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실화를 바탕으로 한 ‘세인트 주디’(숀 해니시 감독)는 법정 영화의 클리셰 예측이 어렵지 않지만 단순히 여성 인권 문제만 천착하지 않아 나름의 재미와 스릴을 만끽하게 한다. 이민 전문 변호사 주디(미셸 모나한)는 매튜와 이혼한 뒤 초등학생 아들 알렉스와 사는데 LA의 로펌에 취업돼 이사한다.

LA에 사는 매튜 역시 알렉스를 자주 볼 수 있다며 반긴다. 로펌 대표 레이가 준 첫 재판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불법 이주한 처녀 아세파 건. 혼미한 상태의 그녀를 면회한 주디는 수용소 측에서 불법 약물을 주입했다고 판단해 도움받을 전문가를 찾던 끝에 아프리카 난민 출신의 디켐베를 발견한다.

그는 명문대 출신 전문의지만 불법 이민자라 허드렛일을 하고 있는데 처음엔 변호사란 직업에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자신의 취업 비자를 받고는 발 벗고 나서 아세파가 불구속 재판을 받도록 만든다. 그런데 승산 없는 재판이라고 판단한 레이는 대충하고 돈 되는 일을 하라고 대놓고 압박한다.

결국 해고된 주디는 허름한 사무실을 차리고 유력 변호사의 아들 파커를 비서로 고용해 아세파의 재판을 준비하는 한편 유사한 처지의 망명자들을 돕는다. 아세파는 파키스탄에서 유학한 후 귀국, 학교를 세우고 소녀들을 가르치다 신 모독죄로 탈레반에 붙잡혔다 파키스탄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했다.

먼저 미국에 정착한 삼촌 오마르의 집에 숨어 지내다 이민국에 검거된 것. 첫 재판 때 기억이 안 난다던 아세파는 두 번째엔 강간을 당했다며 그동안 거짓말을 했다고 자백한다. 판사는 여자로서 아세파를 존경하지만 판사로선 정치범이 아닌 여성이란 이유로 망명을 허락할 수 없다고 판결하는데.

희한하게도 아세파는 20세기 초 활약한 이집트의 여성인권운동가 후다 샤으라위를 닮았다. 그녀는 초대 국회의장 무함마드 술탄의 딸로 부유한 가정에서 나고 자랐지만 어릴 때부터 여성이 집안에서조차 히잡을 착용해야 해야 할 만큼 여성의 정숙의 정도를 판단하는 척도로 삼는 데에 의문을 가졌다.

1910년 가난한 여성들을 위한 여학교를 설립하고, 4년 뒤 이집트 여성교육연합을 창설했으며, 제1차 세계대전 후 영국의 식민 지배에 대항하는 여성 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1922년 히잡으로부터의 자유를 공식 선언하고 이듬해 로마에서 열린 국제 여성 참정권 연맹 회의에 히잡 없이 등장했다.

표피적으로는 이슬람 국가에서의 여성 인권 문제를 토로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아세파를 결정적으로 망명하게 만든 건 1994년 10월 2만 5000여 명의 학생들을 중심으로 아프가니스탄 남부 칸다하르에서 결성된 수니파 무장 이슬람 정치조직 탈레반이자 그들과 부족의 잘못된 종교적 해석이다.

탈레반은 처음엔 14년간 계속된 아프가니스탄 내전과 4년간의 모자헤딘(무장 게릴라 조직)의 권력투쟁을 종식시켰고, 약탈, 강도, 부정부패 등을 없애는 데 힘을 쏟으며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이슬람교에 대한 어긋난 해석으로 성차별, 아동학대, 유적 파괴 등 불법행위를 자행함으로써 축출됐다.

아세파는 탈레반이 극악무도해졌을 때 희생된 것. 세력이 커진 종교인은 종종 권력과 금력에 취하곤 한다. 애초의 교리대로 원수마저도 사랑하고, 해골바가지의 물도 맛있게 느껴질 때 신성이 지켜지기 마련인데. 하느님은 아세파가 숨어서 소녀들을 가르쳐야 할 만큼 여성을 차별하라고 하지 않았다.

더구나 아세파의 아버지는 부족장이다. 어머니는 그녀에게 “여자는 강해야 한다. 아무리 높은 산이라도 정상에 오르는 길은 있기 마련”이라고 가르쳤고, 그래서 당당하게 동료 선생과 소녀들과 길에 나섰다 남자들의 돌팔매질을 받고 경찰에 체포된 것이다. 오마르는 2개의 반전에 걸친 주요 인물.

첫 주제는 변호사의 양심이다. 대사에서 ‘앵무새 죽이기’의 애디커스 핀치를 거론하는 배경이다. 대다수 할리우드 영화에서 변호사는 사기꾼으로 묘사된다. ‘데블스 에드버킷’(테일러 핵포드 감독, 1997)의 젊은 변호사 케빈은 오로지 승소밖에 모르는 사기꾼이고, 심지어 대표 변호사 존은 악마다.

핀치는 인종차별이 심한 1930년대 남부에서 백인 소녀 강간 혐의의 흑인 남자를 변호한 용기와 소신의 변호사다. 주디는 핀치처럼 가난한 사람에게 수임료를 안 받는다. 성 주디인 이유. 그러나 레이와 매튜는 의뢰인의 수임료만 챙기면 그게 다일 뿐 그들을 돕거나 진실을 밝히는 데엔 무심하다.

두 번째는 양심살인이다. 패소한 아세파가 강제 송환될 경우 형제들의 손에 죽게 된다. 신을 모독했고 그 죄로 강간을 당했기 때문에 가족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용납된 그들만의 허락된 양심살인. 도대체 누가 죄를 지었는지, 종교가 누굴 위한 것인지 의심스럽다. 다음은 포기하지 않는 주의주의다.

알렉스는 전학생이란 이유로 기존 학생들로부터 스테이플러를 던졌다는 누명을 쓴다. 주디가 실력을 발휘해 교장을 꼼짝 못 하게 만든 뒤 “네 생각을 소신 있게 말해”라고 가르치며 자신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녀가 앉은 버스 정류장 의자에 적힌 자신의 사무실 홍보의 테제이기도 하다.

마지막은 미국의 정체성. 미국은 종교적 박해로 버지니아에 정착한 영국 청교도와 유럽 이민자들이 개척해 건설한 나라다. 아프리카의 흑인, 중남미의 히스패닉, 동양인까지 다양한 인종의 전시장이다. 아세파는 여자인 데다 진보적인 지식인이라 박해를 받은 것이다. 미국인으로서의 자격! 29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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