 쉼터로 자리 잡은 장충단공원.
그러나 지금의 모습 뒤엔 국권을 잃고 눈물 흘렸던 지난날의 아픈 역사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 우리 모두 기억해야 하겠다.
- <장충단 공원 편> 프로그램 다시보기 -
☞ 네이버TV : https://tv.naver.com/v/1974651
☞ 유튜브 : https://youtu.be/5enLhnhpLEU?si=R8k1CWlRCtoNTuEL
TBS TV에서는 서울 일대에 남았거나 변형된 근현대문화유산을 주제로 서울의 역사․문화적 의미와 가치를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으로 제작하고 있으며, 프로그램은 네이버 TV(http://tv.naver.com/seoultime), 유튜브(검색어: 영상기록 시간을 품다) 또는 tbs 홈페이지에서 다시 볼 수 있다.
[수상 약력]
2013 미디어어워드 유료방송콘텐츠 다큐멘터리 부문 우수상 수상
2014 케이블TV협회 방송대상 PP작품상 수상
2015 한국방송촬영감독연합회 그리메상 지역부문 우수작품상 수상
2016 케이블TV협회 방송대상 기획부문 대상 수상
2019 한국방송촬영감독연합회 그리메상 다큐멘터리부문 우수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