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주식회사 스페셜액터스’는 반짝반짝 빛나는 좀비 호러 코미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2018)로 B급 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준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의 새 작품으로 사이즈가 확장됐고, 휴머니즘의 감동은 진국이 됐다. 배우 지망생 오노는 긴장하면 기절하는 증상 때문에 연이어 오디션에 낙방한다.

경비로 일하며 근근이 살아왔지만 회사에 병세가 알려지면서 해고된다. 집주인은 밀린 월세를 달라고 독촉하고, 전기마저 끊긴 채 어릴 때부터 봐온 비디오 ‘레스큐맨’을 보며 무료함을 달래던 중 술에 취해 데이트 커플에게 집적댔다 되레 크게 혼쭐난 취객을 보는데 5년 전 헤어진 동생 히로키다.

그런데 그건 모두 쇼였다. 여자의 사랑을 얻기 위해 남자가 연기를 의뢰했던 것. 소심하지만 돈이 간절한 그는 히로키가 근무하는 배우 에이전시 스페셜액터스에서 일하게 된다. 여기 배우들은 영화나 드라마의 엑스트라는 물론 직접 짠 각본과 연기로 의뢰인들의 고민을 해결해 주는 일까지 한다.

여고생 유미가 거금을 들고 찾아온다. 2년 전 부모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뒤 언니 리나에겐 여관을, 자신에겐 현금을 각각 물려줬는데 리나가 사이비 종교 단체 무스비루에 빠져 여관을 그들에게 넘겨주려 하니 그걸 막아달라는 의뢰. 규모가 커 망설였던 대표는 신참 신도로 위장 잠입을 결정하는데.

무스비루는 사기꾼 카즈키가 아들 타마루를 교주로 내세워 설립한 사이비 종교다. 머나먼 행성에 사는 신 가제우스로부터 타마루가 초능력과 교리를 물려받았는데 그 때문에 말을 못 한다고 주장한다. 판단력이 약하고 정신적으로 궁지에 몰린 사람들에게 회비를 받고 굿즈를 판매해 수익을 올린다.

옴진리교가 1995년 3월 20일 도쿄 지하철역에서 독가스 테러로 6000여 명의 부상자를 만들었듯 일본에선 사이비 종교 문제가 꽤 심각하다. 물론 우리도 만만치 않다. 그런 면에서 매우 현사실적인 재미를 선사한다. 남의 얘기 같지 않으니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라는 방법론이 매우 통쾌하기에.

르네상스 시대가 오기 전까지만 해도 기독교는 유럽의 모든 생활을 지배한 최대의 이데올로기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무신론자나 이단교인은 죽이기 쉬웠다. 마녀사냥이 대표적이다. 다른 나라도 상황은 비슷했다. 하지만 현재 많은 지식인들은 공공연하게 신은 없다고 떠들면서 종교와 대척점에 선다.

옴진리교는 힌두교의 파괴의 신 시바를 주신으로 모셨다. 기독교에서 볼 때 거론할 가치조차 없겠지만 힌두교에서 봐도 이들은 그노시스파나 에피온파만도 못한 이단이다. 그러나 실제 이런 허술한 교리와 신성이 느껴지지 않는 교주에 빠져 재산을 탕진하고 심지어 목숨을 잃은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감독은 사이비 종교=사기=연기의 등식 혹은 부등식으로 정과 사, 참과 거짓의 인식론을 펼친다. 인트로의 드라마 오디션에서 오노가 ‘발연기’를 펼치자 감독은 “연기는 가짜를 진짜처럼 믿게끔 만드는 것”이라며 호통을 친다. 드라마와 영화는 관객을 시나리오와 연기에 속게 만드는 게 제일 중요하다.

그러나 영화는 관객에게 잠시나마 꿈을 실현시켜 주지만 사이비 종교는 돈을 빼앗고 정신을 갉아먹는다는 게 확연히 다르다. 스페셜액터스는 혹세무민으로 신도를 홀리고 늘리는 무스비루를 무너뜨리기 위해 그보다 더 논리적인 시나리오와 뛰어난 연기력으로 속을 수밖에 없는 상황극을 연출한다.

그렇게 이 작품은 미장아빔(극중극)의 재미가 크다. 먼저 완성도가 심하게 떨어지는 슈퍼히어로물 ‘레스큐맨’이다. 레스큐맨이 연인을 납치한 악당 무리를 일망타진하는데 두목이 뜻밖에도 매우 낯익은 인물이다. 그러나 선천적으로 물려받은 슈퍼파워를 더 키운 레스큐맨이 그를 물리치고 연인을 구한다.

다음은 무스비루에서 펼치는 스페셜액터스의 사기꾼을 속이기 위한 사기극. 신의 존재 여부를 떠나 원수마저 사랑하라는 기독교처럼 정통 종교는 애타심, 박애정신, 인류애, 선의 추구와 질서 등 긍정적인 측면이 굉장히 강하다. 특히 그리 많지 않은 돈으로 커다란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는 게 큰 장점.

그러나 무스비루처럼 종말론을 이용해 신도들의 피 같은 재산을 갈취한다면 곤란하다. 작은 비유로 큰 교훈을 던지는 재치! 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만들어진 신’을 통해 자신은 무신론자임을 만방에 떨치며 종교는 권력과 금력과 직결된다는 목적론을 설파한 바 있다. 신이치로는 도킨스주의자다.

‘인생은 연극’이라는 노골적인 설정은 많은 사람들이 실생활에서 느끼곤 하는 ‘장자’의 호접지몽과도 연계된다. 소크라테스의 시대는 철학만큼이나 연극이 대유행을 했다. 가제우스라는 신의 이름은 대놓고 제우스를 빌렸다는 점에서 타마루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염두에 뒀는데 반전이 재밌다.

그걸 레스큐맨과 연계시킴으로써 미장아빔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감독의 영민함은 단연 발군이다. 오노와 히로키는 외모도 성격도 판이하게 다르다. 적극적인 현실주의자 유미와 염세적 패배주의자 리나 역시 극과 극이다. 그걸 현대의 형제자매들이 예전 같지 않다는 뜻으로 간취하는 건 어렵지 않다.

그건 마지막의 엄청난 반전과 직결되는데 그 어떤 관객에게도 간파될 수 없을 만큼 시나리오의 힘이 막강하다. 카즈키가 정체를 묻자 오노 형제는 배우라고 답한다. 삶은 연기고 인생은 연극이라는 테제는 정말 서늘하지만 본래적이다. B급 코미디의 정수, 감동만큼이나 충격적인 반전! 내달 6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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